왼쪽부터 더글러스 어윈, 배리 아이컨그린, 폴 크루그먼, 사이먼 존슨 교수.

“세계 경제는 지금 미국 대통령 한 사람의 관세 결정에 따라 운명이 결정되는 거대한 불확실성에 빠져들고 있다.”(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트럼프의 관세 정책으로 1930년대 보호무역주의가 초래한 경제의 큰 혼란이 재현될까 우려된다.”(더글러스 어윈 다트머스대 교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 1월 취임 후 전 세계를 대상으로 벌이는 관세 전쟁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본지가 긴급 인터뷰한 미국의 경제 석학들은 “미국뿐 아니라 세계의 경제를 끌어내릴 위험이 크다”고 평가했다. 트럼프는 ‘2기’ 출범 후 패권 경쟁을 벌이는 중국뿐 아니라 우방인 캐나다·멕시코의 관세도 큰 폭으로 인상한다고 발표했고, 철강·자동차 등 주요 수입품에 대한 관세도 잇따라 올리고 있다.

트럼프는 이에 더해 지금까지 나온 관세 정책 중 가장 광범위하다고 평가되는 상호 관세를 2일 발표했다. 트럼프는 이날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수입품에 기본 10% 관세를 부과하고, 약 60여 교역국엔 이보다 높은 관세를 매기는 ‘상호 관세’를 부과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한국에 대해선 25%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전세계 10% 관세는 5일부터, 추가 상호 관세는 9일부터 적용된다. 한국산 상품의 경우 5일부터 10% 관세가 부과되고 9일부터는 관세율이 15%포인트 올라가 25%가 적용된다는 뜻이다.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에 대한 25% 품목 관세는 3일 0시1분부터 부과가 시작됐다.

상호 관세는 세계 모든 국가의 관세·비관세 무역 장벽을 조사한 후 이에 상응해 미국의 관세를 올리는 조치를 뜻한다. 다만 발표된 상호 관세율은 무역 상대국에 대한 미국의 무역 적자를 해당국의 미국 수출 규모로 단순히 나누어 산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 정부는 이 세율을 기준으로 교역 상대국과의 협상을 통해 관세를 낮춰준다는 방침이다. 그동안 미국이 지적해온 무역 장벽을 얼마나 없애기로 하는지를 보고 관세율을 낮춰준다는 것이다. 미국은 한국에 대해 30개월령 이상 소고기에 대한 수입 제한, 500%가 넘는 높은 쌀 관세율, 미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 등을 불공정한 무역 장벽이라고 지목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
그래픽=김성규

상품 수입을 줄여 미국의 일자리를 지키고 관세 수입을 늘리겠다는 트럼프의 계획에 대해 본지가 인터뷰한 경제·통상 전문가들은 모두 장점보다는 부작용이 훨씬 큰 위험한 시도라고 경고했다. 1930년대 이어진 미국발(發) 대공황 연구의 권위자인 배리 아이컨그린 버클리 소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교수는 “대공황이 장기간 이어진 원인 중 하나가 세계 각국의 경쟁적인 관세 인상이었다. 잘못된 정책의 결과가 (생각보다 큰)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사이먼 존슨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트럼프의 무차별적 관세 인상이 “세계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세계 경제의 침체 위험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많은 경제학자는 트럼프가 적국·우방국을 불문하고 무차별적으로 관세를 올리는 행위가 100년 전 대공황 발생 직전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고 경고한다. 당시 유럽산 농산물이 대거 유입되는 데 따른 농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미국으로 들어오는 수입품의 관세율을 평균 6%포인트 올렸고, 이에 대응해 무역 상대국이 경쟁하듯 관세를 인상하면서 무역이 줄고 글로벌 경제가 식었다. 트럼프가 촉발한 21세기의 관세 전쟁은 세계 경제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한국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미국의 경제 석학 네 명에게 전망을 물었다.

◇더글러스 어윈 다트머스대 교수

“철강 관세에 美 제조업도 타격, 벌써 美 경제성장 둔화될 조짐”

더글러스 어윈 다트머스대 교수

무역 전쟁은 세계 경제에 무조건 나쁜 일이다. 1930년대에 미국을 비롯한 각국이 관세를 활용해 보호무역에 나서면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글로벌 무역의 위축은 모든 국가의 경제에 악영향을 미쳤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트럼프의 주장과 달리) 미국 경제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트럼프가 관세를 끌어올려 무역이 위축되면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이 0.2~0.4%가량 줄어들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수치가 크지 않아 보일지 모르지만 이런 악영향이 누적되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 된다. 트럼프가 관세 인상을 시작한 초기인 지금도 미국 경제 성장이 둔화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 내 제조업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트럼프의 계획 또한 그리 성공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예를 들어 (3일부터) 완성차나 그 부품에 대해 25% 관세가 부과되면, 긴밀하게 연결된 북미 지역의 자동차 산업은 함께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철강에 대한 관세를 인상하면, 이러한 원자재를 이용하는 미국의 중장비·농기계 제조 기업이 손실을 입게 된다. 지금 제조업 일자리를 줄어들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은 (수입 증가가 아니라) 생산 시설의 자동화·첨단화다. 미국 내 생산 시설이 늘더라도 일자리가 함께 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배리 아이컨그린 버클리 소재 캘리포니아대 교수

“트럼프의 오락가락 관세 정책, 기업 투자·소비자 심리 악영향”

배리 아이컨그린 UC버클리 교수

트럼프 관세 전쟁이 더 위험해 보이는 이유는 일관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관세 정책을 발표한 다음 내용을 변경하거나 유예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2일 발표하는 상호 관세에 대해서도 이러한 행동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여러 관세 조치를 내놓고 다시 수정하는 행태가 미국 및 글로벌 경제를 해칠 혼란과 불확실성을 초래하고 있다.

소비자와 투자자는 불확실성을 싫어한다. 우리는 이미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초래한 불확실성 때문에 소비자 신뢰도가 약화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다. 기업들도 무역과 관련한 혼란이 완전히 해소될 때까지 기다리면서 투자를 계속 미루는 상황이다. 이러한 행태가 경제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긴 어렵다.

트럼프가 확전시키고 있는 관세 전쟁은 글로벌 경제 협력의 틀을 손상시킨다. 국가 간 협력 시스템과 자유무역 덕분에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경제는 꾸준히 성장할 수 있었는데, 트럼프가 이를 영구적으로 파괴하려고 한다는 점이 매우 우려스럽다. 이 때문에 (1차 대전 이후 대공황에 이어 발발한) 2차 세계대전 때와 비슷한 경제·정치적 혼란이 다시금 반복될까 나는 두렵다. 트럼프는 관세가 연방 세수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19세기로 미국 경제를 되돌리고 싶어 하는 듯하다.(19세기 관세는 연방 세수의 약 80%를 차지했지만 지금은 이 비율이 2% 미만으로 내려간 상태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美대통령 무역 정책 재량권 과도… 앞으로 무엇을 할지도 예측 불가”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슈뢰딩거의 관세 정책’이라고 부를 만하다. 양자 역학에서 나오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라는 개념처럼,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는 거대한 혼란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엄청난 수준의 관세를 발표하고 갑자기 한 달 동안 이를 유예하는 식의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트럼프는 캐나다·멕시코에 대해 25% 관세를 2월에 발표했다가 이를 두 차례 유예했다.) 이러한 불확실성이 너무 심해서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대규모 무역 전쟁을 촉발할지, 사실 나는 예측조차 하기가 어렵다고 본다.

트럼프의 무역 정책의 영향을 평가하기에 앞서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할 점이 또 하나 있다. 단 한 사람(트럼프 대통령)이 이러한 모든 조치를 내릴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무역 관련 법은 미국 대통령에게 무역 정책에 있어 막대한 재량권을 쥐어주었다. 앞으로도 우리는 트럼프라는 사람이 무슨 행동을 할지 알 수가 없는 운명에 놓였다.(미국은 1930년대 국회의원들이 지역구 주력 업종에 따라 관세 정책을 뒤흔들자 이 부작용을 막기 위해 대통령에게 관세에 대한 재량권을 많이 부여했다.)

미국 정부가 캐나다와 멕시코 같은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을 어떻게 대하는지도 중요한 문제다. 이에 (역시 FTA 체결국인) 한국 정부와 기업에 (한·미 FTA만 믿지 말고) 무역을 다각화하라는 조언을 하고 싶다. FTA 추가 체결을 통해 무역 상대국을 늘려가며 미국 무역 정책의 변화에 따른 충격을 줄여나가야 한다.

◇사이먼 존슨 MIT 교수

“한국 상황은 한마디로 불확실성… K팝·K드라마 같은 산업 키워야”

사이먼 존슨 MIT 교수

(트럼프가 관세 전쟁에 불을 붙인) 현재 한국이 처한 상황을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나는 ‘불확실성’이라고 하고 싶다. 전 세계적으로 경제적·전략적 불확실성이 계속해서 커지고 있다. 오늘날 긴밀하게 연결된 세계 경제는 여러 가지 요인이 상호작용하며 결과를 만들어낸다. 트럼프가 키우는 각종 통상·경제 정책의 불확실성이 전 세계 경제를 어떻게 흔들어 놓을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한국이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설득’이다. 나는 한국이 미국의 중요한 동맹국이자 훌륭한 무역 파트너라는 사실을 안다. 트럼프가 스스로 이를 깨닫고 알아주길 바랄지 모르지만, 이건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미국에 한국이 어떤 의미를 갖는 국가인지, 한국이 얼마나 중요한 동맹인지를 상기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그리고 많이 미국 정부에 이러한 점을 강조해서 알리길 권한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촉발한 경제적 불확실성 가운데 한국은 앞으로의 경제 성장을 이끌 산업 발전 방향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한국의 콘텐츠 산업이 달성한 성공은 매우 인상적이다. K팝이나 K드라마는 세계 많은 나라가 부러워하는 하나의 롤모델이 됐다. (관세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 이러한 분야에서 기회를 확대해 나가는 것이 매력적인 선택지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