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은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광역권 지역에서 지난해 11월부터 드론 배송을 시작했다. 새로 출시된 드론(MK30·왼쪽 사진)을 이용해 기존 드론보다 두 배 더 먼 거리를 조용하게 비행할 수 있게 됐다는 게 아마존 설명이다. 신기술 경연장이 되고 있는 피닉스에선 구글 웨이모의 자율 주행 차량(오른쪽)이 도로를 달리는 모습도 심심찮게 목격된다. /아마존 홈페이지
아마존은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광역권 지역에서 지난해 11월부터 드론 배송을 시작했다. 새로 출시된 드론(MK30·왼쪽 사진)을 이용해 기존 드론보다 두 배 더 먼 거리를 조용하게 비행할 수 있게 됐다는 게 아마존 설명이다. 신기술 경연장이 되고 있는 피닉스에선 구글 웨이모의 자율 주행 차량(오른쪽)이 도로를 달리는 모습도 심심찮게 목격된다. /아마존 홈페이지

선인장과 황토색 바위산이 마치 다른 행성에 온 듯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미국 애리조나주(州) 피닉스. 한여름 온도가 섭씨 40도를 훌쩍 넘기는 사막 지대로 유명한 이곳이 몇 년 전부터 첨단 기술의 허브 도시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낮은 세율과 비용, 우수한 인적 자원, 풍부한 에너지 등 기업 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하며 ‘실리콘 데저트(Silicon Desert)’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가 반도체 주재료인 ‘실리콘’과 현지의 지형(협곡·Valley)을 합쳐 만든 이름인 것처럼, 기회의 땅이 되고 있는 이 사막 지대에 새로운 별칭이 붙은 셈이다.

세계 1위 반도체 파운드리 제조 업체인 TSMC의 웨이저자 TSMC 회장은 지난달 3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앞에서 “향후 4년 동안 애리조나에 최소 1000억달러(약 146조원)를 투자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WEEKLY BIZ가 최근 미국의 가장 뜨거운 기술 혁신의 중심지로 떠오르는 피닉스를 찾았다.

◇ 신기술 경연장 되는 피닉스

토드 샌더스 피닉스상공회의소 대표가 본지와 화상 인터뷰를 하고 있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토드 샌더스 피닉스상공회의소 대표가 본지와 화상 인터뷰를 하고 있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피닉스는 광역권 면적이 3만7810㎢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3배를 넘어서는, 미국에서 인구가 다섯째로 많은 대도시다. 피닉스 도심에서 차를 타고 북동쪽으로 30분을 달리면 웅장한 TSMC의 공장 단지가 눈에 들어온다. 생산 라인뿐 아니라 패키징 공장, 연구·개발 센터 등도 공사가 한창이다. 이미 장비 회사, 디자인하우스 등 반도체 관련 업체들이 TSMC를 따라 인근 산업 단지에 상당수가 입주했고 앞으로도 더 집결할 태세다. TSMC의 첫 번째 공장은 상반기 중 5나노미터(10억분의 1미터·숫자가 작을수록 고성능) 칩을 생산하고 이후 4나노미터, 3나노미터, 2나노미터 칩까지 차례로 생산하게 된다. 2020년 이후 애리조나에 집행된 반도체 투자는 TSMC·인텔 등을 포함해 40여 건에 달하고, 1만5000개가 넘는 일자리를 창출한 것으로 평가된다.

반도체뿐만이 아니다. 피닉스 시내에선 운전석에 아무도 앉아 있지 않은 하얀색 구글 웨이모 차량이 도심 곳곳을 누비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다. 2017년부터 웨이모가 자율주행 차량을 테스트하기 시작해 지금은 이미 피닉스 시민들의 일상생활의 일부가 됐다. 현재 약 815㎢ 면적에서 로봇 택시가 운영되고 있는데, 누적 주행 거리로만 보면 다른 도시들을 압도한다.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자율 주행 차량으로 공항을 오가는 승객을 태우고 내려주는 운송 서비스를 100% 구현할 수 있는 도시가 됐다. 피닉스가 자율 주행차를 테스트하기에 최적인 장소인 건 도심이 격자형 도로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뜨거운 날씨 역시 자동차 내열 성능 테스트를 하기에 적합한 환경을 제공했다. 토드 샌더스 피닉스상공회의소 대표는 “피닉스는 골목이 많지 않고 넓은 대로가 많아 좋은 기반 시설을 갖추고 있다”며 “로봇 택시는 이제 시민들에게는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효율적인 교통 시스템이다. 우리는 더 이상 우버를 부르지 않는다”고 했다.

드론 분야에서도 신기술 실험이 한창 진행 중이다. 피닉스에서 서쪽으로 약 17km 떨어져 있는 도시 톨리슨은 지난해 텍사스·캘리포니아에 이어 미국에서 셋째로 아마존의 드론 배송 서비스가 상용화된 곳이다. 주문이 들어오면 상품 픽업에서 포장까지 15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아마존이 도입한 드론은 최대 2.3kg까지 운반할 수 있는데, 빠르면 1시간 이내에도 배달이 가능한 구조다. 이번에 도입된 드론은 기존 기종에 비해 비용·소음은 절반으로 줄었고, 비행 거리는 두 배 늘어난 것이 특징이다. 현재는 배송당 9.99달러를 받고 있지만 향후 자체 구독 모델인 ‘아마존 프라임’에 이를 포함시키는 것도 검토 중이다. 아마존은 연간 5억건까지 드론 배송을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래픽=김의균
그래픽=김의균

◇ 안정적 기후와 우수 인재 육성까지

이처럼 피닉스에 첨단 기술을 갖춘 기업들이 몰려드는 건 주와 시 당국이 친(親)기업적 환경 조성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기 때문이다. 피닉스의 법인세율은 4.5%로 고정돼 있다. 또 반도체 등 첨단 산업에서는 안정적인 전력과 물 공급이 특히 중요한데, 피닉스 소재 전력 회사들은 99.99%의 가동 시간을 보장한다. 애리조나는 풍부한 자연 자원과 유리한 기후 조건 덕분에 태양광,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 분야에서도 특히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연평균 300일 이상 맑은 날씨를 자랑하는데 강한 햇빛과 긴 일조 시간 덕분에 태양광 발전소가 효과적으로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샌더스 대표는 “다른 주에서 허리케인, 토네이도 같은 극단적 기상 변화가 종종 기승을 부리지만 피닉스에선 안정적인 기후가 이어진다”면서 “그래서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등이 입주하기에도 안성맞춤”이라고 했다.

미국 내 잘나가는 도시가 대부분 그렇듯이 피닉스에도 약 3만명의 공학도가 재학 중인 애리조나주립대(ASU)가 있어 인재 공급의 화수분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대학의 풀턴 공과대는 매년 5000명 이상의 엔지니어를 배출하는데 기업에 특화된 커리큘럼 개발 등 적극적인 산학 협력을 바탕으로 7년 연속 US뉴스가 선정한 ‘가장 혁신적인 대학’ 1위를 차지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반도체 기업 인큐베이터가 있고, TSMC와 협력해 미국 내 최초의 반도체 기술자 견습 훈련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피닉스의 엔지니어가 받는 평균 연봉도 2014년 3만달러에서 지난 2023년 기준 8만4000달러로 3배 가까이 증가했고, 피닉스 소재 기술 기업 숫자도 최근 5년 동안 300개 이상 늘었다고 한다.

특히 애리조나주립대는 반도체 제조 부문 선도 기업과 협력하기 위해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산업 협의회’를 구성했다. 이를 통해 TSMC·인텔 등 애리조나에 진출한 주요 기업에 인재를 공급하고 반도체 제조와 관련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 기술 습득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 학교 ‘나노팹’에는 반도체 파운드리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6나노 초미세 공정 반도체 제조가 가능한 E빔 등 최첨단 설비가 갖춰져 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피닉스가 속한 마리코파 카운티는 미국 내 인재 유치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 결정이 잇따르면서 애리조나주 전체 인구도 2022년 대비 2023년 6만5660명이 증가했다. 국내 이주 대부분은 캘리포니아주로부터 유출되는 인구가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선 지난 2022년 LG에너지솔루션이 배터리 제조 시설 건설 발표를 하며 애리조나 당국으로부터 새로운 협력 파트너로 주목받는 상황이다. 코트라(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관계자는 “반도체, 항공 우주, 자동차, 전자 제품 등 첨단 제조 부문의 한국 기업들에 애리조나는 분명히 고려해볼 만한 투자 지역이라 볼 수 있다”고 했다. 샌더스 대표는 “피닉스는 멕시코와 접해 있고 텍사스·플로리다까지 교통이 용이해 국내외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좋은 위치”라며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 기회를 포착한 기업들이 B2B(기업 간 거래)·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할 것 없이 몰려들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