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후 5시 기준. /그래픽=김의균
10일 오후 5시 기준. /그래픽=김의균

“‘트럼프 관세’의 의도를 명확히 파악하긴 어렵지만 미국이 결국 경기 침체라는 아주아주 암울한 결말을 맞이할 것이란 점은 확실합니다.”

무역이 일자리와 지역 경제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로 저명한 고든 핸슨 하버드 케네디스쿨(행정대학원) 교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무역 정책이 결국은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핸슨 교수는 3일 WEEKLY BIZ와 화상으로 만나 “트럼프는 미국 시장을 위한 생산은 미국 땅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미국의 요새화(Fortress America)’ 신념이 투철한 듯하다”며 “그러나 이는 되레 미국 경제를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경기 침체를 동반한 물가 상승)에 빠져들게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핸슨 교수와의 인터뷰는 트럼프가 지난 2일 주요 교역 상대국을 상대로 20%가 넘는 상호 관세를 매기겠다고 행정명령에 서명한 이튿날 이뤄졌다. 트럼프는 지난 9일 주요국에 대한 상호 관세를 90일 유예하는 조치를 내놓고, 보복 조치로 맞선 중국에 대한 관세만 125%로 올린 상태(10일 오후 5시 현재)다. 그는 “앞으로도 트럼프는 중국에 대해선 무역 정책이 아닌 응징에 가까운 정책을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백형선
그래픽=백형선

핸슨 교수는 데이비드 아우터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 데이비드 돈 스위스 취리히대 교수와 함께 자유무역이 미국 내 고용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연구해 온 대표적 학자다. 그는 지난해 2월 외교 저널 포린어페어스 지면을 통해 트럼프표 무역 정책의 이론적 틀을 마련한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전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관세 장벽을 쌓는 미국

−트럼프는 무엇을 노리고 고관세 정책을 펼치나.

“트럼프의 정책은 무작위성과 충동성의 산물이라 그의 진짜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쉽지 않다. 다만 트럼프가 펼치는 관세 정책의 근간에는 ‘미국의 요새화’, 그러니까 미국 시장에서는 미국 내에서 생산된 제품만 거래돼야 한다는 진심 어린 바람이 숨어있는 것 같다. 아직 이런 바람을 명시적으로 밀어붙이진 않았으나, 이 신념을 담아 나온 정책이 관세 장벽이라고 본다. 이번 추가 관세 조치가 겨냥한 국가 중엔 기이해 보이는 나라도 있다. 우선 한국·일본과 유럽연합(EU) 등 가까운 동맹국을 상대로 한 관세 조치다. 동맹국들을 상대로 관세를 ‘협상 카드’ 삼아 무역 적자 축소를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매우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다. 관세는 무역 적자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2일 발표된 상호 관세 정책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들을 겨냥하기도 했다. 이들을 왜 겨냥했는지는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 단지 변덕스러워 보일 뿐이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는 높은 세율의 관세로 무역 적자를 축소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미국 제조업체는 생산 과정에서 부품이나 장비를 외국에서 수입하는데, 여기에 높은 관세가 부과되면 미국 제품의 수출 경쟁력도 함께 떨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의 무역 상대국이 보복 관세 등 대응 조치를 내놓기 때문에 무역 적자가 개선되기 어렵다.

−트럼프가 취임 이래 중국에 부과한 추가 관세율은 엄청난 수준이다. 이런 조치로 미국에서 사라진 일자리가 되살아날까.

“전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미국 근로자들은 이미 20년 전에 (값싼 중국산 제품이 밀려 들어와) 일자리를 잃었다. 이들이 일하던 공장은 이미 사라졌고, 당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이미 고령이다. 트럼프의 의도대로 가구·섬유 제조업이 미국으로 다시 돌아온다고 해도 공장은 기존의 러스트벨트(제조업 쇠락 지역)에 생기진 않을 것이다. 따라서 트럼프가 중국에 매기는 관세는 보복에 가깝다. 미국 근로자들이 (20년 전) 중국산 제품에 밀려나 일자리를 잃은 일에 화가 나 이번에 중국에 처벌을 가하는 듯하다. 이는 정치적으로는 의미가 있을지 몰라도 경제적으로는 원하는 효과를 내지 못할 것으로 본다.”

그래픽=백형선

◇“관세 정책, 19개월 뒤 중간선거서 평가받을 것”

−트럼프의 경제 정책이 미국 경제에 미칠 파장은.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만들어낸 불확실성 때문에 미국 경제는 1970년대 이후 처음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을 경험할 수 있다. (관세 때문에 수입품 가격이 올라 물가가 상승하고, 기업들 비용 부담을 증가시켜 경제 성장이 둔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이 고용을 줄이면 대규모 실업까지 일어날 수 있다. 다행스러운 건 중간선거(2026년 11월)가 2년도 아니고 정확히 19개월 남았다는 점이다.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진다면 중간선거에서 미국 의회 주도권이 다시 민주당에 넘어가고 레임덕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세계적인 대공황 같은 광범위한 충격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작다고 본다.”

그래픽=김의균

−대공황 가능성은 작다고 보는 이유는.

“지금까지는 미국이 다른 모든 국가를 상대로 일방적으로 관세 부과에 나선 것이지, 미국 외의 국가들 사이에서 무역 분쟁이 발생하지는 않았다. 다만 미국 경제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4분의 1 규모에 이르러 미국 경제의 침체는 글로벌 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은 있다. 또 미국 외 다른 국가의 심각한 정책적 실수까지 이어진다면 더 큰 파장을 불러올 수는 있다.”

−관세 정책 덕분에 제조업 근로자들은 트럼프를 더 지지하지 않을까.

“이 역시 트럼프의 뜻대로 잘 안 될 것으로 본다. 명확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관세를 동원해 미국을 요새화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자동차 공장은 미시간,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인디애나 같은 기존의 자동차 산업 중심지가 아니라 노조의 힘이 약한 남부 지역에 들어설 것이다. UAW(전미자동차노조)가 지금은 트럼프 정책에 박수를 보낼 수 있지만, 3년 후에는 ‘우리 조합원을 위한 일자리는 대체 어디로 갔느냐’고 소리치게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제조업은 미국 고용의 9%, 집착 버려야”

핸슨 교수는 ‘차이나 쇼크’의 대표적 연구자다. 차이나 쇼크란 중국의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기점으로 저렴한 중국산 제품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미국 내 제조업 일자리가 약 100만개 증발한 현상을 말한다. 핸슨 교수는 차이나 쇼크에 대한 미숙한 대응이 자유무역에 대한 분노와 트럼프 지지로 이어졌다고 본다. 다만 트럼프의 고관세 정책은 자유무역에 따른 일자리 감소의 해법이 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미국 내 전체 일자리 가운데 제조업 일자리 비율은 9.3% 정도로 낮아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차이나 쇼크가 미국 경제에 끼친 파장은.

“차이나 쇼크에 따른 미국 제조업의 붕괴로 제조업이 발달한 지역에선 많은 사람이 실업의 고통을 겪었다. 제조업은 대학 졸업장이 없는 사람에게 고소득 일자리를 제공해 왔는데, 이런 일자리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다시 이처럼 고소득 일자리를 찾기가 어려워졌다. 정부는 대학 학위가 없는 40세 이상의 제조업 근로자가 다른 지역이나 다른 산업 부문으로 이동해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을 간과했다. 더구나 제조업 쇠퇴로 인한 불황은 전국적인 경기 침체가 아니라 특정 주, 특정 도시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나타났다. 연방 정부 차원의 폭넓은 지원이 이뤄지기 어려웠다. 이에 분노한 이들이 자유무역을 비난했다. 제조업이 몰락한 지역에선 서비스업 일자리가 다시 생겨나긴 했다. 그러나 이러한 일자리는 주로 이민자들의 몫이 된다. 이 과정에서 ‘반(反)이민 정서’까지 생겨났다.”

−연방 정부와 주 정부는 차이나 쇼크에 어떻게 대응했어야 하나.

“우선 받는 조건이 까다롭지 않고 장기간에 걸쳐 받을 수 있는 실업 급여가 있어야 했다. 또 실업자들이 노동 수요가 있는 새로운 일자리에 재취업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도 필요했다. 미국엔 전국 곳곳에 커뮤니티 칼리지(2년제 전문대)가 있어서 이러한 재교육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일부 지역에선 이와 같은 대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트럼프가 차이나 쇼크로 경제적 기반을 잃은 이들을 도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미국 전체 고용의 9%에 불과한 제조업 일자리에 대한 집착부터 버려야 한다. 서비스업 부문에서 대안을 찾아야 한다. 의료·돌봄 분야가 대표적이다. 고령화에 따라 일자리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실업자들이 대학 교육 없이 직업 훈련을 통해 이 분야에서 필요한 자질을 갖출 수 있다. IT 분야에서도 일자리를 더 만들 수 있다. 제조업 일자리로만 모든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생각을 버리면, 지역 경제 부활을 위한 원천이 될 일자리를 충분히 찾을 수 있다.”

◇“중국도 러스트벨트 문제 해결해야”

최근엔 ‘차이나 쇼크 2.0’이 중국을 때리고 있다. 20년 전 자유무역의 확대로 값싼 중국산 제품이 대거 유입되면서 선진국에서 제조업이 빠르게 몰락했다면, 이제는 기술 발전의 영향으로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산업 구조가 바뀌면서 중국 안에서도 일자리 파괴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달 25일 ‘중국이 스스로의 차이나 쇼크를 경험하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중국 창저우대 연구진이 분석한 결과, 2011~2019년 사이 중국에선 식품·의류·가구 등 12개 노동집약적 산업 일자리 400만개가 증발했다”고 전했다. FT의 자체 분석에 따르면, 2019~2023년 이 산업 분야들에선 일자리가 340만개 더 사라졌다.

−중국이 경험하는 차이나 쇼크에 대해선 어떻게 봐야 하나.

“노동집약적 산업 내 일자리 감소는 경제 발전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거치게 되는 통과 의례라 봐야 한다. 아시아에선 과거 일본이 그런 경험을 가장 먼저 했고, 한국과 대만이 뒤를 이었다. 섬유·신발 산업(경공업)에서 시작해 조선업·자동차 산업(중공업)을 거친 다음 전자 제품 산업 순서로 일자리 감소 현상이 빚어진다. 전환의 과정에서 누군가는 일자리를 잃지만, 다른 사람이 새로운 산업에서 취업 기회를 얻는다. 한국과 대만 같은 나라는 대도시에 대부분의 기능이 집중돼 있어 이러한 변화를 덜 체감하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중국과 미국처럼 큰 나라에선 한 지역에서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전혀 다른 지역에 일자리가 생긴다. 그러다 보니 미국에서 러스트벨트 지역이 생긴 것처럼 중국에선 (중공업 중심지인) 랴오닝성을 포함한 인접한 세 성(동북 3성)이 ‘중국판 러스트벨트’가 됐다.”

−중국은 이러한 차이나 쇼크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우선 중국은 지역 대학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선양을 방문했을 때 중국 정부가 (중공업에 집중하다가 경쟁력을 상실한) 이 도시를 어떻게 현대적인 제조업 도시로 전환할 수 있을지 깊이 고민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물론 중국 역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 지금까지 중국 중앙정부는 산업 발전의 목표를 제시하고, 각 지방정부가 이를 두고 경쟁하도록 했다. 그런데 중국 경제가 성숙 단계에 접어들면서 이러한 경쟁에서 성공한 지역과 실패한 지역의 격차가 극명하게 갈리게 됐다. 제조업이 쇠퇴한 지역을 되살리려면 이러한 시스템도 바꿔야 한다고 본다.”

◇“FTA, 미국에 대항하는 마지막 수단 될 수도”

−한국을 비롯한 미국의 무역 상대국들은 관세 정책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한국을 비롯해 미국의 주요 무역 상대국이자 동맹국들은 (미국에 대항해) 단합해야 한다. 미국은 개별 국가들의 분열을 유도한 다음 미국에 유리한 거래를 이끌어내려고 할 텐데, 이러한 함정에 빠져선 안 된다. 한국, 일본, 캐나다, EU와 멕시코는 ‘우리는 상호 협의를 통해 세계화를 달성했는데, 이러한 노력의 결실을 미국이 일방적으로 깨고 있다’고 대응해야 한다. 개별 국가 단위로 조금이라도 유리한 조건에 현혹돼 미국에 굴복해선 안 된다. 마치 벌을 내리듯 하는 미국에 대항해 한목소리를 내는 게 중요하다.”

그래픽=백형선

−트럼프 시대에 FTA(자유무역협정)는 생명력을 잃었다고 보나.

“지금 FTA에서 특별한 점은 미국을 제외한 국가 사이에선 이 협정이 여전히 지켜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외 국가들은 지역 통합을 계속 지켜나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 FTA가 미국에 대항하는 국가들의 단결된 전선(戰線)의 기초로 작용할 것으로 본다. 한국을 비롯한 나라들은 ‘우리는 FTA를 포기할 수 없다’고 주장해야 한다. 만약 자유무역을 유지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말이다.”

☞차이나 쇼크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값싼 중국산 공산품이 대거 수입되면서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미국 내 일자리가 급감한 현상을 말한다. 이 현상을 연구한 대표적 학자로는 고든 핸슨 하버드 케네디스쿨 교수, 데이비드 아우터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 데이비드 돈 스위스 취리히대 교수 등이 꼽힌다. 이들은 “미국이 중국과의 무역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제조업이 발달한 지역을 중심으로 국지적인 실업과 불황이 발생했다”고 분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