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연휘선 기자] 걸그룹 피프티피프티 사태에 대해 '피프티피프티 법'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연예인 이름만 붙인다고 법안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지지부진한 고(故) 구하라의 이름을 딴 '구하라 법'의 계류 상태가 시사점을 남기고 있다.
지난 29일 '피프티피프티 법'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국민의 힘 소속 국회의원 하태경이 공식 SNS에 해당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히면서부터다.
하태경 의원은 글에서 "악덕 프로듀서로부터 중소기획사를 지키는 '피프티 피프티 법'을 발의한다"라며 "걸그룹 피프티피프티가 세계 무대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두고 있다. 큰 예산이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실력 하나로 기적을 이뤄냈다. 그런데 한 악덕업자가 이 성과를 자신의 이익으로 독차지하려 했다. 외주 제작사에 불과한 한 프로듀서가 멤버들을 회유해 계약을 해지시키고 자신의 소속으로 만들려 한 정황이 드러났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회사(소속사) 입장에서는 외부세력이 침입해 자식 호적을 바꾸려는 친권소송을 제기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가처분 소송은 결국 기각됐고 논란은 일단락됐다. 중소기업의 성과를 가로채려던 시도는 결국 무산된 것이다. 멤버들도 사안을 바로 보고 소속사로 돌아와 세계 무대를 종횡무진하길 바란다"라고 했다.
이어 "제조업의 경우 제품에 대한 특허나 영업비밀 규정 등으로 보호하는 다양한 제도가 잘 갖춰져 있지만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다르다. 사람이 하는 여러 행위가 제품이 되기 때문에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이에 대중문화예술 분야에서도 중소기업을 보호하고 제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대중문화예술발전법 개정안을 문화체육관광부와 논의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걸그룹 피프티피프티는 지난해 데뷔한 새나, 아란, 키나, 시오로 구성된 4인조 걸그룹이다. 이들이 데뷔 1년도 안돼 발표한 곡 '큐피드'가 미국 빌보브 메인 싱글차트 핫100에 오르며 큰 성과를 거뒀다. 피프티피프티가 신생 기획사 어트랙트 소속의 신인 걸그룹인 만큼 이는 '중소돌의 기적'으로 불리며 큰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최근 피프티피프티와 어트랙트는 전속계약 분쟁으로 큰 갈등을 겪고 있다. 활동을 한창 이어가야 할 시기, 피프티피프티 멤버들이 돌연 잠적하며 어트랙트 측에 전속계약 분쟁을 제기했다. 멤버들은 정산 문제, 건강 관리 소홀 등을 이유로 들었으나 어트랙트는 외부 세력의 멤버 빼가기 일명 '템퍼링' 의혹을 제기했다.
그 대상으로 어트랙트와 피프티피프티 사이 관계사였던 더 기버스가 지목됐다. '큐피드'의 프로듀서 안 씨가 대표로 있는 곳이다. 하지만 더 기버스는 관련 의혹을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 피프티피프티 측 또한 어트랙트가 정산 문제를 명확히 해명하지 못하고 자극적인 표현으로 말 돌리기를 하고 있다며 "가수를 안 하면 안 했지 어트랙트로 돌아가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멤버들의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모두 기각했다. 다만 피프티피프티 측은 즉시 항고할 계획이고 어트랙트 사이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사 사례의 재발 방지를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 틈을 타 '피프티피프티 법'이 수면 위로 부상한 상황. 구체적인 내용이 나오지 않더라도 여론은 우호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피프티피프티 사태는 이전까지 아티스트와 소속사 사이의 전속계약 분쟁과 전혀 다른 양상으로 평가됐다. 앞선 분쟁 사례들에서 대중의 목소리는 대체로 아티스트의 편으로 기울었다. 끝을 알 수 없는 장기 계약은 연예인에게는 부담으로 비쳤고, 그 와중에 계약 연장이 '의리'와 미담으로 포장되는 연예계 분위기가 팽배했다. 아티스트가 소속사의 방향에 불만을 갖고 있어도 이의제기를 할 수 없는 구조라는 인식이 강했던 여파다. 그러나 피프티피프티 사태에서는 달랐다. 어트랙트 대표가 전 재산을 쏟아부어 신인 걸그룹을 육성한 일이 거듭 회자됐고, 걸그룹 육성을 위한 기획사의 노력이 인정되며 피프티피프티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이에 연예 매니지먼트업을 하는 사업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장치로서 무분별한 템퍼링 방지, 통제 불가능한 아티스트 일탈에 대한 규제의 필요성이 일면 인정되는 분위기다. 연예 기획자들에 대한 대중의 여론이 이례적으로 너그러워진 모양새다. 특히 아이돌 제작 과정에서 막대한 자본과 시간이 필요하고 그 비용에 대한 이해가 자연스럽게 수용되고 있다.
다만 법안의 필요성이 인정되는 것, 나아가 유명인사들의 이름이 법안에 얽혀 관심을 받는 것과 그 추진 과정은 전혀 별개다. 일례로 세상을 떠난 걸그룹 카라 멤버 구하라의 이름을 딴 '구하라 법'은 3년째 계류 상태다.
지난 2019년 11월 구하라가 세상을 떠난 뒤, 17년 동안 연락을 끊고 살던 친모가 나타나 상속권을 주장해 사회적 공분이 일었다. 당시 법원은 구하라의 친모에게 40%의 상속권을 인정했다. 구하라의 친모가 친권을 포기했음에도 유산의 절반을 요구했던 일이 알려지며 법원의 판결도 반발을 자아냈. 그러나 앞선 사례들에서 통상적으로 절반의 상속이 인정되온 것을 고려하면 10%라도 상속이 덜 받도록 판결을 받아낸 게 이례적이었다. 이를 계기로 양육 의무를 다 하지 못한 보호자가 상속 재산을 제한 없이 가져가는 게 정당한지에 대한 회의와 논의가 일었다.
이에 구하라의 오빠와 변호인이 2020년 국민청원을 진행했고,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이 양육의무 위반을 상속결격 사유에 포함시켜 자동적으로 상속자격을 박탈하자는 내용을 발의했다. 그러나 이 '구하라 법' 또한 여전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현재 해당 법안은 법제사법위언회 심사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발의안과 정부안에 차이가 있기 때문인데, 정부안은 당사자가 소를 제기하면 법원 판단 아래 상속 자격 상실 여부를 가려야 한다는 것으로 상속자격 박탈 과정에 차이가 있다.
'구하라 법'이라는 이름만으로 대중의 관심을 모으고 여전히 이목을 끌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국회 문턱도 넘지 못한 상황. 그 지지부진한 시간을 '피프티피프티 법'이라고 해서 겪지 않을 리 없다. 유명인사들의 이름에 대중은 진정성을 기대하며 힘을 싣게 된다. 그러나 어떤 사안의 정치 행위에서 진정성이란 행동이 동반되지 않는 한 무의미한 수식어일 뿐. 얼마나 대단한 스타의 이름을 갖다 붙여도 통과되지 않는 동안엔 그저 유명세 팔이가 될 뿐이다. 심지어 그 유명세가 희미해질 때 대중의 관심과 필요성 또한 사라진다. '피프티피프티 법'은 그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있을까. 보호의 대상이 당장의 도움이 급한 중소기획사들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관련 법안은 더욱 절실하다는 점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 monamie@osen.co.kr
[사진] OSEN DB, 어트랙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