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안84는 철학84였다.

기안84는 20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게스트로 나와 “올해 41살 된 방송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있는 과천 살고 있는 기안84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했고 “연예대상 이후?  조금 기대했는데 달라진 게 없더라. 그리고 변화가 되면 안 되겠더라. 고향 여주도 다녀왔다. 망망대해로 나간 새끼 거북이가 짬 좀 차고 거대해져서 알을 까러 온 느낌”이라고 말했다.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첫 여행 때 입고서 숙소 바닥에 널어 말렸던 티셔츠를 그대로 입고 나온 그는 “메이크업을 받고 온다면 너무 연예인 같지 않나. 입는 옷만 입고 있다. 몇 번 안 입고 옷을 버리면 환경오염이니까. 뽕 뽑을 때까지 입고 빨아야 만족감이 온다. 머리도 집에서 자른다. 미용실 가는 시간이 아까우니까”라며 초심을 유지하는 근황을 알렸다.

기안84가 미술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남달랐다. 그는 “외동인데 공부를 못했다. 집안이 풍비박산이 났다. 그림을 잘 그리니까 어머니가 ‘네가 먹고 살 길은 이거다’ 하셨다. 그때 엄마가 비교를 친구들이랑 한 게 아니라 월드스타 비랑 비교를 했다. 한 살 차이인데 어떡하라는 거냐 나보고”라고 하소연해 웃음을 자아냈다.

미대에 진학한 후 군대에 간 기안84는 웹툰이라는 새 길을 찾았다. 그는 “내가 어떻게 열심히 살아야 되나 고민하다가 웹툰을 해야겠더라. 웹툰 소재를 고민하다가 군대 만화는 몇 개 있었다. 의경 만화가 없길래 ‘노병가’를 시작했다. 야후 코리아에서 연재했는데 월 4회에 60만 원을 준다고 했다. 회사가 50% 떼 간다고 해서 따져서 다 받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호기롭게 웹툰의 세계에 발을 들였지만 가장 큰 시장인 네이버 웹툰으로의 진출은 험난했다. 기안84는 “4번 도전해서 갔다. 웹툰 그리는 것도 운동선수처럼 생각했다. 1등이 돼야 한다는 생각으로. 연재하면 어떤 요일에 가도 1등 할 자신이 있었는데 데뷔가 안 되니까. 출발선에서 출발을 못하는 기분이었다”며 간신히 ‘패션왕’으로 데뷔하게 된 일화를 공개했다.

하지만 늘 마감에 쫓겼다고. 기안84는 “마감 못 지키는 걸로 유명했다. ‘패션왕’이 조회수 1등을 했는데 마감을 계속 못 지켰다. 잘라버린대서 도망가고 연락을 끊은 적도 있었다. 김준구 대표가 없었으면 연재도 못했을 거다. 회사 와서 그리라고 해서 회사 4층에 숙직실에서 씻고 잤다. 눌러 살았다 2년 정도”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런 그의 삶은 ‘나 혼자 산다’로 재조명됐다. 기안84는 “먹고 자는 걸 보여주는 프로그램인데 내가 빨래를 대충 하고 청소를 대충 하는 걸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게 뭔가 싶더라. 돈 버는 방법이 다양해졌다. 망망대해를 보고 가는데 양말 구멍은 중요하지 않다. 사사로운 것에 사람들이 관심 많은 줄 몰랐다. 그런 에너지보다 그림 그리는 게 좋다”고 남다른 철학을 자랑했다.

기안84는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로도 큰 사랑을 받았다. 그는 “여행을 하면서 바뀐 것? 우리나라에서는 루틴대로 움직이지 않나. 촬영과 그림. 양식당하는 느낌이었는데 외국에서 호흡하게 되면 자연산 광어처럼 도파민이 나오는 느낌이더라. 거기 사는 사람들은 나랑 상관없는 사람들인데 그 속으로 들어가는 게 에너지가 더 크게 느껴졌다. 그게 진짜 여행 같다”며 미소 지었다.

기안84는 인생을 여행으로 정의했다. “한 번 살다 가는 것, 즐긴다는 마음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 잘 먹고 잘 사는 것보다 불행한 일이 닥쳤을 때 맞이하는 자세가 행복 지수를 결정한다더라. 위기가 와도 하나의 재밌는 이벤트라 생각하면. 인생은 외줄 타기 같다. 떨어지면 떨어진 대로 받아들이려고 한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comet568@osen.co.kr

[사진] 유퀴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