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고재완 기자] "올해는 나에게 의미있는 해가 될 것 같다."
배우 박보영의 말이다. 그의 이런 생각은 틀리지 않아 보인다. 박보영이라는 배우가 올해 선보인 작품들은 그동안의 '박보영'과 꽤 다른 느낌이다.
사실 박보영은 그의 능력이나 노력에 비해 꽤 저평가된 배우다. 빠지지 않는 연기력이나 '웅얼거려도 또렷이 들리는' 깔끔한 딕션은 박보영의 강점이다. 하지만 그런 능력에 비해 그동안 박보영은 '동안'이나 '앳된' 이미지로 소비되곤 했다.
이는 박보영의 외모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작품과도 연관이 있다. 박보영이라는 배우를 알린 영화 '과속 스캔들' 그리고 그를 톱배우의 자리에 올린 영화 '늑대소년'이라는 작품에서 그는 아역에서 갓 벗어난 인물을 연기했다.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이나 '힘쎈여자 도봉순' 역시 그의 앳된 이미지에 기댄 바 크다.
그래서 올해가 박보영에게는 꽤 이정표 같은 해가 될테다. 올해 박보영은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이하 정신아)를 선보였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저 매년 쌓아오던 필모그라피를 채운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주명화 그리고 '정신아'의 정다은은 그가 그동안 선보였던 인물의 스펙트럼과는 꽤 차이가 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간호사 주명화는 김민성(박서준)과 평범한 신혼부부처럼 보이지만 생존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도 처절한 인간애를 발휘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끝내 김영탁(이병헌)의 비밀을 폭로하며 강단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주명화를 박보영은 전혀 이질감 없이 표현해냈다.
'정신아'의 정다은은 주명화보다 좀더 복잡다단한 인물이다. 따뜻한 마음과 친절로 환자에게는 위로를 주지만 동료들에게는 질타를 받은 캐릭터이기도 하다. 그리고 환자에 대한 마음으로 인해 오히려 상처받고 우울증에 빠지기까지 박보영은 정다은이라는 캐릭터를 설득력있게 그려냈다.
박보영은 지난 10일 진행된 인터뷰에서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정신아'를 하면서 사랑스러운 면을 거둬들이고 점차 나이먹어가는 나의 모습을 대중도 받아들여주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라며 "뭔가를 깨고 싶다는 느낌은 아니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보여드릴 수 있는 부분이 생기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한단계 더 올라선 배우가 된 것에 그의 노력이 많이 더해져 있음은 물론이다. '정신아'만 해도 실제 정신병동 간호사들과 함께 하며 어떻게 생활하는지를 세세하게 확인했다.
박보영은 연기 일기를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정신아'는 유독 '명언'같은 내레이션이 많은데 박보영은 이 작품을 하면서도 일기장에 매회 좋았던 대사들이나 내레이션을 적어놨단다. 나이가 들며 점점 더 성숙해가는 배우 박보영을 보는 맛이 쏠쏠한 이유다.
그는 최근 유재석의 유튜브 채널 '핑계고'에 출연해 "배우로서의 삶과 인간으로서의 삶에 밸런스를 찾아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보영은 "배우라는 직업을 배제한 나의 삶에도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가족 구성원으로서 형부 카페 일을 돕는 것도 그렇고, 조카들을 데리고 놀러가는 것도 그렇다. 같은 일을 하지 않는 친구와도 자주 만나서 많이 놀고 하는 것들을 통해 리프레시하려고 하고 있다. 챗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꾸준히 하고 있는 봉사활동에 대해서도 "밸런스를 맞추는 도구 중 하나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박보영은 "사실 난 일하지 않을 때 약간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느낌이 조금 든다"고 웃으며 "그런데 봉사를 가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보람찬 하루를 보냈다는 느낌이다"라고 털어놨다.
"예전에는 아무리 내가 힘든 상황이라도 카페 같은데 가면 항상 밝은 모습으로 주문하고 그랬다. 당시에 같이 간 친구들이 놀라면서 '힘들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요즘은 애써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한다. 마음도 편안하게 가지려고 한다. '그럴수도 있지. 망한 상황은 아니잖아'라는 말을 부쩍 많이 하는 것 같다."(웃음)
그가 크리스마스에 쉬지도 못하고 촬영을 하는 '정신아' 스태프들을 위해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준비해서 좋은 배우라는 말이 아니다. 자신을 가뒀던 틀을 급하지 않게 벗어버리며 연기 스펙트럼을 확장해가는 모습에 좋은 배우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고재완 기자 star7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