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황정민은 ‘서울의 봄’에서 맡은 보안사령관 전두광과 비주얼적 싱크로율이 0%에 불과하다. 키부터 얼굴, 말투까지 그의 외양은 1980년 각하가 된 전두환 前 대통령과, 1979년에서 2023년까지 벌어진 시간의 틈 만큼 거리가 멀다.
그간 배우 장광, 박용식 등 전두환 前 대통령을 형상화한 캐릭터를 연기했던 배우들의 공통점은 어느 정도 그와 비주얼적으로 닮았다는 것. 그러나 황정민은 분장과 헤어, 의상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전혀 연상되지 않을 정도로 싱크로율이 0%다.
그래서 개봉하기 전에는 황정민표 전 전 대통령을 기대하지 않았는데, 예고편 공개 후 심상치 않은 기대를 불러내더니 지난달 22일 극장 개봉과 동시에 관객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서울의 봄’(감독 김성수, 제공배급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작 하이브미디어코프)은 1979년 12월 12일 수도 서울에서 일어난 신군부 세력의 반란을 막기 위한 일촉즉발의 9시간을 담은 영화.
황정민이 연기 잘하기로 소문난 배우지만 싱크로율이 낮기 때문에 그를 왜 캐스팅한 것인지 궁금증을 높였다. 이에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성수 감독에게 ‘전두광 역에 황정민을 캐스팅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자, “원래 인물의 싱크로율과 무관했다. 제가 이야기를 만드는 것에 있어서 외모가 비슷한 건 중요하지 않았다. 역사 재현극은 아니”라고 말문을 열었다.
“내가 생각하는 탐욕의 화신이자, 굶주린 전두광을 표현하려면 황정민이 무조건 해야겠다 싶었다. 전두광은 (과거의 대통령을) 형상화한 인물로서 관객에게 납득이 되고 이해가 가도록 개연성을 확보하는 게 더 중요했다.”
이어 김 감독은 황정민을 캐스팅한 결정적 계기에 대해 “황정민의 연극 ‘리차드 3세’를 봤다. 리차드 3세는 역사상 가장 사악하고 내면이 비뚤어진 인물이다. 황정민이 그렇게 무시무시한 왕을 연기한 걸 보고 깜짝 놀랐다”고 밝혔다.
‘서울의 봄’에서 다시 만난 황정민의 얼굴엔 익숙한 구석이 없다. 자칫 희화화에 머물 수도 있었지만, 캐릭터에 자신만의 숨결을 불어넣어 배우로서의 색깔을 선명히 드러냈다.
이날 김성수 감독은 “그래도 황정민이 전두광의 모습과 어느 정도 비슷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분장팀에게 ‘얼굴을 비슷하게 만들어달라’는 얘기는 안 했고 ‘대머리는 완벽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특히 ‘코 모양도 저처럼 벌렁코로 분장해달라’고 했다”고 전했다.
이어 김 감독은 “황정민도 자신의 모습으로 나가지 않고 외피를 지우겠다고 하더라. 그건 관객들에게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캐릭터로 들어와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며 “황정민이 ‘(분장이 잘 되면) 제가 악의 끝판왕을 보여 드리겠습니다’라고 하더라.(웃음) 그 배우의 역량과 힘을 아니까 제가 믿지 않을 수 없었다”고 캐릭터를 만들어 온 과정을 설명했다.
황정민은 김성수 감독의 디렉션을 받고 이해해, 탐욕의 정점에 서 있는 전두광 캐릭터 연기를 끝마쳤다.
언제나 그랬듯 관객들은 스크린 속 황정민의 연기를 마치 실제의 인물처럼 믿게 된다.
‘서울의 봄’은 역사를 그대로 풀어낸 시대극이 아니라, 드러난 사실에 김성수 감독의 상상력을 넣은 픽션 정치 누아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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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영화 스틸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