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CJ ENM

[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현빈의 남자' 배우 박훈(43)이 제대로 칼을 갈고 날을 세워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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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 영화 '하얼빈'(우민호 감독, 하이브미디어코프 제작)에서 일본군 육군소좌 모리 다쓰오를 연기한 박훈. 그가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스포츠조선과 만나 '하얼빈'의 출연 계기부터 작품을 향한 열정을 고백했다.

'하얼빈'은 1909년, 하나의 목적을 위해 하얼빈으로 향하는 이들과 이를 쫓는 자들 사이의 숨 막히는 추적과 의심을 그린 작품이다. 안중근이라는 인물에 대한 거대한 심리 드라마는 물론 그와 뜻을 함께한 동지들 사이의 진심과 신념, 고뇌와 의심을 둘러싼 갈등을 묵직하고 진중하게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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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하얼빈'에서 안중근(현빈)과 대척점에 있는 빌런 모리 다쓰오로 변신한 박훈의 존재감은 역대급이다. 신아산 전투에서 패배한 후 전쟁 포로로 붙잡혔지만 안중근의 선의로 풀려난 일본군 모리 다쓰오를 연기한 박훈은 훗날 안중근에 대한 모멸감에 끝까지 안중근을 쫓는 집요함과 비열함을 보이는 악역으로 '하얼빈'의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이날 박훈은 지난 24일 개봉해 이틀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크리스마스 당일 최고 관객수(약 85만명)라는 진기록을 달성한 소회에 대해 가장 먼저 기쁜 마음을 전했다. 그는 "지난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서울의 봄'(김성수 감독) 1000만이 됐다. 올해 또 우연히 크리스마스 기간에 '하얼빈'이 개봉하게 됐고 그것만으로 큰 선물이라 여겼는데 개봉 이틀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오늘(26일)부터 무대인사를 본격적으로 나서는데 바로 관객에게 '100만 돌파 감사하다'며 인사를 하게 돼 얼떨떨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한산: 용의 출현'(22, 김한민 감독) '노량: 죽음의 바다'(23, 김한민 감독) '서울의 봄'에 이어 '하얼빈'으로 다시 한번 시대극에 도전한 박훈은 캐스팅 과정도 드라마 그 자체였다. 박훈은 "사실 나는 '남산의 부장들'(20, 우민호 감독) 미국 쪽 정보원으로 출연했는데 통편집이 됐다. 현장에서 이병헌 선배와 연기하는 것을 통해 너무 많은 것을 배운 작품이었고 영화가 이렇게 만들어진다는 걸 알게 된 작품이었다. 비영화가 너무 근사하게 나왔다고 생각해 서운함도 없었다. 오히려 그 작품을 통해 성장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며 "'남산의 부장들' 이후 우 감독이랑 사적으로 연락을 이어가지 못했고 나도 다음 작품을 열심히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다 '서울의 봄'(23, 김성수 감독)을 찍고 있을 때 우 감독에게 연락이 왔다. 우 감독이 '하얼빈'이라는 영화를 준비하는데 내 생각이 나서 연락했다고 하더라. 우 감독이 통편집 때문에 미안해서 캐스팅을 한 게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건 아니다. 그렇게 '하얼빈' 시나리오를 받게 됐고 읽어보니 이 작품은 어떠한 조각으로든 참여하고 싶더라. 공교롭게 나는 역사 관련된 작품을 많이 해왔는데 의도한 것은 아니다. 한편으로는 역사 장르를 좋아하는 것 같기도 했다. 우리의 역사에서 많이 느끼는 것 같다"고 출연 과정을 설명했다.

이어 "'하얼빈' 촬영을 하면서 우 감독이 나에 대해 정말 미안한 마음을 가졌던 것 같긴 하다. 통편집의 이유에 대해 100번 정도 설명을 들었다. 그런데 나는 성장하는 과정이라 생각해 전혀 서운하지 않았다. 그리고 '하얼빈'에서도 나와 같은 상황을 겪는 배우들이 생길 수 있는데 그런 배우들에겐 내가 먼저 가서 이야기해 줬다. '절대 네가 못 한 게 아니다' '상처받지 말아라' 등 이 일로 위축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해줬다. 배우들이 그런 부분을 밑거름으로 삼길 바랐다"며 "'남산의 부장들' 때는 나처럼 말해주는 선배들은 없었다. 철저하게 개인 위로를 한 것 같다. 다만 현장에서 이병헌 선배가 같이 연기하면서 내게 '너무 좋았어'라고 이야기를 해줬는데 그게 실제로 너무 큰 힘이 됐다. 그걸로 만족했고 선배들의 칭찬을 들으며 기분 좋게 현장에서 나왔던 기억도 있다. 그거면 충분했다"고 웃었다.

'하얼빈' 속 모리 다쓰오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섬뜩한 광기를 드러냈다. 이러한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과감히 삭발한 박훈은 "처음엔 삭발을 우민호 감독이 제안을 했다. '하얼빈'이라는 영화는 시처럼 느껴졌다. 시는 익숙하지 않지만 읽는 독자마다 느끼는 부분이 있지 않나? 시적인 영화에 내 연기를 함축적으로 보여 주고 싶었고 그래서 삭발 제안을 흔쾌히 받았다. 외형적으로 표현했을 때 괜찮을 것 같았다. 삭발을 데뷔 때 해봤는데 그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고 '하얼빈'에서는 조금 다른 지점이 보이길 원했다. 그래서 두피 문신을 했다. 두피 문신으로 기존의 내 헤어, 이마 라인을 전부 바꿨다. 나름 노력을 기울여 캐릭터를 만들었고 촬영지인 라트비아 가서 우 감독에게 보여줬을 때 너무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뿌듯했다. 영화를 보니 더 잘한 선택인 것 같다. 관객이 캐릭터에 몰입할 수 있는 미장센으로 삭발이 훌륭했던 것 같다"고 자평했다.

그는 "주로 라트비아에서 촬영했는데 그 나라는 동양인이 많지 않다. 촬영 때는 지금보다 벌크업이 되어 있기도 하고 동양인이 삭발하고 다니니까 라티비아 시민들이 굉장히 무서워하더라. 그 두려움이 나도 느껴지고 보였다. 그래서 모자를 쓰고 다녔는데 모자를 벗게 되면 다들 날 피해 내 주변으로 길이 열리더라. 그 모습을 뒤에서 본 '하얼빈' 배우들, 스태프들이 박장대소하기도 했다. 아마 내 품에서 흉기가 나올 것 같았나 보더라. 무서운 비주얼이니까 착하게 보이려고 웃으면서 다녔는데 그게 더 역효과가 나서 무섭다고 하더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삭발로 완성된 카리스마 비주얼뿐만 아니라 박훈은 '하얼빈'에서 일본인 못지않은 자연스러운 일본어 연기로 호평을 얻었다. 박훈은 "아무래도 나는 한국인이니까 내가 일본어 연기를 잘해봐야 얼마나 잘하겠나. 그래도 한국 작품에 쉽지 않은 배역으로 함께해준 릴리 프랭키도 있고 일본 관객이 보기에 불편함이 없길 바랐다. 최대한 자연스러움에 있어서 근사치에 다다르려고 노력한 것 같다. 그런데 정말 어렵더라. 일본어를 그냥 말하는 것도 아니고 연기를 더해 말해야 하니까 까다롭게 느껴졌다"며 "일본어 선생님께서 한국말로 모리 다쓰오의 감정과 대사를 전부 설명해 입력해 줬고 그걸 다시 일본어로 출력했다. 작품이 끝나고 나니 나보다 그 선생님의 한국어 연기가 더 늘었더라. 너무 연기를 잘해서 나중에 한국 작품 오디션을 보라고 하기도 했다. 과정이 복잡하고 어려웠지만 후회하지 않게 연기한 것 같아 다행이다"고 고백했다.

이어 "아무래도 일본어 연기라 내가 자유롭게 애드리브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최소한의 움직임이었다. 연기하는 방식이 그 전과 많이 다르고 목소리 톤도 많이 다르다. 최소한의 움직임, 최대한 내 원래 모습을 배제한 묵직함을 보여주려고 했다. 나의 숨, 기운으로 충분히 모리 다쓰오를 표현하고 싶었고 관객들이 캐릭터의 감정과 느낌을 충분히 받길 바랐다. 콤팩트하고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연기를 처음 해봤는데 스스로는 만족한다"고 덧붙였다.

모리 다쓰오의 집착 대상이었던 안중근 역의 현빈에 대해서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는 "현빈이 '하얼빈' 마지막 촬영에서 눈물을 흘렸다. 진짜 강한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우는 모습을 처음 봐 놀랐다. 이 작품을 하면서 현빈이 많은 것을 감내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번 작품을 정말 잘 버텨준 것 같아 고마웠다"며 "나는 많은 매체를 통해 현빈의 연기를 보고 자란 사람이지 않나? '하얼빈'을 보며 현빈의 다음 챕터가 열린 느낌이어서 정말 좋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얼빈'에 앞서 2018년 방영된 tvN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송재정 극본, 안길호 연출), 영화 '공조2: 인터내셔날'(22, 이석훈 감독)에서 현빈을 쫓는 역할을 맡아온 박훈은 공식적인 '현빈의 남자'로 불리고 있다. 이에 "아주 공교롭게 그렇게 된 것 같다. 감독들이 나와 현빈이 같이 나온 전작을 다들 못 보고 캐스팅한 것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하얼빈'은 다 보지 않을까 싶고 앞으로는 현빈을 쫓는 연기는 못하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이번 작품을 하면서 현빈과 전화로 이야기를 나눴는데 서로를 위해서도 그렇고 보는 관객도 방해되면 안 되기 때문에 우리 모두 마지막 작품이라고 생각하며 연기하자고 했다. 끝까지 여한 없이 최선을 다해 달려보자고 다짐하기도 했다. 배우는 익숙해지면 타성에 젖는다고 생각한다. 정말 다른 드라마적 상황에 놓이지 않는 이상 앞으로 현빈과 또 같은 작품을 할 수 있을까 싶다. 같이 연기 하면 너무 감사하고 즐거운 일인데 작품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현빈의 남자는 이제 힘들지 않을까 싶다"고 호탕하게 웃었다.

마지막으로 박훈은 "작은 한 걸음이 느껴지는 영화다. 나도 이 작품의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안중근이 내디딘 작은 한걸음이 좋아 선택했다. 하얼빈 의거는 우리 민족에게 정말 큰 사건이었다. 실제로 그 의거 이후 탄압이 더 심해졌고 먼 미래에 광복이 이뤄졌다. 그 당시 사람들은 이게 잘한 의거인지 못 한 의거인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이 하얼빈 의거를 계기로 또 다른 독립군들이 꿈을 키우기도 했고 포기했던 마음도 다잡는 계기가 됐다. 우리는 보통 안중근과 같은 의인을 영웅화하고 신격화한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안중근은 영웅으로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 영웅이 된 사람이다. 힘겹게 한 발짝 걸어간 진짜 영웅이다"고 말을 맺었다.

'하얼빈'은 현빈, 박정민, 조우진, 전여빈, 박훈, 유재명, 그리고 이동욱 등이 출연했고 '내부자들' '남산의 부장들'의 우민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