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처음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들었어요. 노래할 때와 달리 온 몸에 진땀이 나더군요.”
재즈보컬리스트 웅산(49)이 지난해 12월 서울시 문화부 공무원 10여 명 앞에 섰던 때를 떠올리며 웃었다. 불가에 출가했다 돌아온 뒤 록밴드 보컬을 거쳐 일본 재즈 명예의 전당 ‘블루노트’에 초청받은 최초의 한국인. 그 곡절 많았던 인생 어디를 봐도 재즈 디바 웅산의 손엔 마이크가 어울린다. 그런데 왜 발표 자료를 들고 공무원들 앞에 섰을까.
모든 건 ‘서울재즈페스타’ 공연 때문이었다. 오는 26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서울 용산구 노들섬 라이브하우스에서 ‘유네스코 지정 세계 재즈의 날(매년 4월 30일)’을 기념해 열리는 연속 공연. 서울 도심 한가운데서 정통파 재즈 음악가 100여 명이 참여하는 무료 공연이 엿새나 이어진다. 팬데믹에 지친 애호가들은 예매 시작 20분 만에 약 1만 석 관람표를 매진시켜버렸다.
작년 1월 사단법인 한국재즈협회장(3대)에 취임한 웅산은 이번 대형 공연을 탄생시킨 주역. 코로나 팬데믹의 와중에 이번 공연을 성사시키기까지 결코 쉬웠다고는 할 수 없었다. 웅산은 “지난 3년간 이어진 팬데믹은 재즈계에 잔혹한 겨울을 안겨줬다”고 했다. 실제로 압구정 ‘원스 인 어 블루문’, 이태원 ‘올 댓 재즈’, 부산 ‘몽크’ 등 유명 재즈 클럽들은 공연이 어려워지자 버티지 못하고 줄줄이 문을 닫았다. 그럼에도 재즈 음악가들을 일으킨 건 결국 또 ‘무대’였다. 작년 국내 처음으로 세계 재즈의 날을 기념해 열린 전야제 콘서트에서 희망을 보았던 것. 모든 무대가 얼어붙은 시절이었음에도 신관웅·김수열·김준·최선배·이정식 등 한국 재즈의 탄생을 일군 거장(巨匠)들과 떠오르는 재즈 샛별들이 오랜만에 모여 귀한 무대를 선보였다.
이후 웅산은 아예 이 공연을 국내 최초 ‘세계 재즈의 날 축제’로 만들어보자며 유네스코와 서울시를 끈덕지게 설득했다. 직접 예산안을 짰고, 공무원들에게 1926년 1세대 ‘코리아 재즈 밴드’부터 이어져온 한국 재즈 역사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1세대 재즈 밴드들의 태동지인 미8군 연고지이기도 한 용산구의 노들섬을 공연장으로 삼는 아이디어도 적극 냈다. 노들섬은 코로나의 한가운데서 실내외를 동시에 활용할 수 있는 방역상의 이점도 컸다.
조력자들도 모여들었다. 웅산에게 직접 재즈 보컬을 사사한 제자는 대학교수로 근무하면서도 무보수로 한국재즈협회 사무국장직을 맡아 행정서류를 나눠 살폈다. 자라섬 재즈페스티벌 등 국내 대형재즈페스티벌 운영 경험이 있는 연출진도 직접 이 공연을 맡아 운영하고 싶다며 연락을 해와 손을 보탰다.
덕분에 이번 공연은 서울시 대표 축제 7선 중 하나로 선정됐다. 이정식, 말로, 성기문, 유사랑, Moon(혜원), 조해인, 마리아킴, 이주미, 최우준(SAZA) 등 쟁쟁한 출연진이 무대에 오른다. 그간 국내 출연진 상당수를 대중 가수나 해외 가수로 채우는 경우가 많았던 국내의 다른 재즈 음악 축제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백미는 28일 열리는 ‘SAZA’s 블루스 나이트’. 웅산과 가수 한영애가 국내 최초로 한 무대에 올라 ‘누구 없소’를 함께 열창한다. 한국 자유즉흥(잼 세션) 음악의 전설 강태환 트리오의 피날레 무대도 놓칠 수 없는 장면이다.
현장 관람 표는 마감됐지만 모든 공연이 온라인 플랫폼 ‘네이버 나우(NOW)’로 무료 중계된다. 코로나를 뚫고 돌아온 음악가들이 진정한 재즈의 힘을 보여줄 예정이다. 웅산은 오는 10월 개인 앨범을 발매하고 기념 콘서트도 열 계획이다. 그가 말했다. “척박한 환경에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후배 재즈 음악가가 계속 배출되는게 저의 원동력이고 자랑입니다. 이들을 한 명이라도 더 많이 소개하기 위해 더 많은 무대가 생기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