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일본 총리를 결정하는 자민당 총재 선거(14일)를 앞두고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 대세론이 퍼지고 있다. 자민당 7 파벌 중 5파벌이 스가를 지지하기로 결정, 사실상 그가 차기 총리로 결정됐다는 관측이 유력하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속한 호소다파를 비롯한 5파벌은 ‘아베 정책 계승’을 위해 스가를 지지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스가가 총리가 되면 아베가 물러난 뒤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아베스(아베+스가) 정권’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1982년 나카소네 야스히로가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의 도움으로 총리가 된 후 다나카파 인사들을 대거 기용, ‘다나카소네(다나카+나카소네)’ 내각으로 불린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베스 정권 가능성이 거론되는 가장 큰 이유는 스가가 자력으로 자민당 총재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파벌도 없고, 가문의 후광도 없는 그가 자민당 총재 및 총리가 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스가는 아베, 아소 다로 부총리,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 등 자민당의 최대 주주(株主)들에 의해 실권이 제약된 ‘대표이사’로 옹립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스가 대세론을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호소다파의 호소다 히로유키 전 간사장의 발언은 이런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그는 “아베 총리의 정치를 계승하기 위해서는 스가 장관이 후임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호소다파엔 100명에 가까운 의원이 가입해 있다. 자민당 2인자 니카이 간사장도 자민당의 계속 집권과 아베 정책을 이어 나가기 위해서는 스가가 되는 것이 좋다는 입장이다. 아베는 2012년 12월부터 7년 8개월간 일본의 최장(最長) 연속 재임 총리로 일하면서 아베 1강(强) 체제를 구축해왔다. 그런 아베가 사임 후에도 막후에서 ‘상왕(上王)’처럼 인사 및 정책을 좌우할 수 있도록 스가를 선택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도쿄의 유력 소식통은 “아베는 2012년 자민당 총재가 된 후 여섯 차례 실시된 중·참의원 선거에서 모두 승리했다”며 “아베 덕분에 당선된 의원도 많아 스가 내각이 발족해도 그의 영향력은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아베가 건강 문제로 사임 기자회견을 한 후, 그에 대한 동정 여론이 일고 있는 것도 아베가 계속 영향력을 행사하는 배경이 될 수 있다. 그는 올 들어 코로나 사태에 대한 실책(失策) 등으로 지지율이 30%대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지난달 28일 눈물을 보여가며 사임 기자회견을 한 후 지지율이 오르는 기현상이 나오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회견 직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지지율이 55%로 급등했다.
스가 스스로도 아베와 일심동체를 강조하며 정책 계승을 다짐, 아베스 정권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스가는 2002년 일본과 북한을 오가는 만경봉호에 대한 제재를 주장, 아베의 강경한 대북(對北) 노선에 동참하며 동지적 관계를 맺어왔다. 2차 아베 내각 출범 이후 청와대의 비서실장·정책실장·홍보수석 역할을 하는 관방장관을 7년 9개월째 맡고 있다. 이 때문에 그가 국내 정치, 외교·안보, 경제·사회 정책에서 아베를 부정하거나 벗어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많다.
스가는 2일 출마 기자회견에서도 “아베 총리가 전심전력으로 해 온 것을 확실히 계승하는 데 내 모든 힘을 다 바치겠다”며 사실상 아베에게 ‘충성 맹세’를 했다. 그는 또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와 관련,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조건 없이 만나 활로를 개척하고 싶은 마음은 아베 총리와 같다”고 했다.
그는 일본의 버블 경제 붕괴로 주가지수가 1만 선을 밑돌다가 2만대로 올라선 것은 큰 성과라며 아베를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스가는 과감한 금융 정책, 발 빠른 재정 정책, 성장 전략을 핵심으로 하는 아베노믹스를 부분적으로 조정해가면서 계속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 외교·안보 면에서도 아베처럼 미국과의 관계를 중시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한·일 관계의 핵심 문제인 징용 배상 건에 대해서도 아베가 주장하듯 “1965년 일·한 청구권 협정에 의해서 모두 해결됐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