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일본의 리더로서 국가, 국민을 위해 큰 노력을 해 주신 아베 총리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이 14일 도쿄 한 호텔에서 열린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경쟁 후보들을 압도적인 표 차로 제치고 총재에 당선됐다. 사진은 이날 총재 경선이 끝난 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에게서 축하 꽃다발을 받는 스가 신임 자민당 총재. /교도통신 연합뉴스

14일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70% 지지율로 압승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가 투표장 연단에 올라 인사말 다음으로 가장 먼저 언급한 것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에 대한 감사였다. 그는 참석자들에게 “우레와 같은 박수를 아베 총리에게 부탁 드린다”고 했다. 이어 "아베 총리가 추진해 온 대책을 계승하고 추진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사명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아베는 “스가 관방장관의 모습을 줄곧 지켜봐 왔다. 이 사람이라면 틀림없다”고 했다. “레이와(令和·나루히토 일왕의 연호) 시대에 가장 어울리는 자민당 신임 총재가 아닌가”라는 말로 스가를 치켜세웠다. 이날 두 사람의 발언은 16일 스가가 총리가 된 후에도 아베가 뒤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아베스(아베+스가) 정권’ 가능성을 보여줬다.

일본 북부 아키타현 딸기 농가 출신의 스가는 1996년 중의원에 진출했지만 파벌과 가문의 후광, 빼어난 학벌이 없는 ‘3 무(無) 정치인’에 불과했다. 일본에선 드문 경우다. 요코하마 시의원을 거쳐서 48세의 나이에 나가타초(永田町·국회가 있는 일본 정치 중심지)에 입성한 그를 주목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양손 치켜든 스가 - 스가 요시히데(가운데) 일본 관방장관이 14일 일본 도쿄에서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 후 양손을 번쩍 들어 보이고 있다. 이날 스가는 70%의 득표율로 총재에 당선됐다. 그는 16일 국회에서 아베의 뒤를 이어 일본의 99대 총리로 선출될 예정이다. /AP 연합뉴스

스가의 진가를 알아본 이가 바로 아베였다. 2000년대 초반 스가는 북한 문제를 계기로 일본 최고 정치 명문가 출신의 아베와 손을 잡으면서 정치 인생이 달라졌다. 스가가 당시 온갖 불법행위의 온상이라는 의혹을 받던 북한 만경봉호 제재를 주장하자 당시 관방 부(副)장관으로 대북 강경책을 주장했던 아베가 손을 내밀었다. 스가는 이때부터 자신보다 6살 아래인 ‘아베 총리 만들기’에 진력, 2006년 아베가 1차 집권하는 데 기여했고 총무대신에 올랐다.

아베가 궤양성 대장염으로 2007년 1차 집권 1년 만에 물러난 후에도 스가는 아베의 2차 집권을 구상했다. 2012년 9월 자민당 총재 선거를 앞두고 선뜻 결심을 못하고 있는 아베에게 출마를 강하게 권유한 게 스가였다. 스가의 설득으로 2차 집권을 시작한 아베는 그를 ‘내각의 2인자’인 관방장관에 임명했다. 한국의 청와대 비서실장·정책실장·홍보수석을 겸하는 요직에 기용한 것이다.

스가는 지난 8년간 우직하고 성실하게 관방장관직을 수행해왔다. 지진 등의 위기 상황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해서 매일 아침 40분 걷기 운동을 하면서도 트레이닝복 대신에 양복을 입었다. 매일 복근 운동을 100번씩 하며 여론을 파악하기 위해서 외부 인사와 조찬을 하고, 저녁에는 세 개의 약속을 잡는 것이 보통이었다고 한다. 스가의 애독서는 ‘도요토미 히데나가, 어느 보좌역의 생애’라고 한다. 히데나가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동생으로 형의 보좌관 역할을 했다. 히데요시의 전국 통일을 실현시킨 핵심 참모다. 스가는 관방장관이라는 총리 핵심 참모를 7년 8개월 넘게 했다. 일본 최장수 기록이다. 스가는 14일 총재 선거에 앞서 3213번째 관방장관 기자회견을 하면서 격무로 인해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스가는 아베와 일심동체(一心同體)로 일해 온 덕분에 총리에 오르게 됐다. 하지만 이것이 그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일본 언론은 벌써 스가가 외교·안보, 경제 정책 등에서 아베의 계승을 외치기만 할 뿐 자신만의 색깔을 보여주지 못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스가가 아베와 구별되는 자신만의 정책을 보여주지 못할 경우 내년 9월 아베의 잔여 임기만 채우는 단명 총리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아베와 자민당 거대 파벌의 뜻을 거스르는 정책을 추진할 수 없어 그의 역할이 제한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