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집권 여당인 자민당이 한국 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로 압류된 일본 기업 자산이 현금화될 경우 보복 조치로 도쿄의 주일 한국대사관 및 삼성전자 일본지사 압류를 일본 정부에 요구한 것으로 18일 알려졌다. 이에 일본 정부가 법적 검토를 거쳐 어렵다는 입장을 전했으나 자민당은 여전히 강경 대응을 주문하고 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가 최근 징용 기업 자산을 매각하지 않아야 방한(訪韓)할 수 있다는 입장을 한국에 통보한 배경에는 자민당의 이런 강경한 입장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졌다.
복수의 도쿄 외교 소식통은 “자민당 강경파가 대법원 판결로 압류된 일본 기업 자산이 매각될 경우, 단교(斷交)를 불사할 정도로 강하게 대응해야 한다며 도쿄의 한국대사관과 삼성전자 지사를 압류하는 방안을 보복 조치로 요구했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를 대표하는 대사관과 재계의 상징 격인 삼성전자 압류를 주문한 것이다.
주일 한국대사관은 외교 협약에 따른 치외법권(治外法權) 지역이고, 삼성전자 지사는 징용 문제와는 무관한 민간 기업이어서 압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자민당 외교부회를 중심으로 이 같은 요구가 나왔고, 일본 법무성·외무성 등이 법적 검토를 거쳐 자민당이 요구한 대응 조치는 일본의 헌법 및 법률 위반이어서 취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전했다고 한다.
하지만 자민당에서는 유사시 도쿄의 한국문화원에 대한 제재, 주일 한국 외교관 인원 제한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입장을 계속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외교 소식통은 “주일 한국대사관과 삼성전자 지사 압류는 터무니없는 발상이지만, 자민당이 이를 요구했고 일본 정부가 법적 검토까지 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며 “그만큼 일본의 보수층이 징용 기업 자산 매각 문제에 민감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일본 정부는 징용 기업 자산 매각에 대비, 전(全) 정부 차원에서 외교적·경제적·국제적 차원의 보복 조치를 준비해놓고 있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는 일본이 취할 보복 조치로 무역 재검토, 금융 제재, 비자 발급 정지, 송금 중단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마이니치신문은 최근 재무성·외무성·경제산업성 등이 지난해부터 보복 조치 약 40개를 만들어 검토해왔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여기에는 아소 부총리가 언급한 것 외에도 관세 인상, 국제중재재판소에 제소, 도미타 고지(冨田浩司) 주한 일본대사 귀국 방안 등이 포함돼 있다. 재일교포 사회에서는 “현금화 국면이 되면 보이지 않는 보복 조치가 더 무섭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일본 사회 전체에 혐한(嫌韓) 분위기가 퍼질 경우 세금, 소방, 인허가 등과 관련된 모든 문제에서 재일교포가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중의원(衆議院) 해산 및 총선을 고려 중인 스가 총리는 징용 기업 자산이 매각될 경우,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처럼 한·일 갈등을 정치 재료로 활용하기 위해 강경 대응할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해 7월 참의원(參議院) 선거를 20일 앞두고 반도체 부품 등의 대한(對韓) 수출 규제를 실시, 징용 배상 문제를 정치적으로 활용한 바 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이날 일본 스가 총리의 측근인 가와무라 다케오(河村建夫) 일한의원연맹 간사장을 만나 한·일 관계 현안 등을 논의했다. 이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가와무라 간사장과 비공개 면담을 한 뒤 기자들과 만나 “한·일 현안에 대해 당국 간 적극적으로 협의하고 서로 지혜를 짜내자는 데에는 의견이 일치했다”고 했다. 두 사람 만남에선 일본 징용 피해자 소송과 양국의 통상 마찰 문제 등에 대한 논의도 오간 것으로 보인다. 가와무라 간사장은 면담 후 기자들과 만나 “징용공 문제 해결책을 어떻게 마련할지 서로 노력하자고 했다”며 “서로 지켜야만 하는 원칙은 있지만 해결책을 내기 위해 노력하자는 이야기를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