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는 4일 도쿄를 비롯한 수도권에 ‘코로나 긴급사태'를 선포하는 방안 검토에 착수했다고 발표했다. 스가 총리는 이날 연두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밝혔다. 이에 앞서 TBS 방송을 비롯한 일본언론은 금주 내에 도쿄도와 가나가와·사이타마·지바현 4개 광역자치단체에 긴급사태가 선포되는 방향으로 조정되고 있다고 보도했다.TBS 방송은 오는 9일 토요일 오전 0시부터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YONHAP PHOTO-3129> 코로나19 우려 '외출 자제' 당부하는 일본 도쿄도 지사 (도쿄 AP/교도=연합뉴스) 고이케 유리코 일본 도쿄도 지사가 21일 도쿄에서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 사태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고이케 지사는 시민들에게 불요불급한 외출을 삼가고, 외출 시에도 인원과 시간을 최소로 해달라고 당부했다. jsmoon@yna.co.kr/2020-12-21 20:11:34/ <저작권자 ⓒ 1980-2020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사회적·경제적 계엄(戒嚴)’을 의미하는 코로나 긴급사태가 다시 시행되는 것은 지난해 4월 이후 9개월 만이다. 지난해 긴급사태에 따라 대형 백화점과 공연장이 일제히 휴업에 들어갔다. 대기업은 재택근무를 대대적으로 실시하고, 음식점은 저녁 8시 이후 영업이 사실상 어려워졌다. 올해도 유사한 조치가 실시될 가능성이 크다.

◇ 2년 연속 총리에게 정치적 타격 입힌 고이케

스가 총리의 긴급사태 선포 결정은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 도지사가 주동이 돼 지난 2일 수도권의 지사들과 함께 긴급사태 선포를 요구한 지 이틀만이다. 그는 수도권의 가나가와·사이타마·지바현 지사 3명과 함께 일본의 ‘코로나 사령탑’ 니시무라 야스토시(西村康稔) 경제재생상을 만나 긴급사태 발령을 요구했다. 일본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환자가 매일 3000명 이상 발생하는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비상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니시무라는 “(긴급사태) 발령이 정부의 시야(視野)에 들어오는 엄중한 상황이라는 인식을 공유했다”며 이를 적극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올해도 ‘여제(女帝)’로 불리는 고이케 도쿄 도지사가 일본의 현역 총리보다 한발 빨랐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코로나 사태 초기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당시 총리를 압박, 긴급사태를 끌어낸 고이케 지사는 스가 총리에게도 같은 요구를 하고 나섰다. 고이케의 움직임은 지난해와 판박이라고 할 정도로 닮았다. 당시 그는 4월 첫 주말에 도쿄의 누적환자가 1000명을 넘어서자 5일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아베에게 “하루속히 긴급사태를 선포하라”고 촉구했다. 아베는 경제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소극적이었지만, 고이케의 회견이 국민의 여론을 집중시키자 다음날인 6일 도쿄도를 비롯한 7개 지역에 긴급사태를 선포했다.

정치적 감각이 탁월한 고이케는 이번에도 코로나 확산에 불안해하며 긴급사태 선포를 바라는 여론을 적시에 활용했다. NHK의 지난달 여론조사에서 긴급사태를 지지하는 여론은 57%로 ‘필요없다(30%)’는 응답의 두 배에 육박했다. 이번 발표로 도쿄의 확진자가 6만명이 넘는 책임을 중앙정부에 떠넘겼다는 관측이 나온다.

스가와 고이케의 관계가 원만하다면 긴급사태 문제로 스가가 공개적으로 압박받는 상황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 정계에서 스가와 고이케는 견원지간(犬猿之間)으로 널리 알려졌다.

스가는 고이케가 2016년 자민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도지사 선거에 출마하자 그를 “(퍼포먼스를 앞세운) 극장형 인간에게 도쿄 도정을 맡겨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고이케가 2017년 ‘희망의 당’을 만들어 중의원 선거에 뛰어들자 아베 정권의 2인자로 관방장관을 맡고 있던 그는 고이케에 대한 경계감을 강화했다. 지난해 도쿄에서 코로나 환자가 급증하자 스가는 “이는 전적으로 도쿄 문제”라며 고이케를 몰아세웠다. 이에 대해 고이케는 아베 내각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고 맞받아쳤다.

고이케의 긴급사태 요구는 특히 스가가 곤경에 처한 상황에서 제기돼 둘의 관계는 더욱 악화할 전망이다. 스가는 지난달 여행장려정책 ‘고 투 트래블’의 일시중단을 발표 후, 자신이 수상이 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자민당 간사장과의 갈등설이 제기된 상태다. 전국여행업협회(ANTA) 회장을 맡아 ‘일본 여행업계의 대부(代父)’로 불리는 니카이는 연말연시에 고 투 트래블을 중지한 데 대해 강한 불만을 표출해왔다.

지난해 긴급사태로 2분기 일본 경제 성장률은 연율로 환산할 때 -28%의 전후 최악의 실적이 나왔다. 스가는 코로나 확산도 막아야 하지만 일본 경제가 다시 곤두박질하는 상황을 막아야 하기에 긴급사태 선포에 대해서는 그동안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정치적 감각 탁월한 고이케는 혐한(嫌韓)에 가까워

TV 앵커 출신으로 40세에 정계 입문한 그에 대해 일본 정계에선 ‘집념의 여인’이란 평가와 ‘정치 철새’란 비판이 엇갈린다.

그는 일본신당·신진당·자유당 등을 거친 후 2003년 자민당에 입당했다. 도쿄 도지사가 된 후, 2017년 10월에 열린 중의원 선거에서는 당시 제1야당이었던 민진당을 흡수한 ‘희망의 당’으로 아베에게 도전했으나 실패했다.

코로나 사태는 고이케에게는 정치적 전기(轉機)가 됐다. 고이케는 지난해 코로나 사태 이후 거의 매일 TV에 나와 인지도를 높였다. ‘밀집, 밀폐, 밀접의 3밀 조심’, ‘스테이 홈(Stay Home)’ 등 최근 한국에도 유행하는 코로나 표현은 모두 그가 먼저 시작한 것이다. 고이케는 이같이 기민한 대응으로 지난해 7월 실시된 도지사 선거에서도 무난히 재선될 수 있었다.

일본 우익의 구심점인 ‘일본회의’ 소속인 고이케는 혐한(嫌韓)에 가깝다. 2016년 처음으로 도지사가 될 때 도쿄의 한국학교 이전 백지화를 선거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됐다. 역대 도쿄 도지사들은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학살당한 한국인 희생자에 대한 추도문을 보내왔으나 취임 다음해인 2017년부터는 이를 중단했다.

◇코로나 확산일로의 일본

‘코로나 제3파’가 닥친 일본에서는 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 환자가 8만6000여 명 발생했다. 3일까지 6일 연속으로 코로나 환자가 3000명을 넘겼다. 3일 현재 누적 확진자 24만5913명, 사망자 3634명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