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도쿄 제국호텔에서 재일 교포 사회를 대표하는 재일본 대한민국민단(민단) 신년회가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코로나 긴급 사태가 선포된 상황인데도 일본 측에서 연립 여당인 공명당의 야마구치 나쓰오 대표, 누카가 후쿠시로 일한의원연맹 회장 등 여야(與野) 중견 의원 19명이 참석했다. 하지만 신년회엔 지난해와는 달리 문재인 대통령의 영상 메시지도 없었고, 남관표 주일 대사는 불참했다.
여건이(呂健二·73) 민단 중앙본부 단장은 이날 신년사에서 한국 법원의 위안부 배상 판결 이후 “일본에 사는 100만명 재일 교포의 생활과 미래가 다시 불안해지는 것 아니냐”며 강한 톤으로 불만을 제기했다. “최근의 상황은 1973년 김대중 납치 사건 이후 가장 심각하다. 일본에 사는 우리는 안정적인 생활을 바란다”며 한국 정부가 하루속히 문제 해결에 나서줄 것을 촉구했다. 정부에서 매년 80억원을 지원받는 민단의 단장이 신년 하례식에서 공개적으로 불안감을 호소한 것은 드문 일이다. 13일 민단 단장 사무실에서 그를 만나 그 이유를 물었다.
-재일 교포가 불안해진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일본인은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가게를 갈 때 그 가게가 남측인지, 북측인지를 따진다. 조총련 가게는 이제 가지 않는다. 그런데 (위안부 판결 등으로) ‘한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라’라는 분위기가 퍼지면 교포가 운영하는 곳도 손님이 끊기게 된다.”
-상황이 어느 정도로 안 좋나.
“2018년 징용 배상 판결 이후 불안감을 호소하는 이들이 있다. 지난해에도 지방의 민단 본부에 돌이 날아 들어와 유리가 깨지는 일이 여러 건 있었다. 이곳에도 정문 앞에 경찰차가 없으면 우익들이 몰려온다.”
-일본 사회의 차별은 많이 없어지지 않았나.
“아니다. 지금도 상당하다. 최근 ‘역시 조센징이다’라는 말이 많이 들린다.”
-12일 신년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최근의 상황은 재일 교포의 사활(生死)적인 문제라고 말했다고 언급했는데.
“2019년 오사카 G20 회의 당시 재일 교포 모임에서 문 대통령이 있는 가운데 그렇게 얘기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반응은 없었다. ‘재일 교포가 고생하는 것은 알고 있다’는 일반적인 말만 있었다.”
- ‘재일 교포는 고향이 두 개’라고도 했는데.
“한국 사회가 그 부분을 생각해주면 좋겠다. 우리에겐 부모가 태어난 한국, 내가 태어난 일본 모두 중요한 곳이다. 재일 교포는 양국에 모두 공헌하고 싶다. 그게 보통 인간으로서 당연한 것 아닌가. 그런데 ‘일본 유학한 사람은 모두 친일파’라고 어린애처럼 얘기하는 게 답답하다.”
-2015년 맺은 한일 위안부 합의가 사실상 파기된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약 그것이 불평등조약이라고 생각한다면 외교를 통해서 고치기 위해 노력을 하면 된다. 대한민국은 이승만 정권 때부터 모두 연결돼 있는 것 아닌가. 과거의 한일 합의를 비판하는 것은 좋지만, 합의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근본이 무너진다.”
-민단은 한국 정부가 어떻게 하기를 바라나.
“사법부가 판단을 내리더라도 행정부가 양국 관계를 고려해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사법부 판단 후에는 정부가 개입해서 일본과 미래지향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주기 바란다. 어떻게 해서든 입속의 가시를 빼야 한다.”
-한국 여당의 민단과 조총련 합병 요구는 지금도 계속되나.
“북한과 밀접하게 연결된 조총련의 역사를 알면 그런 얘기를 할 수 없다. 조총련은 법적으로 일본의 감시와 제재를 받고 있는데 어떻게 합치나. 그러면 우리(민단)도 일본 정부의 감시 대상이 된다. 내가 그런 말 하는 국회의원들에게는 ‘공부 좀 하라’고 말한다.”
-한일 관계는 어떻게 가야 하나.
“역사는 비즈니스와 다르다. 사업은 플러스, 마이너스가 분명히 계산되지만, 역사는 그렇게 청산(淸算)되는 것이 아니다. 대화로서 사이좋게 지낼 방법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 그렇게 대화로 해결하지 않으면 양국이 모두 경제적인 손실을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