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년 전 동맹을 맺었던 영국과 일본이 최근 급속하게 밀착, 준(準)동맹 관계로 발전하고 있다. 1902년 러시아 남하(南下)를 막을 목적으로 동맹국이 됐던 두 나라가 최근엔 중국 견제와 경제적 이유를 매개로 뭉치는 분위기다. 일본은 대중 견제를 위한 우군(友軍)을 얻고, 영국은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이후 국제적 영향력을 만회하는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영국과 일본은 3일 화상(畵像)으로 진행한 외무·국방 장관(2+2) 회의에서 영국이 올해 인도·태평양 지역에 퀸 엘리자베스 항모 전단을 파견할 때 자위대와 공동 훈련하기로 합의했다. 중국이 해경국(海警局)의 권한을 대폭 강화한 해경법을 1일부터 실시 중인 데 반대하는 입장도 표명했다. 도미닉 라브 영국 외무장관은 국제법에 토대를 둔 해양 질서 유지와 항행 자유가 중요하다며 중국을 견제했다.
일본 언론은 4일 남중국·동중국해에서 군사력을 증강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양국이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이날 “양국은 지금까지 군사 협력을 위한 협정 체결과 공동 훈련을 거듭해가며 ‘준동맹국’화를 진행해왔다”고 평가했다.
이에 앞서 보리스 존슨 총리는 지난달 “영국인들에게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줄 새로운 파트너십을 구축할 것”이라며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신청한다고 발표했다. CPTPP는 미국이 탈퇴한 후 일본이 주도하고 있는 다자 협정이다.
영일 동맹 ‘부활’은 영국이 먼저 주도했다. 영국의 캐머런 정권은 2015년부터 전후(戰後) 처음으로 일본이 호주, 뉴질랜드처럼 ‘가치관을 공유하는 나라’라며 손을 내밀었다. 중국 견제를 위해 유럽 국가의 지원이 필요한 일본은 영국의 손을 굳게 잡았다. 같은 해 양국은 2+2 회의를 처음으로 개최, 안보·경제 면에서 협력하기로 했다. 2018년에는 일본 국내에서 처음으로 양국군이 공동 훈련을 실시했다. 영국군이 유엔 제재에 의한 북한 선박에 대한 감시 활동에 동참한 것도 이때부터다.
영국은 유럽연합 탈퇴 결정 후 ‘아시아 회귀’를 결정하면서 일본과 맺은 관계를 격상하고 있다. 지난해 두 나라는 코로나 사태 속에서도 자유무역협정(EPA)을 체결했다.
양국이 중요한 다자 협력체에 서로를 끌어들이며 지원하는 현상도 눈에 띈다. 일본은 중국에 대항하는 미국·일본·호주·인도 4국의 안보 협력체(쿼드)가 영국을 포함해 퀸텟(quintet·5인조를 의미)으로 확대하는 것을 지지하고 있다. 영국은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와 함께 기밀 정보를 공유하는 파이브 아이스(Five Eyes)에 소속돼 있는데 일본이 참가해 식스 아이스로 개편되기를 바란다.
양국은 이 과정에서 19세기부터 우호 관계를 맺은 역사도 강조하고 있다. 영국은 1868년 들어선 메이지 정부를 세계에서 최초로 승인함으로써 일본이 국제사회에 데뷔하는 데 도움을 줬다. 1902년 맺은 영일 동맹은 1905년 일본의 러일전쟁 승리, 1910년 일본의 한국 식민지화의 토대가 됐다. 일본은 영일 동맹을 맺은 후, ‘아시아의 영국’이라는 말을 들어가며 발전했다. 자동차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고, 좌측통행하는 것도 영국 문물을 들여왔기 때문이다.
영일 동맹은 1차 세계대전 이후 금이 가기 시작해 1923년 파기됐다. 다시 시작된 영국과 일본의 새로운 협력은 동북아 정세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