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현지 시각) 이집트 수에즈 운하를 가로막은 초대형 컨테이너선 에버 기븐호를 위성 촬영한 사진. 에버 기븐호의 선체 길이는 400m가량으로, 이를 수직으로 세우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보다 더 높다고 한다. /AFP 연합뉴스

초대형 컨테이너선이 이집트 수에즈 운하에서 멈춰서 수로를 오가는 수많은 선박의 운항에 차질을 빚고 있는 가운데, 이 선박의 인양작업이 당초 알려진 것보다 늦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현재 수에즈 운하에는 100척 이상의 선박들이 통행 재개를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 23일(현지 시각) 오전 ‘에버 기븐’이란 이름의 파나마 선적 컨테이너선이 수에즈 운하 북쪽에서 멈춰 서는 사고가 발생했다. 폭 59m, 길이 400m, 22만t 규모의 이 컨테이너선은 중국에서 출발해 네덜란드로 향하는 중이었다. 에버 기븐호는 수에즈 운하 남쪽 입구에서 약 6km 떨어진 곳에서 돌연 멈췄는데, 뱃머리 부분이 한쪽 제방에 박혔고 선미도 반대쪽 제방에 걸쳐진 상태로 배가 멈춰 폭 약 280m인 운하가 가로막혀졌다. 사고 원인은 현재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으나, 에버그린 측은 “갑자기 불어온 강한 바람으로 선박이 항로를 이탈, 바닥과 충돌해 좌초했기 때문”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이집트 수에즈운하관리청(SCA)은 현재 예인선 여러 척을 투입해 다른 선박이 통행할 수 있도록 선체를 수로 방향으로 바로 세우려고 하고 있지만, 사고 선박의 규모가 크고 일부가 모래톱에 박혀 이동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로이터·블룸버그통신 등은 SCA 등을 인용해 에버 기븐호의 선체 일부가 다시 물에 떴고 조만간 선박 통행이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지만, 두바이에 본사를 둔 해양 서비스 회사 GAC와 에버 기븐호 선박관리업체 버나드 슐트는 선체 일부가 물에 떴다는 보도는 부정확한 정보라며 이를 부인했다. 예인 작업이 진척되지 않으면 이 선박에 실린 컨테이너를 하역해 배의 무게를 가볍게 해야 하는데, 컨테이너 하역 작업에는 수주가 걸릴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이 때문에 에버 기븐호 인양과 전면적인 통행 재개에는 최소 수일에서 수주가량이 소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지중해와 홍해를 연결하는 수에즈 운하는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글로벌 교역의 핵심 통로로, 지난해 기준 약 1만9000척의 선박이 이 운하를 통과했다. 에버 기븐호 사고로 인한 수에즈 운하 선박 정체가 장기화하면 원유·가스 수송 등을 비롯한 글로벌 교역에 큰 혼란이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미 국제 유가는 사고 여파로 크게 상승했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5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전날보다 배럴당 5.9%(3.42달러) 오른 61.18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날 현재 수에즈 운하에 정체된 선박이 185척에 달한다고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수에즈 운하 사고는 이미 긴장 상태인 글로벌 공급망을 압박하는 가장 최근의 요인”이라며 “(원자재 등의) 공급 부족을 악화시켜 (상품의) 가격을 상승시킬 수 있다”고 전했다. 수에즈 운하의 통행이 전면 재개된다 하더라도 이미 지연된 일정을 맞추기 위해 선박들이 경쟁하면서 도착 항구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편, 이 사고로 인해 에버 기븐호 소유주와 이 선박이 가입한 보험사가 최소 수백만달러의 배상금을 내야 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이 선박의 소유주는 일본 쇼에이 기센이고 해당 선박은 일본 보험사에 가입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이터통신은 이 사안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소식통들을 인용해, 선박 소유주와 보험사가 SCA와 항행이 중단된 다른 선박들에 의한 막대한 배상금 청구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물류 저널 로이즈리스트의 한 관계자는 “수에즈 운하에서 항행이 지연되면 선주는 하루에 약 6만달러(약 6800만원)의 손해를 본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