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야구의 성지(聖地)로 불리는 효고현 니시노미야시의 고시엔(甲子園)구장에서 한국어 교가는 더 이상 울려 퍼지지 않았다.

일본 선발고교야구대회(봄에 열리는 고시엔 대회)에 첫 출전한 한국계 교토(京都) 국제고는 이날 16강전에서 도카이대스나오고에 5대4로 역전패했다. 교토고는 5회 초 공격 때 2사 만루 기회에서 3번타자 나카가와(포수)가 주자 일소 3루타를 작렬시켜 3대2로 앞서갔다. 이어서 투수 겸 4번타자 모리시타가 안타를 뽑아내 4대 2로 점수 차를 벌렸다. 교토고는 종반까지 이 점수를 잘 지켜 응원단에서는 “다시 기적이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흥분이 일었다.

하지만 투수 모리시타가 9회말 2사 만루에서 역전 2루타를 허용, 8강 진출에 실패했다. 교토국제고 선수들은 시합이 끝난 후, 고시엔 전통에 따라 3루측에서 부동자세로 서서 상대 팀의 교가를 들었다.


일본 야구의 성지(聖地)로 불리는 효고현 니시노미야시의 고시엔(甲子園)구장


전세 버스에 나눠타고 고시엔 구장에 모여들어 메가폰을 두들기며 열정적으로 응원했던 재일교포들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박경수 교장은 본지 인터뷰에서 “9회까지 이기고 있었기에 아쉽기 한이 없지만 여기까지 온 선수들이 고맙다. 선수들의 근성을 더 키워서 여름 고시엔에 대비하겠다”고 말했다.

교토 국제고는 10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고시엔에 외국계 학교로는 처음으로 진출, 돌풍을 일으켰다. 24일 시바타고(미야기현)와 첫 시합을 가질 때 1회말이 끝나고 한 차례, 5대4로 역전승을 거뒀을 때 다시 한국어 교가가 불려진 바 있다.

전체 학생 수가 131명에 불과한 이 학교는 약 4000개 고교 야구팀이 경쟁하는 고시엔에 나가는데 성공,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1947년 재일교포들이 세운 이 학교는 운영난을 겪다가 2004년 일본 교육법 제1조 적용을 받는 학교로 전환했다. 지금은 한국 교육부, 일본 문부성의 재정지원을 받는다. 일본 학생이 60% 이상이어서 사실상 ‘한일연합’ 성격을 갖고 있다. 야구부 선수들은 모두 일본 국적을 갖고 있다. 당시 이사장을 역임한 이우경(87) 교토 민단 고문은 “학교의 성격을 바꿔 일본인 학생을 받아들이기로 했을 때 ‘학교를 팔아먹는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며 “우리 학교 졸업생과 학생들이 한일관계를 밝게 만든다는 생각을 하면 그것은 올바른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27일 고시엔 대회에서 교토 국제고가 패해 16강에서 멈췄다. 패한후 응원단에게 인사하고 있다

니시노미야시(효고현) = 이하원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