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백인 경찰에 목이 눌려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하면서 세계적 반(反)인종차별 시위의 진앙이 됐던 미네소타에서 또다시 경찰이 흑인에게 총격을 가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분노 여론이 들끓는 가운데 경찰은 해당 경찰관이 실수로 권총을 테이저건(전기충격기)으로 착각해 발생한 일이라고 밝혔다.
로이터통신·CNN방송 등에 따르면, 미네소타주 브루클린센터경찰(BCPD)의 팀 개넌 서장은 12일(현지 시각) 기자회견에서 전날 경찰관이 쏜 총에 20세 흑인 청년 던트 라이트가 사망한 사건에 대해 “(경찰 총격은) 우발적 발포로, 이는 라이트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라이트는 11일 오후 2시쯤 브루클린센터 주택가에서 차를 몰고 가다 경찰의 단속에 따라 차를 세우고 하차했다가 경찰 지시에 불응해 다시 차를 타는 과정에서 경찰관이 쏜 총에 맞았다. 라이트는 몇 블록을 운전해 달아다나가 다른 차량을 들이받고 현장에서 숨졌다. 당시 라이트는 비무장 상태였다. 만기를 넘는 자동차등록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는 이유로 라이트의 차를 세운 경찰은 신원 조회 결과 라이트 앞으로 발부된 체포영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체포하려 했으나 그가 차 안으로 달아나자 발포했다. 개넌 서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출동한 경찰관들이 몸에 착용한 보디카메라에 촬영된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에 따르면 경찰관 2명이 라이트의 차에 접근하고 이중 한 경찰관이 수갑을 채우려 시도하는 가운데, 라이트가 차에 다시 타버린다. 이때 다른 여성 경찰관이 뒤따라 접근하면서 “테이저”를 여러 번 외친다. 이어 이 경찰관은 “이런 젠장, 내가 그를 쐈어”라고 말한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때 이 경찰관이 테이저건이 아닌 권총을 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처럼 보인다고 전했다.
브루클린센터는 플로이드 사망 사건이 일어난 미니애폴리스에서 북서쪽으로 약 16km 떨어진 소도시다. 플로이드를 숨지게 한 전직 경찰 데릭 쇼빈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는 와중에 또다시 경찰 총격 사건이 발생하면서 미네소타에서는 분노한 시민들의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CNN에 따르면 11일 밤 수백명이 브루클린센터경찰서 인근에서 시위를 했다. 일부 시위자들은 경찰서와 경찰차량에 돌을 던지기도 했다. 시위대는 경찰과 대치했고 일부는 인근 상점을 약탈하기도 했다. 경찰은 최루탄 등을 발포해 시위대를 해산했다. 현재 브루클린센터가 있는 헤너핀카운티에는 주 방위군이 증강 배치되는 등 치안이 강화된 상황이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이날 라이트 사망 사건에 대해 “정말로 비극적인 일”이라며 “하지만 우리는 수사가 보여주는 것을 기다리고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약탈로 번지는 시위에 대해 우려하며 “나는 평화와 진정을 촉구한다”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미네소타 주지사, 시장 등과 통화했다고 밝히고, 라이트 가족과는 통화하지 못했지만 그들을 위해 기도할 것이라고 전했다.
라이트의 가족들은 라이트가 자신 앞으로 발부된 체포영장의 존재를 몰랐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라이트의 아버지는 아들이 세차하러 가는 길에 총을 맞았다고 전했고, 라이트의 어머니는 사건 당시 아들이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 ‘(경찰이) 룸미러에 걸린 방향제 때문에 차를 세우라고 한 것 같다’고 했다고 전했다. 라이트는 2살된 아들을 부양하기 위해 소매점과 식당 등에서 일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미네소타주 형사체포국(BCA)은 총을 쏜 경찰관에 대해 조사를 진행 중인데, 미국시민자유연합(ACLU) 등 시민단체들은 외부의 독립적인 기관이 수사를 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한편, 던트 라이트 사망 사건으로 인해 미국 프로스포츠 경기가 여럿 취소됐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미네소타 트윈스는 12일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경기를 안전을 위해 취소했다고 밝혔다. 미국프로농구(NBA)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와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미네소타 와일드도 이날 경기를 취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