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마지막 독재자로 불리는 벨라루스의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76)이 전투기를 동원해 그리스에서 리투아니아로 가던 라이언에어 여객기를 수도 민스크 공항에 강제 착륙시키고 탑승했던 반(反)정부 언론인 라만 프라타세비치(26) 등 6명을 체포한 것에 대해 ‘국가 차원의 여객기 납치(state hijacking)’이라는 국제사회의 비난이 높다. 유럽연합(EU)은 24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임시 정상회의를 소집해, 벨라루스 여객기의 EU 역내 영공 비행과 공항 접근을 금지하는 경제제재안에 합의했으며, 벨라루스 기업을 더욱 포괄적으로 제재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백악관도 이날 “충격적이며, 국제 평화와 안보에 대한 뻔뻔한 모욕”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런 국가 차원의 비행기 납치'는 벨라루스가 처음은 아니다. 이란과 리비아 같은 비(非)민주적인 국가는 물론이고, 미국과 프랑스와 같은 서방 국가들도 ‘필요하면’ 여객기를 강제 착륙시켰다. 민간 여객기에 대해 국가가 최초로 ‘강제착륙’을 시킨 것은 1956년의 프랑스였다.
◇오바마 행정부,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의 전용기 강제 착륙시켜
2013년 7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귀국길에 오른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의 전용기는 오스트리아에 착륙해야 했다. 미국 정부는 전용기 안에 미 중앙정보국(CIA)과 국가안보국(NSA)의 전세계 통신 감청 사실과 자료를 언론에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이 탑승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벨라루스처럼 ‘가짜 폭탄’ 핑계를 대거나 전투기를 동원하지는 않았다. EU 국가들에 압력을 넣어, EU 영공에 이 전용기가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모랄레스가 탄 전용기는 뚜렷한 우회로를 찾지 못했고, 결국 재급유를 위해 오스트리아에 착륙해야 했다. 스노든은 이 전용기에 타지 않았다.
◇미 네이비실, 팔레스타인 조직원 체포 위해 이집트 여객기 착륙시켜
1985년 10월엔, 미 해군의 F-14 전투기 4대가 출격해, 이집트에서 튀니지로 가던 이집트에어 전세기를 이탈리아 시칠리의 미∙이탈리아 합동 공군기지에 착륙시켰다. 이 여객기엔 미국인 1명이 숨진 크루즈선 납치에 가담했던 팔레스타인해방전선(PLF) 조직원 4명이 타고 있었다. 하지만, 이탈리아 군경찰과의 대치 끝에, 미국 정부는 4명의 신병을 이탈리아에 넘겼다. 이들은 이탈리아 법원에서 형을 선고 받았다.
◇이란, 키르기스스탄 여객기 하이재킹한 뒤 반체제 인사 처형
이란도 2010년 2월 전투기를 동원해, 두바이에서 키르기스스탄 수도 비시케크로 가던 ‘이스톡-아비아’ 여객기를 이란 남부 반다르압바스 공항에 강제 착륙시켰다. 이란 정부는 탑승객 2명을 테러 혐의로 체포했고, 이 중 수니파 무장운동세력인 ‘준달라’의 지도자 압돌말레크 리기를 수개월 뒤 처형했다.
◇리비아, 수단 쿠데타 지도자가 탄 여객기 하이재킹
1971년 7월 수단에서 쿠데타가 발생하자, 해외에 있던 2명의 쿠데타 주모자는 브리티시해외항공(BOAC)편으로 수도 카르툼으로 향했다. 그런데 리비아 정부는 전투기를 동원해, 이 여객기를 자국 벵가지 공항에 강제 착륙시켰다. 이후 리비아 정부는 탑승객 중에서 쿠데타 주모자 2명을 골라냈고, 쿠데타가 실패하고 복원된 수단 정부에 이들을 넘겼다. 두 사람은 하루 만에 처형됐다.
◇최초의 국가차원 하이재킹 원조는 프랑스
1956년 프랑스에서 독립한 모로코의 왕 모하메드 5세는 이웃 알제리의 독립을 돕기로 했다. 그래서 프랑스와 싸우는 벤 벨라를 비롯해 알제리의 ‘민족해방전선(FLN)’ 지도자 5명을 10월21일 수도 라바트의 왕궁에서 맞았고, 무기 지원을 약속했다. 이들은 다음날 모하메드 5세와 함께 전용기로 튀니스로 갈 예정이었는데, 막판에 전용기에 자리가 여의치 않아 민간 여객기를 타기로 했다. 그러나 프랑스군은 이들 5명의 동태를 계속 살피고 있었고 모하메드 5세의 전용기에 타지 않은 것이 확인되자 바로 하이재킹해서 알제리에 강제 착륙시켰다. 벤 벨라는 이후 5년간 재판도 없이 프랑스에 구금됐다. 이들은 알제리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하기 4개월 전인 1962년 4월에야 풀려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