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겨울. 남침한 북한군을 연파하고 38선 넘어 파죽지세로 북진하며 통일을 눈앞에 두는 듯 했던 국군과 미군 등 유엔군은 인해전술로 밀고 내려온 중공군 공세에 밀리며 악전고투하고 있었다. 이 때 이역만리 동토의 땅에서 목숨을 걸고 인류애를 실천했던 두 외국인을 천주교 성인으로 추대하는 절차가 탄력을 받고 있다는 소식이 6·25 전쟁 발발 71주년 닷새를 앞두고 잇따라 들려왔다. 1만4000여명의 피란민에게 자유를 안겨다준 흥남철수작전의 영웅 레너드 라루(1914~2001) 메리디스 빅토리호 선장과 중공군 포로 수용소로 끌려간 뒤에도 동료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다 목숨을 잃은 군종 신부 에밀 카폰(1915~1951)이다. 연배도 비슷한 두 사람은 직접 총을 든 군인은 아닌데도 살벌한 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인류애를 실천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이 성인으로 추대될 경우 6·25 전사와 천주교 역사가 모두 새롭게 쓰이게 된다.

레너드 라루 선장. 그는 흥남철수작전을 마치고 1954년 수도자가 돼 2001년에 타계했다. /조선일보 데이터 베이스

미국의소리(VOA) 방송은 18일(현지 시각) 미국 가톨릭 주교회의가 1950년 흥남항에 발이 묶여있던 피란민 1만4000여명을 성공적으로 거제도로 실어나른 메리디스 빅토리호의 레너드 라루 선장의 시성(諡聖)을 위한 국내 절차를 밟기로 의결한 소식을 전했다. 라루 선장은 1954년 마리너스라는 이름으로 성 베네딕토 수도원에 입회해 평생을 수사로 지내다 2001년 타계했다. 주교회는 이날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선원으로서 라루 선장이 보여준 영웅적인 행동과 이후 천주교 수사가 된 뒤 보여준 수도자로서의 청빈과 순명의 삶은 시복(諡福)과 시성(諡聖)절차로 이행하기에 충분하다”고 밝혔다.

흥남 철수 당시 피란민을 태운 메리디스 빅토리호(號) /조선일보 DB

VOA에 따르면 주교회의는 전날 화상으로 열린 연례 추계총회 에서 현재 ‘하느님의 종’ 지위에 있는 라루 선장의 시성을 위한 다음 절차로 이행하는 안건을 표결에 부쳐 99%의 찬성으로 가결했다. 이번 결정으로 이제 라루 선장의 지위를 다음 단계인 ‘복자’로 추대하기 위한 절차가 진행된다. 천주교 성인으로 추대되기 위해서는 우선 ‘하느님의 종’과 ‘복자’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VOA는 “그가 생전 소속됐던 뉴저지주 패터슨 교구가 2019년 그를 ‘하느님의 종’으로 선포하면서 시성 절차가 시작됐다”고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방문 당시 버지니아주 콴티코의 미 해병대 국립박물관을 방문해‘장진호 전투 기념비’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한·미 동맹은 전쟁의 포화 속에 피로 맺어졌다”며‘혈맹(血盟)’을 강조했다. /연합뉴스

중공군의 대공세라는 긴박한 상황에서 벌어진 흥남철수는 크리스마스의 기적으로도 불린다. 1950년 12월 38선을 넘어서 북진하던 국군과 미군 등 유엔군은 중공군의 공세와 살인적 한파 등 전황이 불리해지자 흥남부두를 통해 군인과 피란민 및 각종 물자를 배편으로 철수하는 작전을 세웠다. 그 주역 중 한 사람이 화물선 메리디스 빅토리호를 이끌던 서른 여섯살의 선장 라루였다. 그러나 흥남부두에 정박해 있던 7600 t급 화물선 메리디스 빅토리호도 탑승 정원은 고작 60명 수준이었다. 이에 배에 최대한 많은 사람을 태우기 위해 싣고 있던 무기와 물자를 버리고 피란민들을 승선시키는 작전이 진행된다.

배에 승선하기 위해 흥남부두에서 기다리고 있는 피란민들.이 사진을 찍은 라이프지 던킨 기자는 “빨리 빠져나가고 싶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고 표현했다(위). 흥남 철수가 완료된 후 중공군의 항만시설 이용을 막기 위해 유엔군이 흥남부두를 폭파시키는 모습. /조선일보DB

열 여섯시간동안 정원의 230배인 1만4000여명의 피란민이 배에 탔고, 12월 22일 흥남을 떠난 배는 23일 뒤 단 한 명의 사상자도 없이 무사히 거제도 장승포항에 도착했다. 당시 거제로 향하는 배 안에서 이 산모 5명이 잇따라 아이를 낳아서 이들에게 ‘김치 파이브’라는 별명이 붙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부모도 이 배를 타고 흥남에서 거제로 향한 피란민이었다. 수도자가 된 그는 생전 흥남철수 작전을 회고하며 “하느님의 손길이 우리 배의 키를 잡고 계셨다”말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7월 방미 일정 중 방문한 미국 해병대 박물관 구내 장진호 전투 기념비에서 라루 선장의 헌신을 언급하면서 “장진호의 용사들이 없었다면, 흥남철수 작전의 성공이 없었다면, 제 삶은 시작되지 못했을 것이고, 오늘의 저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정부는 1955년 라루 선장에게 을지무공훈장을 수여했고, 작년 12월에는 ‘이달의 전쟁 영웅'으로 선정했다.

에밀 카폰 신부가 6·25 참전 당시 야전에서 미사를 집전하는 모습. /미 국방부

중공군 포로 수용소로 끌려가 모진 학대를 받으면서도 동료 미군들을 돌보고 영적으로 위로하다 1951년 세상을 떠난 뒤 70년만에 유해가 확인된 미 육군 군종 사제 에밀 카폰 신부의 시성 절차도 탄력을 받고 있다. 역시 ‘하느님의 종’ 지위에 있는 그의 유해가 발굴되면서 이후 절차가 빠르게 이행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올해 3월 미 국방부 산하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에 의해 유해가 확인된 카폰 신부의 장례식은 오는 9월 25일부터 고향 캔자스에서 닷새 일정으로 성대하게 진행된다. 하와이에서 수습된 유해가 25일 캔자스주 위치토의 아이젠하워 공항에 도착하면 그가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마을 필센에서 이틀밤을 보낸 뒤 위치토에 있는 6500명 수용 규모의 대형 공연장인 하트만 아레나에서 장례 미사가 열린다.

최근 그의 고향 캔자스시티 위치토 교구 성당에서 제막된 카폰 시부의 동상. /천주교 위치토교구

6·25 당시 군종 사제로 참전한 그는 1950년 11월, 북진하던 미군이 중공군의 기습 공격을 받고 후퇴할 당시 상부의 탈출 명령을 거부하고 부상병들을 돕다가 중공군의 포로가 됐다. 이후 중공군 포로수용소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는 상황에서도 미군 동료들은 물론 적군들까지 헌신적으로 돌보다 이듬해 숨진 사실이 동료 수감자들의 증언으로 전해졌다. 그는 2013년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최고 등급의 무공 훈장인 ‘명예 훈장’을 사후 수여받았다. 카폰 신부 역시 라루 선장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종’ 지위에 있는데, 고향 캔자스주의 위치토 천주교구가 앞장서 성인 추대를 추진하고 있다.

카폰 신부 유해 발굴 이후 역대 최대규모로 진행된 도보 순례 소식을 전한 위치토교구 소식지 '가톨릭 어드밴스' 지면. /가톨릭 어드밴스

특히 실제 유해의 발견으로 향후 절차에 탄력이 붙을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이런 기대감을 반영한듯 캔자스주 천주교 신자들이 그의 삶을 기리기 위해 위치토와 고향마을 필센을 직접 걷는 연례 순례는 진행 13년차인 올해 역대 최대 참가규모를 기록했다고 미 자유아시아방송(RFA)이 지난 15일 보도했다. 특히 미국 뿐 아니라 한국 천주교계에서도 카폰 신부의 성인 추대에 대해 관심과 기대를 갖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대변인 허영엽 신부는 RFA 인터뷰에서 “유해가 있다는 것은 성인이나 복자를 공경할 때는 중요한 부분”이라며 “현재 유해 발굴이 확인됐고, 카폰 신부님임을 확인됐다는 것은 천주교에서는 시복, 시성, 복자와 성인이 되는 데 중요한 탄력을 받을 것 같다”고 말했다.

천주교 캔자스주 위치토교구에서 만든 카폰신부의 귀향행사 문장. /천주교 위치토교구

조카 레이 카폰씨는 RFA에 “앞서 로마 교황청에서 투표해 다음 단계로 갈 것인지 결정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 상황이 겹치면서 절차가 지연된 것 같다”며 “삼촌의 생존 전우들은 ‘우리가 수용소에서 끝내 살아 남을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카폰 신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고 전했다. 앞서 최근 선종한 고(故) 정진석 추기경은 카폰 신부의 삶을 그린 ‘종군 신부 카폰’을 1956년 국내 최초로 번역했고, 지난 18일 개정판이 정 추기경의 유작으로 출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