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에서 바퀴(wheels)는 B.C. 3500년 경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처음 등장했다. 2009년 미국 스미소니언뮤지엄 매거진은 “당시 인간의 발명품이 대개 자연에서 원형(原型)을 찾을 수 있었던 것과는 달리, 바퀴는 완전히 인간의 창작물이었다”고 소개했다.

그런데 이 바퀴를 지금처럼 여행용 가방에 처음 ‘공식적’으로 붙인 것은 1972년 미국의 발명가 버너드 새도우(Sadow)였다. 이전까지는 우리가 흔히 ‘롤링 백(rolling bag)’이라고 부르는 것은 없었고, 기껏해야 가방을 얹어서 이동할 수 있는 별도의 바퀴 달린 접이식 카트나 휴대용 포터(portable porter)라는 게 존재했다.

바퀴 달린 가방이 발명되기 전에, 사용됐던 포터블 포터(portable porter). 가방을 얹혀서 이동할 수 있게 하는 이 물품은 큰 인기는 없었다.

바퀴가 가방에 붙기까지 왜 5000년이 걸렸을까.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쉴러 교수는 이를 놓고 ‘내러티브 이코노믹스’ ‘새로운 금융질서’ 두 권의 저서에서 “발명이란 과정이 얼마나 더딜 수 있는지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 “종종 너무나도 명백한 것이 안 보일 수 있다”고 했다. 또 ‘블랙 스완’의 저자인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바퀴 달린 가방은 우리가 가장 단순한 해법을 무시하는 경향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다”고 했다.

스웨덴의 언론인 카트린 마르살과, 그가 지난 5월에 낸 책 '발명의 어머니'

하지만, 지난 5월 ‘발명의 어머니’라는 책을 낸 스웨덴의 언론인인 카트린 마르살은 완전히 다른 설명을 제시했다. 바로 ‘남성다움’이 롤링 백의 출현을 막았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기고한 글에서 “발명의 역사에서 ‘남자다움’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이 발명과 혁신의 속도를 늦춘 사례는 많다”고 밝혔다.

마르살에 따르면, 현대적인 형태의 가방은 서양에서 대중의 여행이 활발해지면서 19세기말 처음 나왔다. 유럽의 대형 역(驛)마다 짐꾼들이 여행용 가방을 날랐다. 그러나 1950년대쯤 되면, 여행객들은 자기 가방을 직접 날랐다. 1940년대 영국 신문을 보면, 바퀴 달린 가방 이동기구(portable porter) 광고가 나오기 시작한다. 그러나 유행하지 못했다. 마르살은 또 “1972년의 바퀴달린 가방 ‘발명’ 전에도, 사실 바퀴 달린 여행용 가방이 더러 있었다”고 밝혔다.

1952년 영국의 한 역에서, 세 명의 여성이 수레에 여행용 가방을 올려놓고 밀고 끄는 모습.

그런데도, 위의 1952년 사진에서처럼 여성들이 짐 수레를 미는 까닭은 바퀴달린 가방에 대한 수요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만 여행은 남성 위주였고, 여성은 짐을 나를 수 있는 남성과 함께 여행하는 분위기였다. 남성들은 바퀴 달린 가방을 끄는 것은 ‘남자답지 못하다’고 생각했고, 따라서 시장의 수요가 적었다.

공식 발명가인 새도우는 ‘구르는 수하물(rolling luggage)’로 특허를 냈지만, “남편이 아내의 짐을 나르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마초 감정이 팽배해, 찾아가는 백화점마다 ‘바퀴 달린 가방을 누가 끄느냐’며 거부했다”고 말했다.

1972년 뉴욕시 메이시(Macy's) 백화점의 '미끄러지는 가방' 광고.

뉴욕시의 메이시 백화점이 대대적인 광고를 한 뒤에야 수요에 불이 붙었다. 그리고도 ‘바퀴 달린 가방’이 대중화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다.

‘남자라면~’이란 고정관념이 기술 혁신을 막거나 유보한 예는 많다. 전기 자동차는 이미 1800년대에 나왔지만, 특히 미국에선 작고 속도도 느린 전기 차는 남성답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자동차의 시동(始動)장치도 차량 앞부분의 핸드 크랭크를 힘들게 돌려 시동 거는 대신에, 1903년 간편한 전기 스타터가 나왔다. 그러나 훨씬 안전한 이 시동 장치를 놓고도, 남성답지 못하다는 반응이 초기엔 지배적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