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지난해 코로나 대유행으로 확진자·사망자가 쏟아지는 동안 낙태도 전례없는 규모로 급증했다고 영국 언론들이 30일 보도했다. 영국 보건사회부가 최근 발표한 ’2020년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낙태 통계’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 잉글랜드와 웨일스 지역에서는 20만9917건의 낙태가 이뤄졌다. 15세에서 44세의 여성 1000명당 18.2건의 낙태가 이뤄진 것이다. 이는 1967년 영국 의회가 낙태 합법화 법안을 통과시킨 지 53년 만에 가장 많은 수치다. 집계에 반영되지 않은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 수치까지 합산할 경우 낙태 건수가 더욱 늘어나게 된다.
특히 가임기인 30대 이상 여성의 낙태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2010년 30~34세 여성 1000명당 16.5건이던 낙태 건수는 지난해 21.9건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35세 이상 여성의 낙태 건수 역시 6.7건에서 10.6건으로 늘어났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인한 고용 불안정이 낙태 급증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한다. 클레어 머피 영국 임신 자문 서비스(BPAS) 최고책임자는 “수치상으로 볼 때 코로나 팬데믹이 여성의 임신 선택권에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하다”며 “경제적 불확실성과 고용 불안정 상태에 놓인 여성과 파트너는 계획하지 않은 임신을 했을 때 힘든 결정을 내리게 된다”고 했다.
영국 노동조합총협의회(TUC)에 따르면, 지난해 9월부터 11월까지 영국에서 이뤄진 여성 정리해고는 17만8000건에 달했다. 이는 미국발 글로벌 금융 위기의 여파로 여성 정리해고가 10만여 건에 달했던 2009년보다 76% 더 높은 수치다. 이뿐만 아니라 코로나 확산이 시작된 2019년 12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여성 10명 중 6명과 도소매업에 종사하는 여성 10명 중 6명이 일자리를 잃은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 당국이 코로나 봉쇄 기간 낙태 절차를 간편화한 것도 낙태 증가의 요인으로 꼽힌다. 영국은 임신 24주 미만 태아에 대한 낙태가 합법화돼있는데, 지난해 3월 영국 보건사회부는 코로나 봉쇄 조치 기간 동안 임신 10주 이내 여성의 경우 병원에 방문할 필요 없이 전화나 온라인 상담만으로 임신중절 약물을 복용할 수 있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