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6~9일, 중국 윈난(雲南)성 쿤밍(昆明)시에선 부탄과 중국 간에 제10차 영토 전문가 미팅이 열렸다. 두 나라는 1984년부터 2016년까지 모두 24차 영토 확정 회담을 가졌지만, 아무런 결론도 내지 못했다. 이날 전문가 미팅은 25차 회담 날짜와 의제를 정하는 회의였다.
그러나 중국은 영토 회담을 벌이는 와중에도 양국 간 기존 영토분쟁 지역이었던 부탄 북부의 자칼룽-파삼룽, 서부의 도클람 두 곳 외에, 작년6월 부탄 동부의 사크텡 자연보호지역까지 주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뿐만 아니라, 부탄 국경을 2.5~10㎞ 들어온 곳곳에 티베트인 정착촌과 중국군 기지를 건설했다. 지난달 17일 영국 런던정치경제대학(LSE)의 한 정세 보고서는 “중국이 남중국해에서와 같은 영토 확장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고 평했다.
미국의 외교전문잡지인 ‘포린 폴리시’는 지난 5월 “중국어 표현대로, 누에처럼 야금야금 먹다가 한순간 고래처럼 삼키는(蠶食鯨呑·잠식경탄) 전형적인 수법”이라고 비판했다.
◇중국 영토의 250분의1인 부탄, 속수무책으로 당해
인구 75만 명인 부탄의 면적은 3만8300여 ㎢. 충청도와 전라도를 합한 크기에 약간 못 미친다. 티베트 고원의 빙하와 스텝 사막이 주(主)를 이루는 477㎞의 국경을 중국과 맞대고 있다. 양국은 부탄 서부의 도클람(269㎢)과 북부의 자칼룽-파삼룽 밸리(495㎢) 두 곳의 주권을 놓고 서로 다퉈왔다. 이곳만 합쳐도 764㎢로, 서울(605.2㎢)보다 크다.
24차례 영토 확정 회담을 가지면서도, 중국은 제멋대로 약소국 부탄 영토를 유린했다. 작년 11월 19일 중국의 한 안보전문가는 (중국 영토인) 티베트 남부에 현대식 ‘팡다(Panda) 빌리지’가 세워져 전통 의상을 입은 티베트인들이 기념하는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다. 그런데 이 ‘팡다 빌리지’의 지형도를 덧붙인 게 ‘실수’였다. 중국 전문가들은 이 지형을 구글 지도에서 찾았고, 결국 이 ‘팡다 빌리지’가 부탄 서부의 영토분쟁 지역인 도클람 인근으로, 부탄 영토 2.5㎞를 침범해 세워진 것을 밝혀냈다. 이 트윗은 황급히 지워졌지만, 결국 중국은 이를 인정했다, 도클람 근처 중국‧부탄 국경에는 이밖에 중국군의 강화된 무기고도 들어와 있다.
작년 11월에는 중국군이 부탄 북부 파삼룽 계곡에서 아예 부탄 영토 10㎞까지 들어와 부탄군 초소 앞에 중국 국기를 꽂고 한자를 적었다. 부탄군의 자국 내 순찰도 막았다. 물론 그 이전에도 티베트 유목민들이 종종 국경을 넘어 방목하면, 중국군도 이를 핑계로 계속 국경을 넘었지만 이번엔 아예 노골적이었다.
◇중국, 부탄 왕가의 성지(聖地) 인근에 버젓이 정착촌 세워
포린 폴리시는 지난 5월, 중국이 부탄 북부 파삼룽 지역의 ‘걀라푸그(Gyalphug)’에 세운 티베트 정착촌을 집중 보도했다. 이 정착촌은 2015년 지어진 이래, 수많은 티베트인과 중국군이 이 곳으로 옮겨왔다. 그런데 이 정착촌은 부탄 영토 내에 있다. 잡지는 “다른 나라 영토를 침범해 정착촌 건설을 세우는 것은 중국이 인도와 잇단 군사 충돌을 겪으며 보여준 군의 전진 배치‧정찰 차원을 넘어선 것으로, 남중국해에서 보여준 행태를 그대로 되풀이하고 있다”며 “시진핑 주석이 2017년 이후 히말라야 산맥에 있는 국가들의 허를 찌르며 국경선을 그리는 방법”이라고 보도했다.
더욱이 걀라푸그는 부탄인 대부분이 믿는 티베트 불교의 성지이자 현(現) 부탄 왕조의 조상이 살던 성지(聖地) 베율(Beyul‧'숨은 계곡’이란 뜻)에 속한 곳이다. 1980년대 중국 지도에도 부탄 영토로 표시됐고, 부탄 왕국이 결코 내줄 수 없는 곳이다.
◇작년 6월부터 부탄 동부까지 “중국 영토”라고 주장
작년 6월 2일, 중국은 부탄 동부의 사크텡 자연보호지역까지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부탄의 동쪽은 인도의 아루나찰 프라데시주(州)와 중국이 만나는 곳이다. 인도가 부탄의 사크텡을 남북으로 종단하는 도로를 건설하겠다고 하자, 중국이 사크텡도 자기 땅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부탄 정부는 “사크텡은 중국이 한 번도 영토 분쟁을 제기한 곳이 아니다”고 거부했지만, 중국은 막무가내다. 미 MIT대 안보학 프로그램의 중국 전문가인 테일러 프라벨은 “사크텡은 중국 지도에조차도 중국 영토로 표시돼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지난 7월 미국의 안보정책 싱크탱크 제임스타운 재단의 한 보고서는 “사크텡은 부탄 면적의 11%로, 이를 포함하면 부탄의 12%가 중국과의 영토 분쟁 지역에 놓인다”고 밝혔다.
◇중국이 제일 탐내는 부탄 영토는 ‘도클람’
중국이 부탄 영토에서 가장 눈독을 들이는 것은 서부의 도클람 고원이다. 중국‧인도‧부탄 3국이 만나는 해발 4600m의 고원 지대로 34㎢에 달한다. 현재는 부탄이 실효 지배하기 때문에, 상호 방어 조약을 맺은 인도군이 이곳에서 건너편 춤비 밸리의 중국군 움직임을 내려다본다.
중국이 이 전략적 요충지를 확보하면, 인도 북동부 시킴 주(州)의 ‘실리구리 회랑(Siliguri Corridor)’을 움켜쥘 수 있다. 폭이 22㎞밖에 안 돼, 이른바 ‘닭의 목(Chicken’s neck)’이라 불리는 곳이다. 이 탓에, 2017년 6월에도 중국군이 도클람 인근에 군(軍)도로를 건설하기 시작하자, 인도군이 국경을 넘어 중국군과 73일간 대치하기도 했다.
중국은 작년 7월 부탄 왕국에 ‘패키지 딜’이란 것을 내놨다. 부탄 북부의 영토를 포기할테니, 서부의 도클람을 내놓으라는 ‘땅 교환’안이다. 사실 이는 1996년에 중국이 내놓은 방안이지만, 이제 도클람과 부탄 북부의 영토를 많이 잠식한 상태에서 다시 내놓은 것이다. 그러나 부탄으로선 “영토를 조약 상대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데 사용되도록 허용하지 않는다”는 인도와의 우호조약에 따라, 도클람을 넘길 수도 없다. 인도‧태평양 지역의 국제정세를 다루는 인터넷 매거진인 디플로매트는 “도클람이든 사카텡이든 부탄‧중국 간 분쟁은 결국 중국과 인도가 머리를 서로 들이대고 있는 것”이라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