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중국 같은 대국(大國)들은 후발 주자로 시작해도 늦지 않아요. 정부, 대학, 독지가들이 합심해 1000억원대 광폭 지원을 해주니까. 하지만 우리나라 연구자들은 남들보다 먼저, 기민하게 선두를 점해야 합니다. 그래야 작은 기회들이나마 얻을 수 있어요.”

서울 신촌세브란스 병원 연구실에서 만난 장진우 교수는“난치성 신경계 질환 치료에 꽂혀 예순 넘게‘돈키호테’로 살았다”며 웃었다. /장련성 기자

장진우(62) 연세대 신경외과 교수는 수전증·파킨슨병·우울증·강박장애 등 다양한 난치성 신경계 질환을 ‘고집적(高集積) 초음파 수술’로 세계 최초·최다 수술한 이 분야 최고 전문가다. 지난달 그는 미국 초음파 재단에서 치매 임상연구비 20만달러(약 2억3400만원)를 지원받았고, 6월엔 세계치료초음파학회에서 한국인 최초로 프라이상(평생공헌상)을 받았다. 지금은 세계정위기능신경외과학회장 직을 맡아 전 세계 신경외과의(醫)들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최근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연구실에서 만난 장 교수는 ‘세계 최초’ 타이틀에 대해 “화끈하고 개척정신이 강한 편이다. 성격이 기회를 만들었을 뿐”이라며 겸손해했다. 업계에서 그의 별명은 ‘돈키호테’다. ‘돈 되는 분야’보다 ‘재밌는 분야’를 찾아 우직하게 걸어온 때문이다.

1997년 미국 시카고대에서 연구원 생활을 할 때다. 뇌심부자극술(뇌 심부에 전기로 자극을 줘 파킨슨병을 치료하는 수술법)이 처음 소개되는 워크숍에 참석했다가 당장 우리나라에 도입하고 싶은 마음에 “관심 있다, 한국에 들이게 해달라”며 기기 회사를 졸랐다. 단칼에 거절당했다. 당시 한국은 ‘IMF 외환위기를 겪고 있는 후진국’ 취급을 받고 있었다. 분한 마음에 서둘러 귀국한 그는 기기의 국산화를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뭔가에 꽂히면 맹목적인 추진력과 집중력이 생깁니다. 그걸 원동력 삼아 여기까지 왔지요.” 그가 웃으며 말했다.

10년 뒤인 2008년 장 교수는 신문 해외 토픽면에서 재밌는 기사를 발견했다. ‘스위스 취리히대 연구팀이 두개골을 열지 않고 뇌 질환을 치료하는 방법을 연구 중’이란 소식이었다. 호기심이 동했다. 관련 기기를 만들고 있다는 이스라엘 생명공학기업 인사이텍을 찾아냈다. 본사에 연락해 “나와 만나달라”고 끈질기게 요구했다. “주변에선 그 회사가 사기꾼일지도 모른다며 말렸지만 제 두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선 물러설 수 없었죠.” 이스라엘로 직접 갔다. 결국 그는 3년 뒤인 2011년 인사이텍과 함께 세계 최초로 고집적 초음파 수술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 퇴행성 뇌신경 질환인 파킨슨병은 후유증으로 심한 손떨림이 생기면 일상생활이 힘들다. 글씨를 쓸 수 없는 것은 물론, 물이 든 컵을 잡고 물을 온전히 마시기도 힘들다. 식사, 문 열고 닫기 등 일상생활의 거의 모든 동작이 손에서 이뤄지기에 손떨림 불편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환자들은 말한다. 그가 도입한 수술 덕에 물컵을 쥐는 것도 어려웠던 국내 파킨슨병 환자들이 일상을 되찾기 시작했다.

명성은 전 세계로 퍼졌다. 5년 전 퇴행성 뇌신경 질환인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영화배우 마이클 J 폭스가 만든 ‘파킨슨병 재단’에서 관련 연구로 50만달러(약 5억8400만원)를 지원해 주었다. 그는 “해외엔 독지가들이 특정 분야에 바로 지원을 하는 ‘핀셋 기부(focused donation)’ 문화가 정착돼 있다”고 했다. “저와 비슷한 연구를 진행한 캐나다의 서니브룩 연구팀은 지역 독지가한테서 4000만달러(약 470억원)를 받기도 했죠.”

그는 “고집적 초음파 수술로 뇌막(뇌혈관 장벽)을 열어 노인성 치매(알츠하이머병), 뇌암을 치료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했다. “이 분야는 ‘파이널 프런티어’라고 불립니다. 뇌 질환 치료는 여전히 모르는 게 너무 많기 때문이죠.” 초로의 학자는 “미답(未踏)의 세계에서 변함없이 주효한 건 개척정신”이라며 빙긋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