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과 아시아의 석탄·천연가스 가격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가운데 에너지 수요가 많은 겨울철을 앞두고 ‘에너지 재앙’이 닥칠 거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5일(현지 시각)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영국의 경제비평가 빌 블레인은 금융 뉴스레터를 발행하며 “이번 겨울, 전세계는 혹독한 추위를 경험할 것”이라고 썼다. 그는 이 글에서 “에너지 가격이 올라갈수록 그 비용은 취약계층이 감당하게 될 것이다. 영국은 에너지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무릎을 꿇고 구걸할 것이며 유럽도 그만큼 곤경에 처할 것이다”고 했다.
그는 “(화석 연료를 충분히 보유한) 중동은 의기양양하게 청구서를 내밀 것이며 (천연가스 공급을 쥐고 있는) 러시아의 푸틴은 유럽 지도자들을 일일이 초대해 ‘자신이 왜 그들에게 가스 수도꼭지를 열어줘야 되는지’ 위협적으로 물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유럽의 천연가스 재고는 유례없이 낮은 수준이다. 지난달 27일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노르웨이의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수송은 제한된 상태다. 지난달 30일 유럽의 천연가스 가격은 사상 최고치인 메가와트시(MWh)당 97.73유로(약 13만4600원)까지 치솟았다. 연초보다 400% 폭등한 수치다.
석탄 가격도 급격히 오르면서 전력난을 야기하고 있다. 글로벌 기준이 되는 호주산 유연탄은 올초 100달러(11만9100원)대에서 현재 400달러(47만6400원) 수준으로 급등해 최근 중국이 직면한 사상 최악 전력 대란의 원인이 됐다. 원가 압박이 커진 현지 발전업체들이 잇따라 가동을 중단한 탓이다.
지난 3일 포브스는 올 겨울 원유 가격도 배럴당 100달러를 넘을 수 있다며 이는 글로벌 경제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토머스 프리드먼 NYT 국제분야 칼럼니스트 역시 “(이대로라면 다음달)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리는 유엔기후회의에서 정전을 겪을지도 모른다”며 “그만큼 유럽 에너지 시장이 교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에너지 재앙’의 원인은 ‘그린플레이션(greenflation)’으로 지적된다. 친환경을 뜻하는 그린과 인플레이션의 합성어인 그린플레이션은 탄소중립으로 가는 과정에서 에너지와 원자재 가격이 오르며 물가를 압박하는 현상을 말한다. 전 세계가 탈탄소·친환경 가속페달을 밟고 있지만 풍력·태양광 발전량이 에너지 수요를 못 쫓아가면서 채굴 감소로 품귀 상태인 화석연료 가격이 급등한다는 것이다.
각국은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유럽연합(EU) 소속 국가들은 ‘에너지 확보 대책을 내놓으라’며 EU를 압박하고 나섰다. 지난 5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프랑스와 스페인, 그리스·체코·루마니아 5개국 재무장관들은 최근 이같은 내용의 성명을 공동 발표했다. 블룸버그는 “이는 유럽 각국 정부가 가스 가격 급등이 인플레이션을 심화하고, 저소득층의 ‘에너지 빈곤’을 초래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자 카드리 심슨 EU 에너지 담당 집행위원은 7일 “EU가 단기적인 해결책을 제공할 권한은 없다”면서도 “‘에너지세 인하’ 등의 목표를 설정한 국가를 지원하는 방안은 고려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전략 원유 비축분을 방출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제니퍼 그랜홀름 미 에너지부 장관은 6일 “테이블 위 모든 카드를 고려 중”이라며 급등하는 세계 유가를 잡기 위해 텍사스에 매장된 전략비축유를 방출할 것을 시사했다.
러시아는 같은날 천연가스 공급 확대를 발표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날 모스크바에서 열린 에너지 관련 화상회의에 참석해 “러시아 국영에너지 회사 가스프롬이 러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새로운 가스관 ‘노르드스트림2′를 통해 가스를 낮은 가격에 공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네덜란드 TTF 거래소에서 천연가스 11월물 가격은 전날에 비해 MWh당 11.12유로(1만5300원) 떨어진 104.90유로(14만4400원)를 기록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