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현지 시각) 파란색 조명이 비치는 프랑스 파리 개선문에 대형 유럽연합(EU) 깃발이 걸려있다. 프랑스가 2022년 상반기 EU 의장국이 된 것을 축하하며 이곳에 유럽기를 걸었지만 보수진영에서는 프랑스 국기가 아닌 유럽기를 거는 것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유럽기는 지난달 31일 처음 걸렸다가 2일 오전 내려갔다./AFP 연합뉴스

프랑스 정부가 개선문에 대형 유럽기(旗)를 내걸었다가 극우 진영과 보수층의 반발에 부딪혀 한바탕 곤욕을 치른 뒤 이틀 만에 내렸다. 올해 상반기 유럽연합(EU) 의장국을 맡게 된 것을 기념한 것이지만, 프랑스를 상징하는 기념물에 유럽기를 내건 것은 “프랑스의 정체성을 훼손한 것”이란 비난이 쏟아졌다.

개선문에 유럽기가 걸린 것은 지난달 31일 오후였다. 극우 진영이 가장 먼저 들고 일어났다. 마린 르펜 국민연합(RN) 대표는 1일 “우리의 조국 프랑스에 대한 공격”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그는 개선문 아래 1·2차 대전과 식민지 전쟁에서 희생된 무명 용사의 묘가 있다는 것을 들어 “조국에 목숨을 바친 용사들을 욕보이는 행위”라고도 했다. 르펜 대표는 “당장 프랑스 국기를 걸지 않으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법원에 고발하겠다”고 했다.

극우 성향의 ‘르콩케트’의 대선 후보 에리크 제무르도 가세했다. 그는 “(프랑스의 영광을 상징하는) 개선문이 마크롱 대통령 치하에서 약탈당하고, 천으로 감싸 숨겨지더니, 이제는 모욕까지 당했다”고 말했다. 지난 2018년 물가 상승에 항의하는 ‘노란 조끼’ 시위대가 개선문 안에 난입해 문화재를 파괴하고, 지난해 9월 개선문을 은색 천으로 포장하는 설치 미술을 한 것까지 싸잡아 비판한 것이다. 그는 2차 대전 당시 개선문에 나치 깃발이 걸린 사진을 트위터로 전달하기도 했다.

중도보수 공화당(LR)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공화당 대선 후보 발레리 페크레스 일드프랑스 주지사는 “유럽 의장국이 되는 것은 좋지만, 프랑스의 정체성마저 손상시켜선 안 된다”며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기 옆에 프랑스 국기도 함께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기는 2일 오전에 내려졌다. 르펜 대표는 “위대한 애국적 승리”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클레망 본 프랑스 유럽담당장관은 “본래 1일까지만 유럽기를 내걸 예정이었다”며 비판에 못 이겨 유럽기를 내린 것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올해 4월 대선을 앞둔 프랑스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했다. “프랑스의 EU 의장국 역할을 통해 마크롱은 유럽을 주도하는 프랑스의 모습을 보여주려 하고, 르펜과 제무르는 EU에 얽매이고 휘둘리는 프랑스의 모습을 부각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현재 프랑스 대선은 중도 우파인 마크롱 대통령과 페크레스 공화당 후보가 각각 지지율 1·2위를 달리고 있고, 극우 후보인 르펜과 제무르가 바짝 뒤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