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관계 전문가들은 한국에 새 정부가 들어서고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는 2022년을 계기로 양국 관계의 재조정을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들은 “향후 5년 한국 안보의 최대 도전은 한·중 관계 설정이 될 것”이라며 “중국에 대한 ‘다층적 관점’을 기반으로 실리적인 한·중 관계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교 30주년’ 한·중 관계는 어떻게

주중 대사를 역임한 신정승 동서대 동아시아연구원장은 “10여 년 전 도광양회(韜光養晦·조용히 실력을 기르며 때를 기다린다)를 말하던 중국이 오늘날 분발유위(奮發有爲·떨쳐 일어나 할 일은 하겠다)를 외치고 있어 한·중 관계가 더는 과거 방식으로 작동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중국의 민족주의 성향이 강해지고, 이에 대한 한국의 불안감이 커지는 상황에서 두 나라가 부딪히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에 반응하는 외교가 아니라, 스스로 원칙과 방향을 세워 적극적으로 만들어 가는 외교가 절실하다”고 했다.

주재우 경희대 교수는 “한국은 아직도 1992년 한·중 수교 당시 프레임워크에 갇혀 있다”며 “중국의 중요성만 강조할 뿐 일관되고 적극적인 대중 정책 없이, 중국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굴욕적인 외교 자세를 버려야 한다”고 했다. 그는 “2016~2019년 중국은 한국 방공식별구역을 450회 이상 침범했다”며 “중국이 우리의 영토 주권을 침해하는 일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데 정부나 전문가들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에 대한 지나친 적대감은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흥규 아주대 교수는 “2022년은 양국 관계가 성년기에 들어서면서 권력과 이해관계 재조정이 시작되는 아주 중요한 시기”라며 “미·중 간 테크(기술) 경쟁을 볼 때 외교 안보는 물론 경제적으로 미국과 더 긴밀히 협력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중국을 적으로 돌리는 행위는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미국에 대한 한국인의 신뢰감은 높고, 중국에 대해선 적대감이 비정상적으로 강한데 이는 한·중 양국에 리스크와 부담이라는 것이다.

강준영 한국외대 교수는 “한·중 관계에는 두 개의 벽이 있다”며 “넘을 수 없는 한미 동맹의 벽, 북한과 중국의 특수 관계라는 벽”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은 미·중 갈등을 우선순위에 두고 한·중 관계를 이용하려고 하는데, 한국 정부는 지나치게 남북 관계 위주로 국제관계를 보려고 해서 중국에 반복해서 끌려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2016년 사드(THAAD) 사태의 후유증은 아직도 진행형”이라며 “양국 국민 간에 감정의 골이 더 깊어지지 않으려면 사드 갈등도 해결하고 넘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미·중 갈등이 본격화되면서 불확실성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당 지도부 교체를 앞둔 중국이 한국과 관계 개선에 나설 가능성을 활용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동률 동덕여대 교수는 “중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만달러를 향해 가는 시점에서 중국 시장은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라며 “경제 협력과 인적 교류, 두 가지 축에서 대중 관계를 실리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서로 잘 안다고 생각하는 ‘이웃 증후군’ 때문에 양국 관계가 오히려 발전하기 어려웠다”며 “이익 기반의 실리적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욱연 서강대 중국문화학과 교수는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다는 점, 미·중 갈등의 심화, 한·중 문화 갈등 등이 양국 관계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며 콘텐츠 교류 확대를 해법으로 제시했다. ‘공산당’과 ‘시진핑’이란 렌즈로만 중국을 볼 것이 아니라 다층적 관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