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에 대규모 병력을 집중시키며 고조된 양국 간 전쟁 위기가 외교적 해법을 찾는 데 실패, “러시아의 침공이 임박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유럽안보협력기구(OSCE)가 러시아와 연쇄 협상을 하고, 프랑스와 독일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대화를 중재하고 나서며 돌파구를 찾길 기대했지만, 여태 아무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러시아는 협상이 결렬됐다고 보고 긴박하게 군대를 움직이고 있다. 벨라루스 국방부는 18일(현지 시각) “2월 10~20일에 러시아와 연합 군사훈련을 실시하기로 했으며, 이를 위해 러시아군이 벨라루스로 이동 중”이라고 밝혔다. 옛 소련권 국가중 친러시아 성향이 가장 두드러진 벨라루스는 우크라이나 북부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접경 지역과 남부 접경 크림 반도에 10만명 내외의 정예 병력을 배치한 것을 감안하면, 군사훈련이란 명분으로 우크라이나 북쪽에도 병력을 배치해 우크라이나를 3면에서 포위하고 나선 셈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친(親)러시아 민병대가 내전 중인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 특수 공작원들도 투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CNN은 최근 “시가지 전투와 폭발물 설치에 능한 러시아 요원들이 돈바스에서 훈련 중”이라며 “이들의 임무는 러시아 측이 (우크라이나로부터) 공격받는 ‘자작극’을 벌여 우크라이나 침공 명분을 쌓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지난 14일에는 우크라이나 10여 개 주요 부처 사이트가 모두 불통이 되면서 러시아가 ‘사이버전(戰)’부터 시작했다는 조짐도 나타났다. 침공 전 우크라이나 정부의 행정 체계를 마비시켜 대응 불능 상태로 만들려 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러시아의 ‘전쟁 준비’가 착착 이뤄지는 것으로 보고 비상이 걸렸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18일 정례 브리핑에서 “러시아가 언제든지 우크라이나에서 공격을 시작할 수 있다”며 “우리가 보기에 극도로 위험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미 국무부 고위 관계자는 “러시아가 여러 차원에서 침공을 준비하고 있으며, 특히 북쪽에서 공격하기 위해 벨라루스에 병력을 주둔시키려 한다”고 했다.
뉴욕타임스가 이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자국 외교관을 철수시키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위기감은 한층 고조되고 있다. 상대국에서 자국 외교관 철수는 무력 분쟁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대표적 신호다.
미국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준비했던 군사적 지원 카드도 꺼내 들었다. 미국 CNN은 “바이든 행정부가 우크라이나에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과 대공 미사일 체계를 추가로 제공하는 등 다양한 지원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러시아에 대한 광범위한 금수 조치, 국제 금융 시스템 퇴출, 독일과 러시아를 잇는 ‘노르트스트림2′ 가스관 폐쇄 등 경제제재 조치만 언급해 온 것에서 태도를 바꾼 것이다. CNN은 “미군 특수부대가 이미 우크라이나군을 훈련시키고 있다”고도 전했다. 미 중앙정보국(CIA) 빌 번스 국장도 지난주 키예프를 방문, 러시아의 침공 준비에 대한 정보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 러시아 양국은 그러나 외교적 타결의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18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전화 통화를 통해 2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우크라이나 문제 해결을 위한 전격 회담을 갖기로 했다. 블링컨 장관은 이를 위해 19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20일 독일과 프랑스, 영국 외교장관을 만나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군사적으로 위협하는 표면적 이유는 이 나라의 나토 가입을 막기 위해서다. 나토와 미국의 전략 병기(핵미사일 등)가 러시아 국경 바로 앞까지 와 막대한 안보 위협이 된다는 논리다. 하지만 실제 속셈은 우크라이나를 정치·경제적으로 예속화해 러시아의 패권 회복을 위한 발판으로 삼으려 한다는 해석이 많다.
우크라이나 신문 ‘노보에 브레미아’는 19일 인터넷판 머리기사로 블링컨 국무장관의 키예프 도착 소식을 전하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포위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