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2일(현지 시각) 백악관 연설에서 “푸틴은 더 많은 영토를 무력으로 차지할 명분을 만들고 있다”며 “이것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전날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 친러 반군이 세운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의 독립을 승인하고 러시아군의 진입을 명령한 것을 ‘침공’으로 규정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것은 국제법의 명백한 위반으로 1차 제재를 발표한다”고 했다. 이에 따라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러시아 최대 국책은행인 대외경제개발은행(VEB)과 방산지원특수은행 프롬스비야즈은행(PSB) 및 이들과 관련된 자회사 42곳에 대해 미국 내 개인·단체와의 거래를 금지하고 미국 관할 내 모든 자산을 동결하는 제재를 부과했다. 530억달러(약 63조2300억원)의 자산을 바탕으로 러시아의 경제 개발 자금을 조달하는 VEB와 러시아 방산 계약의 70%를 담당하는 PSB의 달러 거래를 차단해 버린 것이다.
달립 싱 국가 안보 부보좌관은 이 은행들을 “크렘린궁의 돼지저금통”으로 부르며 “이 은행들은 미국 및 유럽과 어떤 거래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미 재무부는 푸틴 측근의 아들들인 데니스 보르트니코프 국영 VTB 은행 이사회 의장, 페트르 프라드코프 PSB 최고경영자(CEO), 블라디미르 키리옌코 VK그룹 CEO 등도 제재 명단에 올렸다. 러시아 국채 거래도 크게 제한했다. 백악관은 “푸틴이 더 도발하면 더한 금융 제재와 수출 통제를 하겠다”며 푸틴에 대한 개인 제재와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에서의 러시아 퇴출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 바이든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전화 브리핑에서 “우리는 유럽연합(EU), 영국, 캐나다, 일본, 호주의 동맹국 및 파트너들과 함께 논의해 하루도 안 돼 우리의 첫 번째 제재를 발표했다”고 했다. 러시아를 타깃으로 한 제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동맹국들과 긴밀히 협의를 거쳤지만, 여기에 한국은 포함되지 않았다. 한국은 미국의 동맹국이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막으려고 노력하는 협의 과정에 거의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EU도 대러 제재안을 채택했다. 특히 돈바스 반군 괴뢰국 승인 절차에 참여한 러시아 두마(하원) 의원 351명 전원을 제재 대상에 올렸다. EU가 특정 국가의 입법 기관 의원 전원을 제재 대상으로 올린 것은 처음이다. 영국도 런던 금융시장에서 러시아의 국채 발행 중단, 러시아 은행 5곳과 재벌 3명에 대한 영국 내 자산 동결과 거래 금지, 입국 금지 등의 고강도 제재안을 내놨다. 앞서 독일도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노르트스트림2 가스관 사업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일본은 러시아 정부 또는 정부 기관이 발행하거나 보증하는 신규 채권의 일본 내 발행 및 유통을 금지하고, DPR과 LPR 관계자의 비자 발급을 중단키로 했다. 캐나다와 호주도 각각 대러 제재를 결정했다.
우리나라는 제재 대열 합류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23일 기자들과 만나 “미국이 러시아에 대한 고강도 수출 통제, 금융 제재 등 계획을 계속 밝혀 왔다”며 “우방국들과 이런 협의를 계속해 오고 있고, 주요 서방국들도 동참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우리도 여러 가능성을 열어 놓고 보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