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러시아군 장성이 우크라이나군에 의해 피격돼 사망했다. 우크라이나군의 강력한 저항과 보급 부족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는 러시아군에 상당한 타격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 군사 전문지 성조지 등 외신들은 러시아 중부군구 사령관 안드레이 수코베츠키 소장(少將·47)이 지난 2일(현지 시각)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영국 인디펜던트 등은 “그가 우크라이나의 저격수(스나이퍼)에게 사살됐다”고 전했다. 일각에선 그가 장병들을 상대로 연설을 하던 중 피격됐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수코베츠키를 사살한 스나이퍼의 신원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지난 2014년 봄 크림반도를 러시아에 빼앗긴 뒤 전투력 강화에 힘을 쏟았다. 특히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친러 반군과 교전을 지속하면서 저격 무기 운용 능력이 크게 향상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군과 언론도 그의 사망 사실을 인정했다. 러시아 참전군인회 간부 세르게이 치필레프는 “수코베츠키 장군의 비보를 고통스럽게 들었다”며 애도 글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수코베츠키는 우크라이나 침공 중 사망한 러시아군 장교 중 최고 계급이다.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임관한 뒤, 시리아 등 주요 해외 작전에서 전과를 올리며 승진을 거듭했다. 특히 지난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병합 작전 때 큰 공을 세워 훈장도 받았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러시아의 영웅’이 우크라이나의 저격수에게 제거됐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 장병들이 크게 동요할 수 있다고 외신 매체들이 전했다. 네덜란드에 본부를 둔 탐사 전문 매체 ‘빌링캣’의 크리스토 그로체프 국장은 “이 소식은 러시아군에 커다란 사기 저하 요인이 될 것”이라고 트위터에 썼다.
러시아 침공 9일째인 4일 수도 키이우(키예프)와 제2도시 하르키우,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 등 요충지에서는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의 포격전이 이어졌다. 러시아군은 키이우를 향한 진격에는 여전히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 부대는 키이우 외곽 25㎞까지 접근했지만 그 이후 하루 2㎞ 정도만 전진하는 거북이 걸음을 하고 있다.
그러나 주요 지역에서 러시아의 폭격이 이어지면서 우크라이나 민간인 희생자가 속출하고 있다. 중북부 도시 체르니히우에서는 지난 3일 러시아군이 학교와 민가를 공습하면서 33명이 숨지고 18명이 다쳤다고 우크라이나 정부가 밝혔다.
우크라이나 측의 결사 항전 태세도 꺾이지 않고 있다. 키이우에서 동북쪽으로 약 130㎞ 떨어진 소도시 니진에서는 군사훈련을 받지 않은 주민들이 주축인 민병대가 도시 주변 밀밭과 옥수수 농장에 다량의 대전차 지뢰를 매설하고 러시아군에 항전하고 있다고 AFP 통신이 보도했다. 알렉산드로 코돌로 니진시장은 “러시아군의 도시 진입을 차단하기 위해 특정 경로에 지뢰 작전을 수행했으며 주민들에게는 들판에 나가지 말고 집에 머물라고 당부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 중 처음으로 러시아군 수중에 떨어진 남부 도시 헤르손에서는 시내에 들어온 러시아군이 상점을 무단 약탈해 물건들을 가지고 나오는 장면이 촬영된 동영상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산했다. 푸틴이 보낸 우크라이나 침공 병력의 물자가 충분치 않고 러시아군의 기강(紀綱)에 문제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한 서방의 외곽 지원은 계속되고 있다. 독일 정부가 과거 분단 시절 동독군이 사용했던 소련제 스트렐라 대공미사일 2700기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기로 했다고 dpa통신이 지난 3일 보도했다. 앞서 대전차무기 1000정, 지대공미사일 ‘스팅어’ 500기를 보내기로 한 데 이은 추가 군사 지원이다. 러시아가 전신인 소련 시절 위성국가에 지원했던 미사일이 자신을 겨냥하게 된 것이다.
한편, 유엔난민기구(UNHCR)는 “전란을 피해 해외로 빠져나간 우크라이나 난민들 숫자가 100만명을 돌파했다고 지난 3일 밝혔다. 이는 우크라이나 전체 인구의 2%에 해당한다. 앞서 지난 2011년 발발한 시리아 내전 당시 외국행 난민이 100만명을 돌파하는 데 석 달이 걸렸던 것과 비교할 때 기록적으로 빠른 추세다.
필리포 그란디 UNHCR 최고대표는 “난민 분야에서 40년 가까이 일했지만, 이번처럼 급속한 탈출 행렬은 보기 드물다”며 “이런 속도라면 우크라이나가 이번 세기 최다 난민 발생 국가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현재 난민의 절반은 접경 국가이자 유럽연합·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국인 폴란드에 머물고 있다고 미국의소리(VOA)방송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