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이 4억1000만 달러를 주고 내년 9월 받기로 한 중국의 최신형 유안(元)급 디젤 잠수함이, 정작 이 잠수함에 장착된 독일제 디젤 엔진이 대(對)중국 금수 품목이라 ‘암초’에 부딪혔다고, 방콕포스트와 월스트리트저널 등이 보도했다.
태국은 2015년 중국으로부터 유안급 잠수함 세 척을 도입하기로 하고, 모두 11억 달러(약 1조367억원)짜리 구매 계약을 맺었다. 태국에선 ‘S26T’라 불리는 이 잠수함은 중국에서도 2006년 취역한 최신 디젤 잠수함으로, 쑹(宋)급 잠수함의 후속 모델이다.
그런데 이 잠수함에 들어가는 독일산 MTU 프리드리히샤펜 사 엔진에서 일이 꼬였다. 많은 사람이 살해된 1989년 4~6월 텐안먼 광장의 민주화 항쟁 이후, 이 엔진은 EU(유럽연합)의 대(對)중국 수출금지 품목에 묶여 있다. 서방 언론이 ‘학살(massacre)’로 표현하는 텐안먼 항쟁에선 241명(중국 공산당 발표)~3000명(중국 홍십자사 최초 발표 후 부인)의 민간인이 살해됐지만, 공신력 있는 국제기구의 객관적인 집계조차 없다. 유안급 잠수함에 들어가는 독일 MTU사 디젤 엔진은 우리나라의 손원일급 잠수함에도 장착됐다.
하지만, MTU 디젤 엔진은 텐안먼 이후에도 계속 중국에 수출됐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989년 텐안먼 항쟁 이후 내려진 EU의 대중국 금수(禁輸) 조치는 사실 ‘전면적인’ 조치가 아니어서, 나라마다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있었다”고 14일 보도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쑹급 공격형 디젤 잠수함 건조용으로 56개 MTU사 디젤엔진이 중국에 수출됐고, 이밖에 최소 26개의 MTU사 엔진이 현재 중국 구축함에 장착돼 있다.
이번 사건이 불거지자, 중국 외교부는 WSJ에 “EU 금수조치는 오래전에 내려진 것으로, 현재의 EU‧중국 관계와 불일치해 수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일부 유럽 국가들은 2005년에 ‘텐안먼 금수 조치’를 해제하려고 했다. 그러나 “중국‧타이완 관계에 해롭다”는 미국의 반대에 밀렸다. 그러다가 이제 독일과 EU의 대(對)중국 규제를 둘러싼 풍향이 ‘강경’으로 바뀌면서, MTU사는 중국에 대한 엔진 수출을 중단한 것이다.
그러자 가뜩이나 코로나팬데믹으로 값비싼 대가를 치르며 잠수함 구매에 부정적이었던 태국 여론은 “엔진 없는 잠수함을 산다는 것이냐”며 들끓었다. 게다가 태국 해군이 중국 정부가 아니라 법적으로는 민간 회사인 잠수함 건조업체 CSOC사와 계약한 것으로 드러나자, 태국 야당의원들은 “정부 간 계약도 아니었다”고 비난했다. 이 회사와 중국 정부는 태국과 잠수함 계약을 맺기 전에, MTU사와 독일 정부에 문의하지도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미 동맹국인 태국에게 유안급 잠수함을 수출한다는 것은 아직 수출 시장이 크지 않은 중국 군수산업계엔 이정표와 같은 기회다. 중국은 이 잠수함을 파키스탄에도 8척 판매하기로 했지만, 이 잠수함에도 MTU사 엔진이 들어가는지에 대해 MTU사와 관련 정부는 모두 언급을 피했다.
첫 잠수함 인도부터 기약없이 차질을 빚자, 중국 측은 다른 엔진을 장착하는 방안, 일단 2척의 중고 잠수함을 제공해 태국 해군을 훈련시키는 방안을 제의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엔진 없는 중국 잠수함’ 계약 해프닝을 보며, 미국은 은근히 고소해 하는 분위기다. WSJ는 “안보 전문가들은 ‘중국에서 첨단 무기를 구입하려는 나라들은 그 안에 EU 부품이 들어가 있으면 인도 지연, 비용 초과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재고해야 한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싱가포르의 라자랏남 국제대학원의 연구원인 콜린 고는 “중국이 갈수록 증대되는 서방의 기술 옥죄기에 낀 점을 고려할 때에, 중국이 전통적인 구매국을 넘어 수출국 확산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이 신문에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