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한라대학교 공자학원은 2019년 개최한 제6회 한라중국영화제에서 ‘특수부대 전랑(戰狼) 2′를 개막 작품으로 상영했다. 이 영화는 중국 인민해방군의 활약을 찬양하고 군사력을 포함해 미국을 전체적으로 조롱하는 내용이다. 영화제에는 중화애국주의 성향이 강한 ‘오퍼레이션 레드 시(紅海行動)’도 상영됐다.
이 대학에 2009년 4월 문을 연 공자학원은 대학생 중국어 교육만 하지 않는다. 홈페이지에 공개된 항목만 봐도 학교교장단 초청 중국연수, 교직원 중국어반, 제주도·교육청·제주·서귀포시청과 공동협력협약(MOU), 중국문화전시회, 경극(京劇)·예술단 공연, 중국도서문화전시회 등으로 다양하다.
◇대학 거점...전방위 네트워크 구축
# 2007년 9월 공자아카데미를 연 순천향대는 이듬해 충남 아산교육지원청과 ‘방과(放課) 후 학교 강사 프로그램 지원 및 중국과의 교류협력 지원협약’을 맺었다. 그해 2개 중학교, 3개 고교에 방과 후 중국어 교실 프로그램 용도로 각 500만원씩을 지원했다. 2015년에는 아산시 청소년교육문화센터 산해관(山海館·중국체험관)과 아산고교에 공자학당(學堂)을, 2017년엔 천안고에 공자학당을 각각 세웠다.
# 올해로 17년째인 호남대학교 공자아카데미는 중국어 교육 외에 차이나최고위과정(China-AMP), 중국문화예술공연전시회, 중국문화탐방, 중국교육부 국비장학생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1인당 420만원의 교육비를 받는 최고위 과정은 광주광역시 일대에 있는 기업체 경영자·고위 임원, 공공기관 단체장, 각계 고위 인사들을 모아 중국 현지 산업시설과 문화연수를 한다. 주(駐)광주중국총영사관의 후원을 받고 있다.
# 2020년 11월 대전시 소재 우송대학교 공자아카데미가 주최한 ‘온라인 중국어 암송대회’ 참가 주제시(主題詩)에는 마오쩌둥의 1936년 작품 ‘심원춘·설(沁園春·雪)’이 포함됐다. 마오쩌둥이 ‘무산(無産)계급을 칭송’해 중국 중학교 교과서에 수록돼 있는 이 시를 한국 학생들은 그대로 암송해야 했다.
이는 서울을 포함해 전국 22개 대학교 안에 개설돼 있는 ‘공자학원(孔子學院·Confucius Institute·국내 일부 대학은 ‘공자 아카데미’로 명명)의 활동 단면이다. 2004년 세워진 ‘공자학원 세계 1호점’인 서울 공자아카데미를 포함해 국내에는 23개 공자학원이 있다. 이는 아시아 국가 가운데 1위에 해당한다. 기자는 취재를 통해 공자학원의 특징을 확인했다.
◇“학문 자유와 대한민국 헌법정신 위배”
먼저 공자학원들이 주최하는 ‘대학생 중국어 말하기 대회’에서 주제가 중국 역사·문화·정치·경제·산업과 한중(韓中) 우호관계, 국가 프로젝트인 ‘일대일로’(一带一路) 같은 것으로 제한돼 있다는 사실이다. 서류 심사로 진행되는 예선(豫選)에서 대만, 티베트, 신장위구르, 파룬궁(法輪功) 같은 문제를 소재로 삼으면 본선 진출이 불가능하다.
이제봉 울산대 교수는 “학문의 자유가 생명인 ‘대학 공간’에서 공자학원 주최 경진대회는 발표·토론의 자유를 제한해 사상·언론·출판의 자유를 보장한 대한민국 헌법 정신을 정면위배한다”고 말했다.
대신 상위권 입상자는 ‘중국어 대사’(漢語大使), ‘중국어의 별’(漢語之星) 칭호와 함께 중국 현지 대학 학비와 생활비까지 받는 장학금을 받는다. 2019년 열린 ‘중국교육부 상(賞) 한국 대학생 중국어 대회’ 1등 수상자에겐 부상(副賞)으로 중국은행(中國銀行) 서울지점 취업증서를 줬다.
두 번째는 대학 안에 있는 공자학원이 외부로 활동 범위를 뻗친다는 사실이다. 대학 소재 각 공자학원은 각급 학교·청소년 대상 교육기관에 ‘공자학당’을 세우고 재정·교사 공급 같은 지원을 한다. 대상은 초중고와 유아·청소년을 포함한다.
국립안동대학교 공자학원은 초중학생들이 배우는 청소년 중국어 교육센터를 세워 운영 중이다. 충북 세명대학교 공자학원은 2019년 4월 제천시내 10개 유치원생 500명을 초청해 중국어 입문 과정 체험, 자이언트 판다와 함께 하는 단체 사진 촬영, 베이징 오페라(경극·京劇) 가면 그리기 같은 중국문화 체험 행사를 했다.
세 번째는 공자학원 소속 교사들에 대한 최종 임용과 각종 감독권한을 중국측이 갖고 있다는 점이다. 공자학원을 유치한 한국 대학들은 자매(姉妹) 관계를 맺은 중국 현지 대학이 뽑은 교사 후보자들을 면접하고 의견을 제시할 뿐 개별 교사와 노동 계약을 체결하지 않는다. 그러니 임용·해고 권한이 없다.
◇“대학의 권위·평판에 편승...인프라도 활용”
한국 공자학원연합회의 김현철 회장(연세대 중문과 교수)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공자학원들이 매년 중국측으로부터 받는 지원금은 학교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평균 8000만원쯤 된다. 서울 신촌 소재 연세대는 매년 1억7000만원 정도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공자학원연합회는 국내 22개 대학내 공자학원들의 모임이다. 공자학원을 유치한 대학은 사무실과 교실 등을 제공하고, 학생 모집과 공자학원에 대한 홍보 업무를 맡는다.
주재우 경희대 교수는 “중국은 공자학원을 유력 대학 내 연계·부설기관으로 세워 해당 대학의 권위와 평판에 편승하고 있다. 대학 시설과 인력 등 인프라를 활용하는 이점도 크다”고 말했다.
공자학원의 활동 방식은 다른 나라와 크게 다르다. 미국문화원(U.S. Cultural Center), 영국문화원(British Council), 독일의 괴테 인스티튜트(Goethe-Institut), 프랑스의 알리앙스 프랑세스(Alliance Française), 일본문화원 등은 모두 대학에 들어오지 않고 ‘바깥’에서 대학과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운영한다.
해외에서 독일어 학습과 지식을 전파하고 국제문화협력 사업 촉진을 목적으로 하는 ‘괴테 인스티튜트’는 서울과 대전·대구·광주·부산에 어학센터를 두고 독일어 능력시험 등을 실시한다. 알리앙스 프랑세즈는 프랑스 대사관 및 문화원과 긴밀 협력하지만 서울 등 국내 7개 도시에서 대학 바깥에 공간을 마련해 놓고 활동한다.
이와 달리 국내 23개 공자학원 가운데 22개는 유력 대학 안에 자리잡고 지역 행정·교육기관, 민간기업, 지역사회 주민 등 지역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중국의 역사·문화는 물론 중국의 국정목표를 널리 알리고 있다. 특히 ‘지역 국립대학’ 내에 설치된 공자학원은 공인된 국립대학이라는 간판을 활용해 해당 시(市) 행정당국 및 교육지원청과 유기적인 협조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美·日·유럽國은 모두 대학 밖에 어학문화센터
중국 전문가인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의 진단이다.
“국내의 공자학원들은 중국공산당을 대놓고 찬양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중국에 대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전파하고 부정적 내용은 철저히 억누른다. 공자학원은 단순한 중국어·문화 교육기관이 아니다. 중국공산당 통일전선공작부의 현지 기관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2020년 12월 국내 공자학원 관련 연구보고서를 쓴 이제봉 울산대 교수는 국내 대학들이 공자학원을 유치한 이유를 이렇게 분석했다.
“공자학원을 괴테 인스티튜트, 브리티시 카운슬 같은 순수 문화교류기관으로 오해했을 수 있고 중국인 유학생 유치로 대학 재정에 도움을 받으려 했다. 또 중국 정부가 교사 인건비와 교재비 등 실질 운영비를 전적으로 부담해 학교측의 부담이 적거나 가볍다. 중국의 경제성장으로 중국과 교류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된 마당에 중국공산당의 침투공작이 주효했다.”
이 교수는 “공자학원 설립계약서에는 ‘명예훼손시 계약을 해지(解止)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때문에 중국의 인적·물적 지원을 잃고 싶지 않은 각 대학은 중국 눈치를 보고 있다. 이 조항 때문에 외국 소재 대학 공자학원에서는 검열과 사상 탄압 사례가 다수 존재한다”고 했다.
실제로 2008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학에선 학내 공자학원의 반대로 달라이 라마 방문이 취소됐다. 2014년 포르투갈 중북부의 브라가와 코임브라에서 열린 유럽 중국학회 콘퍼런스의 경우, 공자학원측 개입으로 프로그램 안내 책자에서 대만 관련 표현이 모두 삭제됐다.
미국 연방의회는 2018년 발간한 ‘미중 경제안보위원회 보고서’에서 “공자학원은 중국공산당이 각국에서 여론 조작을 위해 활용하는 다양한 수단 중 하나”라고 규정했다. 2년 후인 2020년 8월 미국 국무부는 공자학원을 ‘해외 임무기관(Foreign Mission)’으로 지정하고 공자학원을 세우려는 기관에 대해 인적 구성과 예산 보고(報告)를 의무화 했다.
◇세계 각국, 줄줄이 공자학원 폐쇄·퇴출
공자학원은 중국어와 자국 문화를 알리기 위해 중국이 만든 교육기관 겸 문화보급 기관이다. 2004년 서울 1호점을 시작으로 2020년 말 162개국에 541개가 설치됐다. 그러나 2013년 캐나다 맥매스터대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100여곳의 공자학원이 폐쇄됐다. 미국에선 2020년 한 해에 스무 곳 이상이 문을 닫았다.
2019년에는 벨기에가, 2020년에는 덴마크, 2021년에 노르웨이, 2022년에는 핀란드가 자국내 공자학원 폐쇄 결정을 내렸다. 2005년 유럽에서 최초로 공자학원을 열었던 스웨덴은 2020년 4월을 끝으로 모든 공자학원과의 관계를 끊었다. 핀란드 헬싱키 대학의 한나 스넬만 부총장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공자학원 프로그램에 돈을 대고 싶어 하지만 우리는 중국어 교사들을 스스로 뽑아 우리 돈으로 고용하길 원한다”고 밝혔다.
독일 교육당국은 2021년 10월 전국 20개 대학에 설치된 공자학원에 대해 “중국어 수업 이외의 프로그램은 가능한 한 시행하지 말라”고 공식 권고했다. 스터디그룹이나 독서회, 각종 문화행사 같은 정치 색채를 띨 수 있는 프로그램 자제를 요청한 것이다.
올 7월 총리 경선에 나선 리시 수낵(Rishi Sunak) 전 재무장관은 “영국에 있는 공자학원 30개를 모두 폐쇄하겠다. 중국공산당을 우리 대학에서 쫓아내겠다”고 말했다. 영국 하원의 여야 의원 20여명은 올해 6월13일 대학이 7만5000파운드(당시 환율 기준 1억2000만원) 이상 외국 자금을 받으면 감독기관에 신고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을 공동 발의한 알리시아 컨스 의원은 “중국이 공자학원을 통해 영국 대학에 침투해 각종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학계에선 이를 전혀 경계하지 않고 있어 문제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中 공산당 통전부장이 공자학원 지휘
각국의 반발에 직면한 중국은 2020년 7월 공자학원의 운영주체를 ‘중국국제중문교육기금회’로 변경했다. 2007년부터 공자학원은 국무원 교육부 직속 기관인 ‘국가한판(漢辦·국가한어국제보급영도소조판공실의 준말)’ 소속이었다. 2020년까지 ‘국가한판’의 최고 책임자는 중국공산당 통일전선공작부(약칭 통전부) 부장(장관)을 지낸 류옌둥(劉延東·77)과 쑨춘란(孫春蘭·72)이 각각 맡았다.
지해범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위원은 “두 사람 모두 당(黨) 정치국원, 국무원 부총리를 지낸 공산당 최고 간부로 중국어 교육과 무관하다. 공자학원 책임자를 잇따라 통전부장 출신으로 임명했다는 것 자체가 이 조직의 실체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조직의 간판만 바꾸어 달았을 뿐 여전히 중국공산당의 지시를 받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의 정치·교육 엘리트들, 공자학원의 美名에 속고 있다”-한민호 ‘공자학원 실태알리기운동 본부’ 대표 인터뷰
2020년 6월 출범한 ‘공자학원 실태알리기운동 본부’(약칭 공실본)는 국내에 있는 공자학원의 실상을 추적하며 정부와 각계에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공실본의 대표는 서울대 졸업후 행정고시에 합격해 문화체육부 국장을 지낸 한민호(60)씨이다. 지난달 9일 그를 서울 시내에서 만났다.
- 왜 공자학원이 문제인가?
“서방 각국 문화원은 인체(人體) 밖에 있는데 공자학원만 몸 안, 즉 대학교 안에 들어와 활동하고 있다. 외형상 한국인과 중국인이 1명씩 공자학원 원장을 맡고 있지만 커리큘럼만 해도 매년 상당금액을 지원하는 중국이 동의하지 않으면 바꿀 수 없다. 한국측이 강행하면, 계약이 즉각 해지되는 구조다. 우리 대학 안에 있어도 실권(實權)은 중국이 갖고 있다.”
- 교재는 어떤가?
“대부분 중국공산당이 기획하거나 깊이 관여한 것들이다. 이들은 중국에 대해 ‘떠오르는 민주국가’ ‘종교 자유가 보장된 나라’로 일방적으로 찬양하고 미화한다.”
- 공자학원의 외부 활동은?
“지역의 초중고 교장·교감 선생님들을 중국으로 초청해 무료 선심(善心) 관광을 시키는가 하면 경찰 공무원 대상 무료 중국어 강의, 시군구 의원 상대 중국 초청 여행도 한다. 유력 인사들과 모임을 만들어 중국 비즈니스를 벌이고, 공짜 음식·영화 맛보기로 중국에 대한 경계심과 비판의식을 해체하고 마비시키고 있다.”
- 국내 공자학원에서 아직 ‘스파이 행위’ 증거는 없지 않나?
“하지만 공자학원은 우수한 학생들을 중국 현지 장학생으로 만들거나 중국 기업·은행에 취직시켜 친중파(親中派)로 키우고 있다. 각 대학에 유학와 있는 중국인 유학생에 대한 감시·통제도 하고 있다.”
한 대표는 “공자학원이 상당수 대학에서 10년 넘게 뿌리내리면서 중국의 여러 문제점에 대한 독립적·객관적인 연구와 토론이 소멸되고 있다”며 “대학 등 한국 사회에 반미(反美)와 반일(反日)은 넘쳐나도 반중(反中) 연구와 세미나가 없는 것은 공자학원의 활동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대학 총장 등 공자학원에 경각심 없어”
- 정부는 실태를 소상히 파악하고 있나?
“2020년 가을 교육부에 한국내 ‘공자학원’ 관련 자료 요청을 했더니 4개과(課)에서 모두 ‘공자학원이 뭐예요?’라고 묻기만 했다. 공자학원이 은밀한 침투를 20년 가까이 해오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너무 무지(無知)하고 무관심하다. 우리나라 국회에서는 정경희·조경태·조태용 의원 3명이 국정감사에서 관련 질의를 했는데, 그걸로 끝이고 아무런 후속 조치가 없다.”
- 공자학원에 대한 사회 지도층의 태도는?
“한국 정치·교육 엘리트들이 중국어 교육을 해준다는 공자학원의 가짜 선전에 속고 농락 당하고 있다. 중국 학생 유치 때문인지 대다수 총장들은 공자학원에 대한 경각심이 없다. 공자학원이 있는 대학에선 중국 인권과 대만·티벳·천안문사태 등과 관련된 학문적 논의마저 금기(禁忌)시하고 있다. 지도층부터 공자학원의 실상을 제대로 깨닫고 냉철하게 대응해야 한다.”
-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다른 나라 교육문화센터와 똑같이 공자학원을 대학 바깥으로 빨리 내보내야 한다. 미성년자들에게 중국을 일방적으로 미화(美化)하며 편향된 인식을 주입하는 초중고교 대상 각종 프로그램을 즉각 끊어야 한다. 국립대학들은 공자학원을 폐쇄해야 한다. 소득 3만달러 나라가 1만달러 후진국인 중국의 돈을 받아 중국어를 가르친다는 것은 국가적 수치(羞恥)이다.”
※국내 23개 공자학원 지역별 현황
△서울·경기·강원(7개, 연세대·한양대·경희대·한국외대·인천대·강원대·대진대) △충청·대전(5개, 충남대·충북대·우송대·순천향대·세명대) △광주·전라(4개, 호남대·세한대·우석대·원광대) △부산·경남(2개, 동아대·동서대) △대구·경북(2개, 계명대·안동대) △제주(2개, 제주대·한라대) △사단법인 서울 공자아카데미(강남구 역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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