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유엔(UN) 인권이사회 이사국 선거에서 충격적으로 낙선했다. 국제사회의 각국 인권 증진을 위한 논의에서 한국 같은 선진국이 배제되는 것은 ‘외교 참사’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은 11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유엔본부 총회장에서 열린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 선거에서 123표를 얻었다. 인권이사회 47개국 중 13개국을 새로 뽑는 올해 선거에서 2023~2025년 임기의 아시아 지역에 할당된 4개 이사국 자리를 놓고 8개국이 경쟁했는데, 한국은 5위에 그쳤다.
이날 아시아 국가 중 방글라데시가 회원국 193개국 중 160표로 최다 득표를 했고, 몰디브가 154표, 베트남이 145표, 키르기스스탄이 126표로 한국을 앞섰다. 한국 다음으론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이 12표로 뒤를 이었고, 바레인과 몽골이 각각 1표를 얻어 낙선했다.
한국은 지난 2006~2008년, 2008~2011년, 2013~2015년, 2016~2018년, 2020~2022년 꾸준히 인권이사회 이사국을 맡았다. 이번이 연임 도전이었다. 한국은 지금까지 인권이사회 선거에 나섰을 때 낙선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특히 유엔 정규예산 분담금 기여도 세계 9위인 한국이 이런 ‘글로벌 가치’ 부문을 측정하는 중요한 선거에서 패한다는 것은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진다.
당분간 한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인권 유린이나 중국의 신장 위구르 지역 소수민족 탄압 같은 국제사회의 인권 문제 논의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기회를 잃게 됐다. 앞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무력침공에 대해 총회 투표에서 인권이사회 이사국 자격을 박탈 당하기도 했다. 그만큼 국제 여론 평가에서 상징성이 큰 기구다.
주유엔대표부 측은 본지에 “낙선을 전혀 예상치 못했다”고 했다. “선거 전 구두와 서면으로 한국 지지 의사를 밝힌 나라가 140여개국에 달해 당선을 자신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십수표가 이탈했다”는 것이다. 비밀투표여서 어떤 나라가 이탈했는지 당장 알 수 없어, 여러 이유와 정황을 살펴보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란 설명이다.
이를 두고 외교가에선 지난 문재인 정부 5년간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한국이 리더십을 잃거나 인권 관련 문제 제기를 당한일이 수차례 이어진 것이 국제여론 악화에 작용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지금 선거는 지난 수년간 각국의 인권 관련 족적을 토대로 치러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추진하면서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2019년부터 2022년 4월까지 북한 인권 범죄를 규탄하는 북한 인권결의안에 4년 연속 공동제안국에 불참했다. 컨센서스 채택에 반대만 하지 않는 수준으로 사실상 북 인권에 침묵했다. 새 정부는 뒤늦게 ‘자유진영과 가치 연대를 하겠다’며 최근 북 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에 참여키로 했다.
지난해 4월 정부와 민주당은 대북전단 금지법을 강행 처리하다 유엔 인권사무소와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 등으로부터 ‘인권운동가들의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킨다’는 우려와 함께 정부의 공식 답변을 요구하는 서한을 받기도 했다.
또 지난해 9월 민주당이 잘못된 언론 보도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리겠다며 추진한 일명 ‘언론재갈법’ 폭주에 대해, 유엔 인권이사회 특별보고관이 이례적으로 우리 정부에 서한을 보내 ‘언론 자유 위축’에 따른 인권 침해를 경고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한국의 성소수자 권익 관련 법제 미비, 양심적 병역 거부 불인정 등도 유엔 인권 관련 기구에서 문제로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