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에너지 기업들이 원유를 생산할 때 나오는 폐가스(플레어 천연가스)를 이용해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를 채굴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암호화폐 채굴 작업은 고성능 컴퓨터를 대량으로 동원하는데 이 과정에서 막대한 전기 소모가 발생한다. 이 때문에 자원 낭비와 환경 파괴 주범이라는 비난을 받았는데 폐가스를 활용한 전기 생산으로 이런 도덕적 비난을 피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암호화폐 전문 매체 코인데스크가 최근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국영 에너지 기업 YPF의 재생에너지 자회사 YPF루즈는 석유 생산 때 나오는 폐가스를 이용해 만드는 전기를 암호화폐 채굴 기업에 3개월째 공급하고 있다. 마틴 만다라노 YPF루즈 CEO는 “석유 시추 과정에서 활용할 수 없는 폐가스를 이용한 암호화폐 채굴 사업에 지속 가능성과 비전이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최대 석유 기업 엑손모빌도 작년 1월부터 크루소에너지와 함께 미 노스다코타 유정에서 발생하는 폐가스를 활용한 비트코인 채굴 프로젝트에 나섰다. 엑손모빌은 이를 통해 한 달에 최대 비트코인 37개(약 10억원)를 채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크루소에너지는 최대 1261개(약 353억원)을 채굴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러시아 국영 에너지 기업 가스프롬은 지난 6월 암호화폐 채굴 기업인 비트리버(BitRiver)와 계약을 맺고 시베리아 석유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폐가스를 활용한 전기를 제공하기로 했다. 가스프롬 관계자는 “잉여 에너지를 유익하게 사용해 자원 이용을 최적화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냈다”고 말했다.
에너지 기업들은 일반적으로 원유에서 발생하는 천연가스를 태워버리는 플레어링(Gas Flaring) 작업을 한다. 이 과정에서 천연가스가 낭비되고 이산화탄소가 발생하지만 가스를 저장, 압축, 운송하고 인프라를 설치하는 비용이 천연가스를 활용한 수입보다 크기 때문에 수익성 문제로 천연가스를 버려 왔다. 그런데 최근 기업들이 시추 현장에 발전기를 설치해 폐가스를 연소시키면서 생산한 전력을 생산지 인근에 저가로 즉시 공급해 비트코인 채굴에 쓰기 시작한 것이다.
풍력·태양광발전 등에서 버려지는 전기를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미 텍사스주는 특정한 시점에 초과 생산으로 버려지는 전기를 비트코인 채굴 회사에 저렴하게 공급, 비트코인 채굴의 ‘메카’로 알려져 있다. 세계 최초로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승인한 엘살바도르의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은 “화산에서 발생하는 지열을 활용한 비트코인 채굴 시설을 건설할 예정”이라며 국가 차원의 친환경 채굴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편, 백악관 과학기술정책국(OSTP)은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에서 “전력 사용량이 많은 작업증명(PoW) 방식의 채굴 금지를 위한 조치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암호화폐 관련 전력 사용량은 연간 1200억~2400억킬로와트시(kWh)로 세계 전력 생산량의 0.4~0.9%을 차지해 호주나 아르헨티나가 연간 생산하는 전력량보다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