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부패 혐의로 불명예 퇴진했던 베냐민 네타냐후 전 이스라엘 총리가 1년 6개월 만에 정치적 부활에 성공했다. 1일(현지 시각) 실시된 이스라엘 조기 총선에서 네타냐후가 이끄는 우파 블록이 접전 양상을 보일 것이란 예상을 뒤집고 낙승했다고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 등 현지 매체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2일 오후 10시(한국 시각) 현재 개표가 86% 진행된 가운데 우파 블록이 전체 의석 120석 중 절반을 훌쩍 넘는 65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 상태로 개표가 완료될 경우 네타냐후가 대표인 리쿠드당이 32석을 확보해 원내 1당에 오르고, 강경 보수정당 연합인 ‘독실한 시오니즘당’이 14석, 초정통파 유대교 정당 ‘샤스’가 11석, 보수 유대 정치 연합인 ‘토라유대주의연합’이 8석을 차지하게 된다. 이에 따라 올해 73세인 네타냐후는 세 번째로 총리직에 오를 것이 유력해졌다. 그는 개표가 진행되는 가운데 열린 집회에서 “대승에 가까워졌다”며 “거국적 우파 정부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야이르 라피드 현 총리가 이끄는 기존 연정 세력은 50석에 그쳤다. 라피드 총리가 대표인 중도 성향의 ‘예시 아티드’가 24석, 베니 간츠 국방부 장관의 중도 정당 연합 ‘국가통합당’이 12석을 얻었다. 이들은 지난해 네타냐후 정권에 반기를 들고 집권해 ‘반(反)네타냐후 연합’이라고 불린다.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은 “지난해 총선에서 6석을 얻었던 메레츠당(좌파)은 의석 확보를 위한 최저 득표율(3.25%)을 넘지 못해 단 한 석도 얻지 못했다”고 전했다.
네타냐후 전 총리는 1년 반 만에 다시 정치 전면에 등장한다. 이스라엘 우파를 대표하는 인물로 평가되는 네타냐후는 1996~1999년, 2009~2021년 두 차례에 걸쳐 총 15년 넘게 권좌에 있었던 역대 최장수 총리다. 유대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팔레스타인과 이란에 대한 초강경 노선을 펼쳐왔다.
그는 작년 초 미국 할리우드 유명 영화 제작자로부터 뇌물 26만4000달러(약 3억7000만원)를 받았다는 의혹과 함께 총리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후 검찰 수사까지 받아 정치적 생명이 끝날 위기에 처했다. AFP통신 등은 “네타냐후가 다시 총리직에 오르면 면책 특권을 이용할 수 있다”며 “사법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재집권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네타냐후는 자신에 대한 검찰 수사를 “날조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줄곧 혐의를 부인해왔다.
그의 부활에 대해 외신들은 “이스라엘 국민 사이에 네타냐후는 ‘나라를 가장 잘 지킬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하다”고 평가했다. 프랑스24는 “올 초 텔아비브 등에서 팔레스타인 주민에 의한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지면서 이스라엘 국민의 안보 우려가 커졌다”며 “네타냐후가 국가 안보를 지킨다는 의식이 이번 총선에서 강력하게 반영됐다”고 분석했다. 이란의 핵무장에 대한 불안감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보수 진영 내에서도 강성으로 분류되는 ‘독실한 시오니즘당’의 약진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됐다. 이 당은 강경 보수 정치인 이타마르 벤그비르가 이끄는 ‘오츠마 예후디트(이스라엘의 힘)’와 정통파 유대교 정당 ‘나움’의 연합 정당으로, 팔레스타인 내 유대인 정착촌 확장을 옹호하고, 이스라엘 내 아랍계 추방을 주장해왔다. 동성애자 등 성소수자에게도 배타적 입장이다. 지난 총선 때 6석에 불과했던 ‘독실한 시오니즘당’은 이번에 14석을 차지해 일약 원내 3당으로 도약할 전망이다.
강경 보수 정당의 지분이 커지면서 차기 정부의 대외 정책은 한층 더 공격적으로 바뀔 전망이다. 주변 아랍 국가와의 갈등이 다시 고조될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다. 네타냐후는 10여 년간의 분쟁 끝에 현 정부가 합의한 레바논과의 해상 경계 협정을 무효화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또 벤그비르를 치안 담당 장관에 임명해 건국 이후 분쟁이 계속되고 있는 동예루살렘의 성전산(聖殿山)을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성전산은 유대교와 이슬람교 양쪽에서 모두 성지로 여기는 곳이다.
우파의 승리에도 네타냐후의 집권이 불확실하다는 관측도 있다. 극심한 정치 분열에 따른 정당 간 이합집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지난 3년 반 동안 5번이나 총선을 치렀다. 2019년 4월과 9월 총선에서는 연립정부 구성에 실패했고, 2020년 3월 총선에선 여권 내 예산안 처리를 둘러싼 갈등으로 연정이 깨졌다. 지난해 3월 총선으로 출범한 반네타냐후 연정은 극심한 이념 갈등 속에 우파 계열 의원들이 잇따라 이탈, 연정이 무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