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3일(현지 시각) 벨기에 브뤼셀 유럽연합(EU) 본부에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등 EU 수장들과 만난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AFP 연합뉴스

지난달 취임한 극우 성향의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본격적으로 국정 운영을 시작하면서 지중해 난민 문제가 유럽의 새 골칫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멜로니 총리를 비롯한 유럽 극우 성향 지도자들은 기본적으로 자국에 난민을 들이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라 국제 인권 단체나 일정 수준의 난민 수용을 고려하는 다른 유럽 국가들과 갈등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7일(현지 시각)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멜로니 총리가 최근 지중해에서 표류하던 난민 1075명을 구조한 독일과 노르웨이 구호 단체 소속 난민 구조선의 입항을 거부했다는 기사를 공유하며 “드디어 유럽의 국경을 지켜준 멜로니 총리와 새로운 이탈리아 정부에 큰 감사를 표한다”는 글을 올렸다. 멜로니 총리가 국제적인 비난을 감수하며 난민 구조선 입항을 거부하는 것이 유럽 국경을 수호하는 조치라고 치켜세운 것이다. 오르반 총리는 유럽에서 반(反)난민·반(反)유럽연합(EU)을 표방하는 대표적인 극우 정치인이다.

이에 앞서 이탈리아 정부는 지중해에서 표류하던 난민 구조선 4척 가운데 2척에 대해서만 카타니아 항구 임시 정박과 일부 취약자 하선을 허가했다. 이에 따라 ‘국경 없는 의사회’가 운영하는 노르웨이 선박 ‘지오 바렌츠’호에 탄 이주민 357명과 독일 구호 단체 ‘SOS 휴머니티’의 구조선 ‘휴머니티 1′호의 144명이 카타니아 항구에 내리게 됐다.

이탈리아 정부는 두 선박에 있는 나머지 성인 남성 250명은 건강 상태가 양호하다며 하선을 불허하고 카타니아에서 출항할 것을 명령했다. 하지만 휴머니티 1호는 모든 이민자가 배에서 내려야 한다며 이를 거부했고, 멜로니 총리는 구조선들이 이민자를 위한 ‘택시 서비스’를 제공한다며 항구를 떠나지 않으면 벌금 5만유로(약 7000만원)를 부과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구호 단체 등은 취약자를 분류해 선별적으로 하선 인원을 정한 것 자체가 불법적이고 비인도적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이런 강경한 입장은 유럽 국가 중에서도 유독 이탈리아가 난민 유입으로 가장 골머리를 앓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 들어 지중해를 건너 이탈리아에 상륙한 이주민 8만5991명 가운데 프랑스와 독일로 분산 수용된 이주민은 각각 38명, 74명에 불과했다.

멜로니 총리의 등장으로 유럽 극우 세력은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2012년 극우 성향 ‘이탈리아형제들(FdI)’을 창당한 멜로니는 지난 9월 총선에서 FdI을 중심으로 한 우파연합의 승리를 이끈 뒤, 지난달 22일 이탈리아 총리 자리에 올랐다. 멜로니는 집권 전부터 반(反)이민자 정책을 공언했다. 이번에도 멜로니 총리는 난민 구조선들이 독일과 노르웨이 국적 선박이고 이들이 먼저 나서서 이주민들을 구조한 것이기 때문에 독일, 노르웨이가 책임질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독일과 노르웨이는 국제법에 따라 구조 지점에서 가장 가까운 이탈리아에서 우선 수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프랑스까지 합세해 이주민 상륙을 요청하고 있지만 멜로니 총리는 요지부동이다.

난민에 대한 논란은 유럽 여러 나라가 뛰어들면서 EU 전체의 이슈로 커지고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지난 4일 멜로니 총리를 직접 만나 우선 이주민들을 하선시킨 뒤 난민 수용 의사를 밝힌 21개 국가와 이민자 배분을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멜로니 총리는 해당 제안에 구체적 숫자가 없어 이탈리아에 이롭지 못할 것으로 판단, 단박에 거절했다고 이탈리아 매체들이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