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터 연합뉴스

세계 3대 암호화폐 거래소 중 하나로 꼽혔던 FTX가 유동성 위기 끝에 결국 11일(현지 시각) 파산하고 샘 뱅크먼프리드 최고경영자(CEO)가 물러났다.

이날 FTX는 공식 트위터 계정에 올린 성명을 통해 “챕터11 파산 절차를 신청했다”고 밝혔다. 미국 연방파산법상 파산 보호 신청인 챕터11은 파산법원 감독 하에 구조조정 절차를 진행하는 한국의 기업회생절차와 유사한 제도다.

또한 부실 경영에 대한 책임이 있는 샘 뱅크먼프리드(SBF)가 CEO에서 물러나고 존 J. 레이 3세가 그 자리를 대체했다. 이와 함께 이번 사태의 시발점이 됐던 알라메다 리서치를 포함해 FTX 그룹과 관련된 130여 개의 회사도 파산 절차를 밟는다.

레이 신임 CEO는 “FTX 그룹은 조직적이고 공동적인 프로세스에서만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귀중한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며 “모든 직원, 고객, 채권자, 계약 당사자, 주주, 투자자, 정부 당국 및 기타 이해 관계자가 성실, 철저하며 투명하게 이 같은 노력을 수행할 수 있도록 보장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FTX의 파산 발표 직후 SBF는 자신의 트위터에 “여기까지 이르게 된 것에 죄송하다”며 “상황이 회복될 방법을 찾을 수 있길 바란다”고 썼다.

11일(현지 시각) FTX가 성명을 통해 파산 절차를 밟았다고 밝혔다. /FTX 트위터

앞서 미국 코인데스크가 지난 2일 FTX의 계열사 알라메다 리서치의 재무제표를 입수, FTX가 자체 발행한 코인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몸집을 키워왔다며 재무 건전성이 취약하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번 사태가 촉발됐다.

보도에 따르면, FTX는 자체 발행한 코인인 FTT를 알라메다에 빌려줬고 알라메다는 이 FTT를 담보로 달러를 빌려 FTX에 입금했다. FTX는 이 돈을 다시 FTT를 사들이는 데 쓰며 FTT 가격을 올렸고, 알라메다는 가격이 오른 FTT를 팔아 차익을 남긴 뒤 다시 대출과 투자금 확보에 사용했다.

이 같은 사실이 보도를 통해 드러나자 경쟁사이자 세계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인 바이낸스의 자오창펑 CEO가 지난 7일 “바이낸스가 보유한 FTT를 전부 처분하겠다”고 선언하며 5억8000만달러(약 8000억원)에 달하는 FTT를 매도했다. 또한 회원들이 코인 거래를 위해 FTX에 예치한 자금을 알라메다를 지원하는 데 썼다는 사실까지 알려지며 FTX는 궁지에 몰리게 됐다.

불안감을 느낀 개인과 기관들이 앞다퉈 FTX에 예치한 자금을 빼는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이 시작됐고, FTX의 유동성 위기가 커졌다. 미 SEC(증권거래위원회)와 CFTC(상품선물거래위원회)도 조사에 착수했다.

사태가 암호화폐 시장 전체 위기로 확산하자 이를 진화하기 위해 바이낸스가 FTX를 인수하겠다고 나서면서 일단락되는 듯 싶었으나, 지난 9일 바이낸스가 인수를 전격 철회하면서 FTX는 파산 위기에 몰렸다. 지난 6일 개당 25달러 수준이던 FTT가 3일 만에 90% 이상 폭락했고, FTX는 회원들에게 돌려줄 돈조차 부족한 유동성 위기에 몰리며 결국 11일 파산에 이르게 됐다.

샘 뱅크먼 프리드 FTX CEO. /FTX

FTX의 창업자 SBF는 지난 8월만 해도 ‘확장하는 암호화폐 제국의 소유자’(미 월스트리트저널)로 불렸던 인물이다. 올 초 FTX는 기업가치 320억달러(약 44조원)를 인정받았고, 30세인 SBF는 자산 156억달러를 가진 억만장자가 됐다. SBF는 올해 8월까지 미국 민주당에만 3600만달러(약 500억원)를 후원한 로비계의 거물이기도 하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이던 2020년 정치 자금 후원 순위 2위에 오를 정도였다.

한때 거래 규모로 세계 2위까지 올랐던 FTX가 파산하면서 글로벌 금융권 전체에 연쇄 타격을 주는 ‘코인판 리먼 브러더스 사태’가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사태는 암호화폐 업계의 리먼브러더스 사태”라고 평가했고, 블룸버그는 “암호화폐 산업 자체가 벼랑 끝에 섰다”고 했다. 2008년 당시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을 계기로 주요 금융기관들이 도미노 파산을 일으키며 글로벌 금융 위기를 촉발한 데 빗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