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9일 대만 총통부를 방문해 차이잉원 대만 총통(가운데)과 만난 한국 여야 의원들. (왼쪽부터) 정우택 국회부의장, 조경태 의원(한·대만의원친선협회 회장), 차이잉원 총통, 이달곤 국민의힘 의원,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photo 이달곤 의원

지난해 말 대만을 방문한 한국 여야(與野) 의원들을 주한 중국대사관이 ‘생쥐’에 빗대 비난하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주한 중국대사관은 지난 1월 5일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발표하고 한국 여야 의원들의 대만 방문을 ‘촨팡(竄訪)’이라는 용어를 동원해 격하게 비난했다. ‘촨팡’이라는 용어는 ‘생쥐(鼠)’가 ‘쥐구멍(穴)’을 찾아 들어가는 모습에 빗댄 중국식 외교용어다. 중국 당국은 달라이 라마의 외국 방문 때 주로 ‘촨팡’이라는 용어를 동원해 비난해 왔다. 지난해 8월 낸시 펠로시 당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때도 ‘촨팡’이라는 용어를 동원해 격하게 비난한 바 있다.

‘촨팡’, 쥐구멍 찾아가는 생쥐

한국 국회의원을 ‘생쥐’에 빗댄 주한 중국대사관 측의 모독적 언사에 한·대만의원친선협회 회장으로 여야 의원 3명을 이끌고 대만을 찾은 국민의힘 당권주자 조경태 의원은 지난 1월 6일 ‘중국은 한국의 의원외교에 대한 시건방진 태도를 멈추어라’라는 입장문을 올리고 “중국의 이 같은 행동은 정상국가의 행동이 아니다”라며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는 망언에 대해 즉각 사과하라”고 발끈했다.

하지만 ‘사전 비공개’ 형식으로 비밀리에 진행된 여야 의원들의 대만 방문이 중국 측에 트집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12월 28일부터 31일까지 대만을 방문한 여야 의원은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을 비롯해 정우택 국회부의장, 이달곤 의원, 더불어민주당 이원욱 의원 등 총 4명이다. 하지만 이들 의원 가운데 대만 방문 전후로 페이스북 등에 대만 방문 사실을 공개한 사람은 이달곤 의원이 유일했다.

이달곤 의원은 지난해 12월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차이잉원 대만 총통, 여우시쿤 대만 입법원장 등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고 “한국 대만 의원친선협회 소속 의원님들과 함께 대만을 방문했다”며 “앞으로도 양국 간 의회교류 협력 강화 및 우호관계 증진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이달곤 의원은 “(중국에) 겁먹을 것이 무엇이 있느냐”고 했다.

반면 이달곤 의원과 함께 대만을 찾은 나머지 의원들은 지난 1월 5일 주한 중국대사관의 비난성명이 나오기까지 대만 방문과 관련한 언급을 일절 하지 않았다. 이 같은 침묵은 여야 의원들의 대만 일정이 끝나는 날인 지난해 12월 31일 대만 외교부가 ‘한·대만의원친선협회 조경태 회장 일행의 대만 방문을 환영한다’는 사후 보도자료를 낸 뒤에도 계속됐다.

대만 정부 역시 한국 여야 의원들의 대만 방문에 이례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중국 당국이 내세우는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대만은 지난해 12월 기준 수교국이 14개국에 불과한 국제사회의 ‘미아(迷兒)’다. 대만 총통부나 외교부는 외교적 고립을 탈피할 요량으로 미수교국 정치인과 고위 관료의 대만 방문 사실을 사전과 사후에 대대적으로 선전해 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다. 대만 정부가 한국 여야 의원들의 대만 방문 사실을 공개한 것은 이들의 방문일정이 종료된 지난해 12월 31일과, 주한 중국대사관의 비난성명이 발표된 다음날인 1월 6일 두 차례에 그친다. 한국 여야 의원의 대만 방문과 관련한 발언이나 사진도 일절 공개하지 않았다. 주한 타이베이대표부 역시 한국 의원들의 대만 방문 사실에 대해 “외교부 보도자료 외에 추가로 언급할 사항이 없다”며 “양해 바란다”며 극도로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국 외교부도 정례브리핑에서 “국회의원의 개별 활동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언급할 사항이 없다”고 선을 긋고 있다.

이례적인 태도는 대만 외교부뿐만 아니라 대만 총통부 역시 마찬가지다. ‘대만 독립파’인 민진당 차이잉원 총통은 주요 외빈들의 대만 방문 시 총통부 페이스북 등을 통해 만남을 생중계하고, 관련 사진과 발언 등을 적극 공개했다. 반면 한국 여야 의원들이 지난해 12월 29일 총통부를 예방했을 때는 ‘우의를 길이 다진다’는 ‘우의장존(友誼長存)’이란 붓글씨까지 선물했지만 관련 사진과 발언을 일절 공개하지 않았다. 여우시쿤 입법원장 역시 카운터파트인 한국 여야 의원들과의 만남을 비공개했다.

지난해 12월 29일 대만 총통부에서 성사된 한국 여야 의원들과 차이잉원 총통과의 면담 자리에는 정병원 주타이베이 한국대표도 배석했지만, 공관장 활동사항을 따로 알리지 않았다. 주타이베이 한국대표부의 한 관계자는 “우리가 주체가 아니고 의원들이 한 것으로 정병원 대표는 배석만 했을 뿐”이라며 “외교부 본부의 별도 비공개 지시도 없었다”고 말했다. 외교가의 한 관계자는 “재외공관장이 일국 대통령이나 총리를 직접 만나는 것은 신임장을 제정하는 것을 제외하고 재임 중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라며 “이런 일을 별도 공개하지 않았다면 외교부 본부의 지시가 있었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일본 참의원 방문은 ‘대서특필’

이는 비슷한 시기 대만을 찾은 일본 참의원들의 행보와도 극적으로 대비된다. 일본 집권 자민당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참의원 간사장을 필두로 한 참의원 12명은 지난해 12월 26일부터 29일까지 대만을 찾았다. 대만 외교부는 이들의 방문에 앞선 지난해 12월 23일 보도자료를 내고 방문 사실을 사전 공개했다. 차이잉원 총통, 라이칭더 부총통, 쑤전창 행정원장, 여우시쿤 입법원장, 우자오셰 외교부장 등 정부 요인들과 면담이 잡힌 사실도 사전 공개했다. 이들 방문단이 대만 신베이의 고(故) 리덩후이 총통 묘역을 참배하고, 가오슝에 있는 고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동상을 찾는다는 세부 일정까지 공개했다.

대만 외교부는 일본 의원들의 방문 기간 중인 지난해 12월 28일에도 재차 보도자료를 내고, 우자오셰 대만 외교부장이 직접 환영만찬을 베푼 사실을 밝혔다. 반면 비슷한 시기 대만을 찾은 한국 여야 의원 4명은 대만 외교부 텐중광(田中光) 정무차장이 환영만찬을 베푸는 데 그쳤다. 우자오셰 대만 외교부장(장관) 아래 정무차장(차관)은 2명인데, 텐중광 정무차장은 서열 3위 2차관에 해당한다. 같은 미수교국이라도 공개 방문한 일본과 비공개 방문한 한국 의원들에 대한 대접이 확연히 달라진 것이다.

한국 여야 의원들의 대만 방문 사실을 공개하지 않은 차이잉원 총통 역시 일본 참의원 방문단의 대만 방문은 크게 알렸다. 일본 참의원 방문단은 한국 여야 의원들보다 하루 앞선 지난해 12월 28일 타이베이 총통부를 찾았는데, 차이잉원 총통은 “대만을 방문한 12명의 일본 참의원은 아베 전 총리의 충실한 동료이자 오랫동안 대만을 지지해온 중요한 친구들”이라며 “이번 방문이 다시 한번 대만과 일본의 견실한 우호관계를 보여준다”는 발언을 공개했다. 이들과의 접견은 페이스북을 통해 생중계됐다.

차이잉원 총통은 지난해 12월 20일 존 커티스 미국 하원의원 일행과 유럽의회 대표단의 대만 방문 때도 똑같은 방식으로 관련 사진과 발언을 공개했다. 새해 들어 대만을 찾은 투발루, 파라과이, 독일 등지의 의원들과 만날 때도 마찬가지였다. 투발루와 파라과이는 수교국이고, 독일은 미수교국이다. 대만 현지에서도 차이잉원 총통의 한국 여야 의원들을 접견한 방식이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외교부의 한 관계자는 “여야 의원들이 개별적으로 갈 때 외교부로 사전에 문의 들어온 바가 전혀 없다”며 “외교부 차원에서 전혀 관여한 내용이 없어 우리도 특별히 아는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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