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블링컨(오른쪽) 미국 국무부 장관과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로이터 뉴스1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과 왕이(王毅)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이 18일(현지 시각) 독일 뮌헨안보회의(MSC) 참석을 계기로 회동했다. 지난 4일 중국의 정찰 풍선이 미 영공을 침공하자 미국이 격추한 사건이 벌어진 이후 미·중 외교 사령탑 간 첫 만남이었다. 양측은 정찰 풍선 문제와 함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문제로 날 선 공방을 벌였다.

미 국무부에 따르면 블링컨과 왕이는 이날 뮌헨안보회의에 참석 중 1시간 동안 회담을 가졌다. 두 사람의 회담은 비공개로 진행된 후 사후에 발표됐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회담 후 발표한 성명에서 “(블링컨 장관은) 미 영공 내 중국의 고고도 정찰 풍선으로 인한 미국 주권 및 국제법 위반 행위를 용납할 수 없다고 직접적으로 언급했다”면서 “주권 침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중국의 고고도 정찰 풍선 프로그램이 전 세계에 노출됐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고 밝혔다.

블링컨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 중국의 군사 지원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차원에서 “중국이 러시아에 물질적 지원을 제공하거나 체계적인 제재 회피를 지원했을 때 발생할 영향과 결과를 경고했다”고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블링컨의 강경 발언은) 반 세기 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중국 지도부와 소통의 통로(미·중 수교)를 연 이후 미·중 관계가 최악의 상황에 있음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줬다”고 전했다.

토니 블링컨(왼쪽) 미국 국무장관과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이 18일(현지 시각) 독일에서 열린 뮌헨안보회의에서 각각 발언하고 있다. 이들은 중국 정찰 풍선 문제를 놓고 날 선 공방을 벌였다. /EPA 연합뉴스, 로이터 연합뉴스

중국 외교부는 미국이 풍선을 격추한 데 대해 왕이가 “상식 밖이고 히스테리에 가까우며, 100% 무력 남용”이라며 “미국이 국내 정치의 필요 때문에 외부와 교류할 때 이런 황당한 일을 또 벌이지 않길 바란다”고 비판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왕이는 미국의 대중 경제 제재 등에 대해서도 ‘명화집장(明火執仗·불과 무기를 들고 대놓고 도적질한다는 뜻)’이란 표현을 쓰며 강력하게 불만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는 “중국은 경쟁을 무서워하지 않지만, 경쟁은 공평하고 규칙에 따라야 하는 것”이라며 “미국이 반도체법을 출범하며 국가의 힘으로 중국 기업을 탄압하는 것은 100% 일방주의와 이기적인 행위”라고 반발했다. 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서도 “일부 세력은 평화회담의 성공이나 휴전을 원하지 않는 것 같다”며 미국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왕 위원이 블링컨 장관에게) 개현경장(改弦更張·방침이나 태도를 바꿔야 한다는 뜻)을 요구하고 무력 남용으로 중·미 관계에 끼친 손해에 대해 직시하고 해결하라고 했다”고 전했다.

이날 양국의 외교 사령탑 회동은 지난 16일 바이든 대통령이 연설에서 “우리는 신냉전을 원치 않는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협의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힌 지 이틀 만에 성사됐다. 쉬쉐위안 주미 중국 대사대리도 전날 워싱턴포스트(WP)에 보낸 기고문에서 “미국이 중국과 협력해 방랑하는 풍선 하나가 양자 관계를 잘못된 방향으로 끌고 가게 두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면서 양국 간 긴장 완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AP통신 등은 “(전날인 17일) 미 북부사령부가 지난 4일 격추된 정찰 풍선의 잔해 회수 작업을 완료했다고 밝히는 등 미 정부는 이번 사태를 일단락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고 (중국도) 응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회담에서 상호 거친 발언이 오가며 강하게 대립, 미·중 간 긴장이 당분간 해소되기 어려운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블링컨은 당초 5일 방중하려다 정찰 풍선 사태 발발 직후 계획을 취소했다. WP 등 주요 매체들은 “양국 외교 최고위급이 대면(對面) 외교를 재개한 것은 의미 있다”면서도 “(양측 간) 날카로운 신경전이 오가면서 미·중 간 긴장은 여전히 높은 상황”이라고 했다. 양국이 이날 입장 차를 좁히지는 못했지만 관계 회복을 위한 대화 시도가 조만간 이어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주펑(朱鋒) 중국 난징대 국제관계연구원장은 본지에 “중·미 외교 수장의 이번 만남은 복잡하고 험난한 중·미 관계 속에서 쌍방의 대화와 접촉, 소통 의지를 확인한 것”이라며 “풍선 사태가 끝나지 않았지만 사태를 수습할 의사는 확인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