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원료인 리튬(lithium) 확보를 위해 각국 정부, 기업 간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리튬은 밀도가 가장 낮은 고체 원소로 반응성이 매우 강한 흰 금속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기차 시장 확대로 리튬 수요는 2040년까지 40배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지난 1년 새 가격이 4~5배 뛰어 ‘하얀 석유’ ‘백색 황금’으로 불리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19일 세계 1위 전기차 기업 테슬라가 캐나다의 리튬 채굴 기업 시그마 리튬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전기차 제조와 배터리 생산을 하는 테슬라는 최근 리튬 정제에 손을 댔는데, 이제 채굴까지 뛰어들어 전기차 생산 공급망을 통째로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리튬 정제 사업을 “돈 찍어내는 면허”라고 말하며 2020년 호주 피드몬트 리튬과 공급계약을 체결했고 지난해부턴 텍사스주에 리튬 정제 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앞서 미 최대 자동차 업체 제너럴모터스(GM)도 캐나다의 리튬 광산 업체 리튬아메리카스에 6억5000만달러(약 8413억원)를 투자했다. 포드도 호주 광산 업체 라이언타운과 계약했다. 이 기업들은 경쟁사인 테슬라보다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며 리튬 계약을 따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도요타도 아르헨티나에서 수입한 리튬을 후쿠시마현에서 가공해 전속 공급하기로 했다.
리튬 매장량 세계 10위국인 멕시코는 리튬을 전면 국유재산화하는 법안을 정식으로 공포하고 시행에 돌입했다. 이 법안은 지난해 초당적 합의로 상·하원 의회를 통과했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18일 리튬 매장지인 소노라 지역을 채굴 보호 구역으로 선언하는 법안에 서명하고 “이 나라의 리튬은 모든 멕시코 국민의 것이다. 러시아도 중국도, 미국도 손댈 수 없다”고 말했다.
멕시코가 ‘리튬 자원 민족주의’를 내세운 것은 각국이 리튬을 찾아 라틴아메리카에 몰려들자 가격을 높이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미 지질조사국에 따르면 전 세계 리튬 매장량의 56%가 라틴아메리카에 묻혀 있다. 특히 아르헨티나-볼리비아-칠레에 이르는 ‘리튬 트라이앵글’에 53%가 몰려 있다. 리튬은 채굴과 정제가 까다롭다. 리튬 생산량은 호주가 47%로 최대이고, 정제량은 중국이 60%로 1위다. 주요 기업들은 이 같은 생산·정제의 독점을 깨야 저렴한 가격에 리튬을 자체 공급해 전기차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아르헨티나와 칠레를 순방해 벤츠와 BMW 등 자국 기업에 리튬을 공급하는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미국 정부는 ‘리튬·배터리 탈(脫)중국’을 이루기 위해 중국산 배터리를 사용하는 기업에 불이익을 주고 있다. 그러자 세계 최대 배터리 기업인 중국 CATL은 볼리비아 국영 광산에 가서 10억달러 규모의 추가 공급계약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