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은행이 파산한 지난 10일 직원들이 산타클라라의 은행 본부 앞에 모여있다. 전날인 9일 미 국채 매각에 따른 손실을 발표하자마자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업계에서 많이 쓰는 메신저앱 '슬랙'으로 이 소식이 공포와 함께 순식간에 퍼졌고, 기업인들이 바로 스마트폰 뱅킹앱을 켜서 예금을 빼내버리는 '스마트폰 뱅크런'이 일어났다. / AFP 연합뉴스

설립 40년 된 실리콘밸리은행(SVB)이 자금 위기에 직면한 지 단 36시간 만에 초고속 파산한 것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으로 은행 거래를 하면서 예금 인출이 손쉬워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과거 ‘뱅크런(bank run·대규모 예금 인출)’이 실제 은행 창구에 달려가 예금을 빼내는 행위를 의미했다면, 이제는 작은 공포만 일어도 스마트폰 클릭 몇 번이 실시간 ‘원격 뱅크런’으로 이어져 금융사가 몇 시간 만에 망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2일(현지 시각) ‘스마트폰 뱅크런으로 비운을 맞은 SVB’라는 기사에서 이 은행의 주 고객인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사업가들이 거래 은행의 위기 소식을 접하자마자 순식간에 스마트폰으로 예금을 대거 인출한 현상을 소개했다. 한 보험 스타트업 설립자는 “지난 9일 몬태나주에서 열린 창업자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비행기에서 내려 버스를 타는 동안, 동료 창업자들이 미친 듯이 스마트폰을 두드리며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SVB에서) 회사 자금을 빼내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전했다.

/AFP 연합뉴스

앞서 이날 오전 SVB가 “예금이 줄어 대부분 미 국채로 구성된 매도 가능 증권을 어쩔 수 없이 매각했고, 18억달러 손실을 봤다”고 공시하자마자 증시에서 SVB 주가가 급락하기 시작했다. 이 소식은 스마트폰에 깔린 사무용 메신저앱 ‘슬랙’을 통해 순식간에 퍼졌고, 돈을 떼일까 봐 겁에 질린 예금주들은 곧바로 뱅킹앱 아이콘을 눌러 켰다. 이들이 당일 은행 거래 마감 시간까지 인출한 자금 규모는 420억달러(약 54조7600억원)에 달했다. 결국 다음 날인 10일 오전 캘리포니아주 금융 당국이 유동성 부족과 지급 불능을 이유로 SVB를 폐쇄하고,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를 파산 관재인으로 임명하면서 파산 절차가 하루 만에 마무리됐다.

그렉 베커 실리콘밸리은행(SVB) 회장/로이터 뉴스1

WSJ는 이번 SVB 사태가 2008년 리먼 브러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 위기만큼 심각한 상황이 아니었는데도, 소셜미디어에서 사실과 허구가 뒤섞인 소식이 번개처럼 빠른 속도로 확산했고, 스타트업 관계자들이 즉각적으로 반응하면서 초고속 파산으로 이어졌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