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현지 시각) 영국 가디언의 홈페이지. 200여년 전 가디언 창립자들의 노예제 연루에 대한 사과가 담긴 기사를 전면에 배치했다. /가디언 홈페이지

200년 역사의 영국 주요 언론인 가디언이 19세기 창립자들의 노예제 연루에 대해 사과하고, 당시 노예의 후손들을 위해 10년간 1000만파운드(160억원) 규모의 배상 프로그램을 운영하겠다고 28일(현지 시각) 발표했다.

가디언지를 소유한 스콧 트러스트는 이날 ‘노예 유산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스콧 트러스트가 ‘흑인 목숨도 중요하다(BLM)’ 운동을 계기로 2020년 7월부터 노팅엄대 등에 창립자들과 노예제 관계에 관한 조사를 의뢰해 확인한 결과다.

보고서에 따르면, 1821년 가디언을 창립한 면화 거래상 존 에드워드 테일러와 투자자인 맨체스터 지역의 상인 11명 중 최소 9명이 노예제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창립자 테일러는 자신의 회사인 셔틀워스,테일러를 통해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와 조지아주의 노예 농장에서 면화를 가져왔다. 당시 송장에는 농장주와 노예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가디언 창립에 관여한 맨체스터의 투자자 9명이 노예제와 직간접적으로 엮였던 사실도 밝혀졌다. 일례로 가디언의 초기 투자자인 조지 필립은 자메이카 하노버에 있는 설탕 농장과 노예를 직접 소유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스콧 트러스트 측은 “조사에서 확인된 가디언 창립자들의 반인륜적 범죄 피해를 받은 노예의 후손들에게 사과하며, 면화 산업을 지원하고 노예가 된 사람들을 착취하는 데 기여한 가디언의 초창기 논지에 대해 사과한다”고 밝혔다.

스콧 트러스트의 올 제이컵 선디 회장은 “이런 사실을 사과하고 공유하는 것은 가디언과 노예제 간의 역사적 고리를 푸는 첫 단계일 뿐”이라고 말했다.

캐서린 바이너 가디언지 편집국장은 “설립자들이 반인륜적 범죄 행위로 부를 끌어모은 점을 직시하고 사과한다”며 “3세기에 걸친 언론 조직으로서 우리의 이런 끔찍한 역사는 저널리즘으로 인종차별, 불공정, 불평등을 폭로하고 권력자들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우리의 결의를 강하게 만든다”고 했다.

스콧 트러스트는 조사 결과를 토대로 10년간 1000만파운드 이상을 들여 창립자들과 관련된 당시 노예의 후손 등에게 배상하는 복원적 정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그 일환으로 농장이 있던 지역에서 공동체 사업을 지원하고 카리브해, 아프리카, 영국·미국의 흑인 공동체에 관한 보도를 확대하고, 흑인 독자를 겨냥한 편집 포맷을 만든다.

흑인 언론인 지망생과 중견 기자들을 위한 교육을 강화하고 가디언재단의 교육 장학금 제도를 확장하기로 했다. 또한 대서양 양안의 노예제 역사를 탐구하는 기획 시리즈물인 ‘면화 자본’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