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해외에서 반체제 활동을 벌이는 인사들을 탄압하기 위해 각국에서 비밀 경찰서를 운영해온 사실이 알려진 가운데, 공산당 최고 사정기구 소속 감찰관을 각국 대사관에 배치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등은 “불법적 주권 침해”라며 반발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 공산당의 반(反)부패 사정기관인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소속 감찰관들이 최근 미국과 유럽 등 주요 20국(G20) 주중 대사관에 외교관 신분으로 파견돼 업무를 시작했다고 29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집권 3기에 돌입한 시진핑 국가주석이 “부패와 싸움을 이어가겠다”고 천명한 데 따른 것이란 분석이다.
중국은 2014년부터 각국에서 벌여온 이른바 ‘여우 사냥 작전’을 확대하고 있다. 중국은 ‘횡령·사기 범죄를 저지르고 해외 도피한 전직 국영기업 임원 등 부패 인사를 추적하고 송환하는 작전’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분리 독립운동을 벌이는 신장·위구르나 대만계 인사, 반체제 성격이 강한 파룬궁 관계자, 내부 폭로자나 언론인, 대학생 등이 자유 진영 국가에서 활동하지 못하게 탄압하는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는 증거가 속속 공개되고 있다. 최근 뉴욕동부지검 등 수사 당국에 따르면, 여우 사냥 조직원들은 미국 각지의 중국계 반체제 인사를 추적해 “중국에 돌아가지 않으면 가족이 위험해진다” “신체를 훼손하겠다”며 협박하거나 감금하고, 스파이 조직을 확대해왔다고 한다.
지난 연말부터 서울 송파구의 중식당 ‘동방명주’, 뉴욕 맨해튼 마라탕집 건물의 ‘푸젠성 향우회’ 등이 여우 사냥 작전을 위한 비밀 경찰서로 지목됐다. 스페인에 본부를 둔 인권 단체 세이프가드 디펜더스에 따르면 중국은 이런 비밀 경찰서를 53국에 102곳에서 운영해왔고, 10년간 120국서 1만여 명을 자국으로 송환했다.
WSJ는 이번 공산당의 감찰관 배치에 대해 “비밀 경찰서의 실체가 드러나며 폐쇄 요구가 일자, 아예 공식 루트인 각국 대사관을 통해 경찰력을 행사하기로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부기관 소속 공무원이 아닌 특정 정당(공산당) 조직원에게 외교관 신분을 부여해 파견한 것은 국제 관행상 이례적인 것으로,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미 하원 미·중 전략경쟁특위 위원장인 마이크 갤러거(공화당) 의원은 “미국은 중국의 사냥터가 아니다”라며 “미국 국민을 겁박하는 주권 침해 행위를 좌시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한편 중국이 독일에서 활동하는 반체제 인사들을 괴롭히기 위해 이들의 명의를 도용, 각국 호텔과 대사관에 “폭탄을 설치했다”는 거짓 협박을 했다고 미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가 29일 보도했다. 독일에서 중국에 비판적 보도를 해온 자유아시아방송 기자 수유통과 반체제 활동가 왕징유, 밥 푸 등 3명 명의로 지난해 10월부터 독일과 미국·네덜란드·벨기에·튀르키예·홍콩·마카오 등 6국의 고급 호텔에 객실을 예약하고, 경찰 등에 전화해 이들의 이름을 거론하며 협박한 사건이 14차례 발생했다. 이들이 현지 경찰 조사를 받고 구금까지 당한 것도 여우 사냥 작전의 일환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