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강(秦剛) 중국 외교부장은 2일 베이징의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열린 중·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일본은 위호작창(爲虎作伥·악인의 앞잡이가 된다)해선 안된다”면서 “역사와 인민에게 부끄럽지 않은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고 했다. 친미(親美) 노선을 확고히 하는 일본을 노골적으로 압박한 것이다. 일본의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외무상은 자국 최대 현안인 구속 중 일본인의 조기 석방을 요구하고, 영토 분쟁지인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 인근에서 중국이 벌이는 군사 활동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하야시 외무상은 외교 장관 회담을 마친 뒤 리창 중국 총리와 중국 외교 사령탑인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을 연이어 면담했다.
2일 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중·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친강은 양국 수교 50주년을 언급하며 “양국 관계의 바통은 우리 세대의 손에 넘겨졌다”며 “중·일 교류와 의사 소통을 강화해, (관계를 막는) 방해나 곤란을 극복하고 관계를 진전시키고 싶다”고 했다. 이에 하야시 외무상은 “현재 일·중 관계는 다양한 가능성이 있지만, 동시에 수많은 과제와 심각한 현안에 직면한, 매우 중요한 국면”이라며 “양국은 지역과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에 함께 중요한 책임이 있는 강대국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의 일본인 구속, 센카쿠열도·대만해협 인근에서의 군사적 활동, 우크라이나에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중국의 태도 등을 현안으로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친강은 일본이 미국의 대중 반도체 제재에 동조하고 있다면서 “봉쇄는 중국의 자립 자강 결심을 불러올 뿐”이라며 “갈등과 의견 차이에 직면해 파벌을 만들고 압력을 가해봐야 문제 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다음달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주요 7국(G7) 정상회담에서 의장국인 일본이 중국에 불리한 결정을 내려선 안 된다고도 했다. 친강은 “일본은 G7 회원국인 동시에 아시아의 일원”이라며 “회의의 기조와 방향을 올바르게 인도하며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유리한 일을 많이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최근 G7 회원국에 중국의 경제 위압에 공동 대처할 것을 요구한 상황을 겨냥한 발언이다. 친강은 또한 대만 문제는 중국의 핵심 이익이고 중일 관계의 정치적 기초라는 점을 재확인했다.
당초 양국의 외교회담은 빨라도 5월 이후에야 이뤄지는 분위기였다. 중국 측은 작년 12월 일본 외무상의 방중을 요구했지만 일본이 거절한 상황이었다. 중국은 미국 주도의 대중국 포위망에서 벗어나는 연출을 하려면 일본 외무상의 방문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일본은 외무상의 방중 조건으로 시진핑 국가주석과의 면담을 요구해 그간 협상이 지지부진했다.
지난달 20일쯤 베이징에서 근무하는 일본 아스텔라스 제약의 50대 직원이 반간첩법 혐의로 구속되면서 계기가 생겼다. 이달 치러지는 통일지방선거를 앞둔 기시다 내각 입장에서 중국의 자국민 구속을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 전격 방중에 나선 것이다. 아사히신문은 “중국공산당은 이번 사건에 대해 국가안전부가 증거를 확보하고 일본인 직원을 구속하고 있기 때문에 초법적인 조치인 석방은 쉽지 않다는 입장”이라고 보도했다.
일본 외교가 관계자는 “최근에 친중을 대표하는 정치계 원로인 후쿠다 전 총리와 일·중 우호의원연맹 회장 출신인 하야시 외무상이 연이어 중국을 방문해 중국의 고위 인사와 대면 면담한 것 자체가 양국 관계의 개선에 중요한 움직임”이라고 말했다. 이날 회담에서 양국 외교장관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포함한 지역 정세에 대해 의견 교환을 했으며, 한국, 중국, 일본 3국의 고위급이 만나는 ‘한중일 프로세스’를 재개하자는데 합의했다. 앞서 지난달 16일 도쿄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일본 총리는 한중일 프로세스 재개에 합의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