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를 몸에 넣어 2주 만에 종양 크기를 90%나 줄였다. 만우절인 지난 1일 농담 같은 이야기가 과학 저널에 실렸다.
중국 푸단대 화학과의 판 장(Fan Zhang), 용야오 시아(Yongyao Xia) 교수 연구진은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스’에 “생쥐의 암 조직에서 배터리가 산소를 소모하면서 종양이 대부분 사라졌다”고 밝혔다.
◇저산소 환경 유도해 항암제 효과 높여
암세포는 정상 세포보다 훨씬 빨리 자란다. 그만큼 산소도 많이 소모한다. 암 조직 한 가운데는 저산소 환경이 된다. 산소가 부족하면 면역세포도 오래 가지 못해 암세포를 제대로 죽이지 못한다. 혈액 흐름도 원활하지 못해 항암제나 방사선 치료도 잘 듣지 않는다.
과학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산소증 활성 전구약물(hypoxia-activated prodrugs , HAPs)’을 개발했다. 저산소 상태의 암세포만 골라 죽이는 약이다. 하지만 실제 암세포는 저산소 상태가 고르지 않아 이 약이 제대로 듣지 않았다.
푸단대 연구진은 배터리를 암 조직에 붙여 산소 소비를 촉진하면 약물의 효과도 극대화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시아 교수는 “저산소 환경은 암세포에게 양날의 검과 같다”며 “항암 치료 효과가 떨어지고 면역세포도 제대로 공격하지 못하지만, 반대로 암세포만 골라 공격하도록 유도하는 표지가 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동물실험에 사용한 배터리는 체액과 같은 소금물에서 작동한다. 음극의 아연 금속이 소금물 속의 염소와 반응해 전자를 방출하면, 양극에서 물속 산소와 수소가 수산기(OH-)로 환원된다. 산소가 고갈되는 것이다. 수산기는 대표적인 활성산소종이기도 하다. 이 역시 암세포를 공격한다.
연구진은 유방암에 걸린 생쥐 25마리 중 5마리는 종양 조직에 잘 휘어지는 배터리를 부착하고, 저산소 환경에서 암세포를 공격하는 티라파자민(tirapazamine) 약물도 투여했다. 나머지는 치료를 안 하거나 약물 또는 배터리 중 한쪽만 사용했다. 배터리도 작동하거나 그렇지 못한 경우로 나눴다.
2주 실험 결과 배터리만 부착해도 암 조직이 26%까지 줄었다. 여기에 약물까지 투여하면 암 조직이 평균 90% 줄었다. 5마리 중 4마리는 암이 완전히 사라졌다.
◇“고무적이나 아직은 초기 연구”
이번 연구는 동물실험 단계여서 실제 암환자에 적용할 수 있을지 판단하기 이르다. 미국 텍사스대 사우스웨스턴병원의 칭 장(Qing Zhang) 교수는 사이언스뉴스에 “이번 연구의 개념은 과학적인 토대가 확실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고무적인 성과이지만 아직은 초기 단계”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다른 실험동물과 인체 대상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밝혔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랜달 존슨 교수는 뉴사이언티스트지에 “암조직에서 저산소증을 유발하면 암세포가 신체 다른 부분으로 전이되는 속도를 높이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며 “또 사람에게 적용하기 전에 배터리 치료의 비용 대비 효과를 평가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푸단대 연구진은 배터리가 더 잘 휘어지게 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사람의 암 조직에 부착할 수 있을 정도로 크기도 키우고 있다고 했다.
참고자료
Science Advances, DOI: https://doi.org/10.1126/sciadv.adf3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