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펜실베이니아주의 최대 도시 필라델피아의 켄싱턴가(街)에선 대낮에도 노숙인들이 마약에 취해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약 6000명에 달하는 노숙인 중 상당수가 마약으로 뇌가 망가져, 허리나 팔다리를 심하게 꺾은 채 약 3㎞에 달하는 거리에서 비틀거리고 있다. 이 지역에 ‘좀비 랜드’란 오명이 붙은 이유다. 경찰도 사실상 마약 거래 단속은 포기하고, 범죄가 일어나야 개입을 할 정도다. 뉴욕에선 치명적인 수준의 마약 과다 복용이 2021년 2668명에 달해, 전년보다 500명 이상 늘었다. 코로나로 외출이 제한된 기간에 마약 중독은 더 확산했다.
마약은 과거 미국에서 돈이 많이 들어가는, 일부 중독자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하지만 지난 몇 년 사이 값이 싸면서도 자극이 더 센 마약이 미 도시를 중심으로 퍼지면서 사망자와 사고가 급증하는 상황이다.
미국을 이 지경으로 만든 주범으론 ‘펜타닐’이 꼽힌다. 말기암 환자용 마약성 진통제인 펜타닐 중독으로 매년 7만여 명의 미국인이 사망한다. 미 당국이 제약사들의 약품 생산과 의사들의 과잉 처방을 규제하는 데 실패한 탓이다.
미 콜로라도주는 마약의 일종인 대마를 법적으로 허용한 후 다른 마약 사용자까지 덩달아 늘어나 골치를 앓고 있다. 콜로라도는 2014년 미국 최초로 기호용 대마의 재배와 유통, 판매를 허용했다. ‘자유로운 도시’란 이미지가 확산하며 미 전역에서 합법적 대마를 위해 콜로라도를 찾는 이들이 늘면서 범죄와 사고가 급증했다. 실제로 콜로라도주 수도 덴버에선 버스나 인도, 카페 등에 마약에 취해 널브러져 있는 중독자들을 일상처럼 만날 수 있다. 마약 폐해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최근 콜로라도주 의회가 마약 딜러에게 최대 32년의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하는 등 뒤늦게 규제 강화를 추진 중이나 쉽게 수습이 되지 않고 있다.
여러 폐해에도 미국에선 대마를 합법화하는 주가 늘어 논란이 이는 상황이다. 마약을 차라리 양성화해 규제를 하고 세금도 걷자는 취지인데 예상과 달리 통제에 실패하면서 청소년, 심지어 어린이에게까지 마약 피해가 확산하고 있다. 현재 미국 50주 중 21주가 기호용 대마를 합법화한 상황이다.
유럽에서도 마약 문제는 커지고 있다. 매년 관광객 2000만명이 찾는 네덜란드는 향락을 즐기러 오는 영국의 젊은이 등으로 인해 골치를 앓고 있다. 거리가 마약에 취한 이들로 넘쳐나며 치안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자 암스테르담 시 당국이 지난달 29일 ‘마약·성매매 목적으로는 오지 말라(stay away)’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시가 제작한 광고에는 “과도한 음주나 마약을 했다가 말썽을 부리면 벌금을 부과받거나 체포될 수 있다”는 경고가 담겼다.
펜타닐이 파고든 스코틀랜드에선 마약 관련 사망자가 급증해 비상이 걸렸다. 원래는 항불안제이지만 마약으로 오용되는 벤조디아제핀이 특히 많이 번지면서 스코틀랜드 정부가 ‘사망률 감소’를 국가 목표로 삼을 정도다. 러시아와 국경을 접한 에스토니아에서도 인종 문제, 빈곤 등과 연관돼 펜타닐 남용 사망이 유럽 최고 수준으로 불어났다.
아시아도 예외가 아니다. 아시아권 최초로 지난 2018년 의료용 대마를 합법화한 태국은 지난해 6월부터 가정 내 대마 재배를 허용했고 이에 따라 대마 성분이 포함된 과자와 음료도 허용됐다. 그러자 어린이들이 ‘대마 쿠키’를 먹고 입원하는 일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유엔 2022 세계 마약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대마와 아편류, 필로폰, 코카인 등을 비롯해 전 세계 연간 마약 사용자 수(15~64세 기준)는 약 2억8400만명으로 10년 전보다 26% 증가했다. 한국·일본·중국이 포함된 동아시아에서 필로폰 사용이 사상 최대치를 경신한 데 이어, 최근에는 코카인 유입까지 크게 늘고 있다고 유엔은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