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이런 재앙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라.” 유대인 언어인 이디시어로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이 말문을 열었다. 이는 1943년 4월 19일 폴란드 바르샤바의 게토(ghetto·유대인 거주 지역)에서 독일 나치군에 살해된 유대인 화가 겔라 젝크스타인이 남긴 말을 인용한 것이다.
19일(현지 시각) 바르샤바에서 열린 게토 봉기 80년 추모 행사에 참석한 슈타인마이어는 검은 양복 재킷에 유대인을 상징하는 ‘다윗의 별’ 모양 수선화 장식을 달고, 단상에 올라 연설을 시작했다. 독일 국가원수가 바르샤바 게토 봉기 추모식에 참석해 연설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독일인의 역사적 책임에는 끝이 없다”며 “독일인들이 이곳에서 행한 끔찍한 범죄에 깊은 수치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또 “우리 독일인은 책임을 통감하고, 생존자와 우리에게 남긴 과제를 받아들인다”며 “독일인이 저지른 범죄에 용서를 구한다”며 사죄했다. 객석의 유대계 남성이 눈물을 흘렸다.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이날 행사 뒤 열린 유대교 회당 현판 제막식에서 이츠하크 헤르초그 이스라엘 대통령,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과 유대인 전통 모자를 쓰고 나란히 단상에 섰다. 독일이 과거를 반성하며 피해 국가들과 연대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바르샤바 게토 봉기는 1943년 4월 19일 게토 주민들이 강제수용소 이송에 저항해 무장봉기를 일으킨 사건이다. 당시 진압에 나선 나치군이 불을 놓아 유대인 6000명이 타 죽거나 질식사한 것을 비롯, 1만3000여 명이 목숨을 잃었고 살아남은 5만여 명은 포로로 잡혀 수용소로 보내졌다.
전후(戰後) 유럽 역사에서 바르샤바 게토 봉기가 갖는 의미는 특별하다. 폴란드와 전 세계 유대인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비극이었지만, 이 사건이 과거 역사를 독일이 직면하고 과오를 인정하는 출발점이 됐기 때문이다. 1970년 폴란드를 방문한 빌리 브란트 당시 서독 총리가 위령탑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한 것을 시작으로, 이후 독일 정치인들은 거의 매년 바르샤바를 찾아 희생자를 기리고 사과의 메시지를 발표해 왔다.
이번 추모식에서 슈타인마이어는 “독일 대통령으로 여러분 앞에 서서 바르샤바 게토의 용감한 전사들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자리에 함께한 두다 대통령과 헤르초그 대통령에게 “끔찍한 범죄에도 불구하고 폴란드와 이스라엘의 많은 국민이 독일과의 화해를 허락했다”며 “(화해라는) 기적적인 성과를 보존하고, 함께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