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현지 시각) 벨기에 앤트워프 항구에 미국산 맥주인 '밀러 하이라이프' 캔이 폐기된 채 쌓여있다 ./AP 연합뉴스

미국 유명 맥주 브랜드 ‘밀러’의 대표 상품인 ‘밀러 하이 라이프’ 맥주가 벨기에 세관 당국에 압수돼 전량 폐기됐다고 22일(현지 시각) CNN과 가디언 등이 보도했다.

벨기에 세관은 17일 앤트워프 항구에서 독일로 반출될 예정이었던 밀러 하이라이프 캔맥주 2352개를 모두 폐기처분했다. 세관은 캔맥주 하단에 적힌 ‘맥주계의 샴페인(The Champagne of Beers)’이라는 광고 문구를 문제삼았다.

유럽연합(EU)의 원산지 명칭보호규정을 위반했다는 국제샴페인위원회(CIVC)의 항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샹파뉴 지역에서 만든 스파클링(발포성) 와인이 아니면 ‘Champagne’ 표기가 금지된다. 샹파뉴를 영어식으로 읽으면 ‘샴페인’이다.

밀러 측은 “현재 유럽 지역에 밀러 하이 라이프 제품을 수출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압수된 맥주는 한 독일 거주자가 주문한 것인데, 이 주문자는 벨기에 세관의 폐기 조치 통보를 받아들였다고 국제샴페인위원회는 밝혔다.

EU 규제는 제1차 세계대전 종전 이듬해인 1919년 체결된 베르사유 조약에서 유래한다. 전쟁으로 와인 생산지에 타격을 입은 프랑스가 독일 등 다른 국가의 와인 산업 확대를 저지하려는 목적으로 제안했고, 정식으로 채택됐다. 지난 1987년에도 프랑스 탄산수 브랜드 페리에가 ‘미네랄 생수계의 샴페인’이라는 표현을 썼다가 국제샴페인위원회로부터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밀러 하이라이프 맥주. 로고 하단에 '맥주계의 샴페인(The Champagne of Beers)'이란 문구가 적혀있다./밀러 홈페이지

흥미로운 것은 밀러의 하이 라이프 맥주가 베르사유 조약보다 먼저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1903년 출시된 이 맥주는 맥주병이 샴페인병과 닮았다는 이유로 1906년부터 제품에 ‘병맥주계의 샴페인(Champagne of Bottle Beers)’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별칭은 1969년 ‘맥주계의 샴페인’이라는 지금의 별칭으로 바뀌었다. 현재 미국 등지에서 판매되는 밀러 하이 라이프 맥주 제품에는 1903년에 출시됐다는 의미의 ‘ESTD 1903′라는 표기가 있다.

하지만 밀러 측은 벨기에 세관의 조치를 문제삼지 않고 “샴페인에 대한 (EU의) 규제를 존중한다”고 했다. 다만 “우리는 밀러 하이 라이프와 그 별칭(맥주계의 샴페인), 이 맥주의 원산지(위스콘신주 밀워키)를 여전히 자랑스러워할 것”이라며 “함께 하이 라이프로 건배하기 위해 우리의 유럽 친구들을 언제든 미국으로 초청하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