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함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깊숙이 개입해온 민간 용병기업 ‘와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62)이 러시아 정부를 향해 “부족한 탄약을 보충해주지 않을 경우 바흐무트에서 철수하겠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동부 도시 바흐무트는 우크라이나군과 와그너그룹 사이 혈투가 벌어지고 있는 최대 격전지다.
1일(현지 시각) 미국의소리(VOA) 등 외신들에 따르면 프리고진은 지난달 29일 친(親)정부 성향 군사 블로거와 가진 인터뷰에서 “현재와 같은 상황이 즉시 개선되지 않을 경우 우리가 직면하게 될 상황은 질서 있게 후퇴하는 것, 아니면 그대로 있다가 죽는 것”이라며 러시아 정부의 탄환 공급을 촉구했다.
그는 “우리는 매일 8만개의 탄약이 필요하지만 실제 공급받고 있는 것은 400개에 불과하다”며 “바흐무트에서 철수할 경우 다른 러시아 전선이 연속 붕괴될 수 있다”고도 주장했다.
앞서 프리고진은 지난달 16일 “특별군사작전에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며 돌연 종전(終戰) 주장을 내놔 푸틴 정권과 서방을 동시에 어리둥절하게 했다.
특별군사작전은 러시아 측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언급할 때 쓰는 말이다. 지난 3월에는 “2024년 우크라이나 대선에 출마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현 대통령) 등과 맞붙겠다”는 돌발 발언으로 우크라이나 국민을 격분시켰는데, 이제는 러시아와 푸틴을 겨냥해 깜짝 발언을 쏟아내는 모습이다.
일련의 돌출 행보 때문에 푸틴과 프리고진의 ‘밀월 관계’에 이상기류가 생긴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프리고진은 2000년대 초 상트페테르부르크 등지에서 식당을 운영하며 푸틴과 가까워졌다. 푸틴의 생일과 크렘린궁 연회 음식의 케이터링을 맡아, ‘푸틴의 요리사’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2014년 와그너 그룹을 설립하고 아프리카의 분쟁 지역에 용병들을 파견하며 세력을 키웠다. 우크라이나 침공에 개입하고, 북한과 무기를 밀거래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의 제재를 받기도 했다.
최근 수단 군벌 간 무력 투쟁으로 푸틴과 프리고진의 사이가 더욱 멀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푸틴 정권은 2020년 11월 수단의 홍해 연안 도시 포트 수단에 군함 4척과 병력 300명을 주둔시킬 수 있는 해군 기지를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앞서 미국과 중국이 아프리카의 홍해 연안 국가인 지부티에 군 기지를 건설하자, 러시아도 이 지역 진출을 적극 모색해왔다.
그런데 수단 정부군과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반군(RSF)의 주요 후원 세력이 바로 프리고진의 와그너 그룹인 것으로 알려졌다. 수단 사태가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푸틴과 프리고진의 단일대오에 금이 갈 수 있는 상황이다.
일각에선 프리고진이 차기 러시아 대권을 노리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제정치학자인 마크 베이싱어 프린스턴대 교수는 최근 유로뉴스 인터뷰에서 “프리고진은 러시아 정치에서 공적인 역할을 맡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며 “푸틴의 실각 가능성은 없지만 야심가들은 그 이후를 주목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 싱크탱크 전쟁연구소는 “프리고진의 행보가 크렘린 내부 분열의 방아쇠를 당길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