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국가들과 밀착해 중국 세력 확장을 봉쇄하려는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의 움직임이 가속화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새 안보 파트너로 급부상한 필리핀 대통령과 만나 최신 무기와 장비를 선물했고, 남태평양 섬나라 정상들을 만나러 미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파푸아뉴기니를 찾는다.
바이든은 1일(현지 시각) 워싱턴 백악관에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뒤 낸 공동성명에서 “필리핀에 대한 철통같은 동맹 공약을 재확인한다”며 “남중국해를 포함한 태평양상에서 필리핀 군 병력, 공공 선박, 항공기에 대한 무력 공격은 미국의 상호 방위 공약을 발동시킨다는 점을 재확인한다”고 말했다. 핵심 군사 동맹인 한국·미국과의 공동성명에서 자주 쓰였던 ‘철통(ironclad)’이라는 표현을 꺼내 필리핀을 핵심 군사·안보 파트너로 대우하면서, 중국을 향해 “필리핀 함정이나 배를 공격할 경우 우리가 개입하겠다”는 강력한 경고 시그널을 보낸 것이다.
미국은 또 필리핀에 C-130H 수송기 3대와 해안 경비 선박 4대도 제공하기로 했다. 록히드마틴에서 제조한 C-130H는 비포장 활주로에서도 이·착륙이 가능하고 항속거리가 4000㎞에 달해 각국의 주요 특수 작전에 활용되고 있다. 다만 최근 미·필리핀 간 밀착에 대해 일각에서는 독재자로 비난받은 마르코스 일가와 손을 잡은 것에 대한 비판도 나오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보도했다. 마르코스 주니어의 아버지인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는 1965~1986년 필리핀을 철권통치하면서 측근 전횡과 부정 부패, 인권 탄압 등 어두운 그림자를 남겼다.
한편 바이든은 오는 22일 파푸아뉴기니를 방문해 남태평양 군소 도서국가 정상들과 만난다고 일본 NHK 방송이 보도했다. 바이든은 일본 히로시마 G7(주요 7국) 정상회의를 마치고,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 안보협의체) 정상회의가 열리는 시드니로 가기 전에 파푸아뉴기니에 들를 예정이다. 당일치기 일정이지만, 미국 현직 대통령이 이 나라를 방문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파푸아뉴기니 일간지 포스트 쿠리어는 전했다. 파푸아뉴기니에서는 21~24일 태평양도서국가 정상회의가 열리는데 호주·뉴질랜드뿐 아니라 나우루·투발루·피지 등 군소 국가까지 아울러 18국 정상이 참석한다. 바이든은 이들 나라 정상들과 만나서 남태평양 지역의 경제·안보·기후변화 대응 분야에서 미국의 지원을 약속하고, 미국의 인도·태평양 정책에 대한 협력을 당부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이 나라들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차단하려는 행보라는 분석이 나온다. 남태평양 도서 지역은 최근 미국과 중국이 패권을 다투는 새로운 격전지로 떠올랐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왔지만, 최근에는 중국이 각종 경제 개발 프로젝트를 벌이며 영향력을 빠르게 키워왔다. 특히 지난해 3월에는 솔로몬제도가 중국과 안보협약을 맺고 자국 내 중국의 군사기지 건설을 승인해줄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미국·호주·뉴질랜드 등이 일제히 반발하며 솔로몬제도를 상대로 중국과의 안보협력을 철회하라는 설득전에 나서기도 했다. 미국은 미·태평양 도서국가 정상회의를 창설해 작년 9월 1회 회의를 개최했고, 대사관이 없던 솔로몬제도·통가·키리바시 등에 대사관을 개설키로 하는 등 이 지역에 대한 관여를 강화하고 있다.